탐구
'시골에서는, 적어도 내 유년기 때는, 근육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동반된 육체의 수고가 아니면 "일"로 간주되지 않았다. 공부는 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독서는 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도시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그만 놀고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는 일이다' (고요한 읽기 중에서, 이승우)
공부는 일이 아니기에 꾸준할 수 있다. 아마 내가 인정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인간이 행하는 영원한 행진 아닌가 싶다. 심리적 변덕과 번복이 왔다 갔다 해도 한번 재미 붙인 공부의 맛은 그대로다.
학생시절 하는 그 무지막지한 공부가 아니고,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하는 공부는 일이 아니다. 비롯 외우고 암기해도 공부는 항상 원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진정한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그 결과에 관계없이 나의 성향과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잘할 수 있다면 더 재미가 있을 수 있지만 잘하진 못해도 비록 실패와 좌절을 줄지언정 덮어버리진 못하겠다. 포기는 끝이 있는 일과 같은 명사에 부합되는 단어이지 공부와 같이 끝이 없는 단어의 주어로는 부적합하다.
공부는 역시 문해력이다. 수학도 문제는 국어로 해석을 해야 논리적인 답을 유추한다. 애매모호한 수학문제는 답도 여러 개로 나온다. 그 명확한 수학도 전제가 모호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어쩌면 공부와 많이 닮아있다.
희미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의견이 분분하고 그러면서도 불변의 법칙과 같은 명확성으로 기준을 제시하고 증명하고 단계적으로 통일되고 일관되게 만든다. 과목의 경계도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가 탄생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한다.
공부에 왕도는 없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머리와 후천적 노력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운이 조합하여 결과를 창출한다. 인생후반기 공부는 인생초반기보다는 부담이 덜 하니 과정을 즐길 수 있고 학창 시절의 지식을 다시 기억으로 불러낸다.
그러나 모름지기 공부는 단순 독서나 인문강연과는 달리 결과물을 창출해야 한다. 자격증 합격이라던지 학위취득등 목표설정에 따라 과정이 움직인다. 성취감이나 실패의 좌절감은 젊을 때나 나이 있을 때나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공부는 진득이 혼자 하는 게 맞지만 세상이 바뀐 지 오래라 집단지성과 같이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만큼 독학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만큼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공부는 혼자서 머리에 익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 하는 영역이란 건 변함없다. 목표에 따라 같이하는 방법과 혼자 체득하는 과정을 적절히 혼합하여 잘 조화롭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공부다. 세상 공부는 꼭 텍스트에 있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공부는 그 지긋한 밥벌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사실만으로도 번복, 변덕, 철회, 취소하지 않고 꾸준할 수 있는 힘을 타당한 기준을 확립할 수 있다. 처음에 불현듯 시작해도 그 끝이 없어도 괜찮은 공부의 힘을 강조해 본다.
-2025년, 8월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