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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 지다 울다 살다

#김소월의 산유화

by movere

산(山)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山)에

산(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山)에서 우는 적은 새요

꽃이 좋아

산(山)에서

사노라네


산(山)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이 시는 스스로 운행하는 자동사(自動詞)의 세계다. 삶이 피다 지다 울다 살 다처 럼 한 음절짜리 자동사 4개에 실려 간다. 혁명을 꿈꾸던 내 어린 날의 친구도 이제는 늙어서 이 시를 좋아하는데, 자득의 내용은 본래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월은 서른두 살에 죽었다.

<나를 흔든 시 한 줄 (정재숙 엮음, 노석미 그림) 중에서>

혁명을 꿈꾸던 그 어린 날의 친구들도 이제 이 시를 좋아합니다. 영웅은 어디서 실패하고 좌절하는가?라는 물음에 일상에서 실패한다는 노자를 강의하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거대한 이념의 구조물에 일상을 등외 시한 삶은 결국 바라는 삶 대신 바람직한 삶의 추종자로 서서히 안주시킵니다.


피고 지고 살고 우는 일상적인 것은 바로 큰 이념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고, 삶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있을것일지언데, 자기로부터의 혁명에 실패한, 인간의 동력이 발동하는 구체적인 일상에서 실패한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혁명가들은, 그래서 자득의 내용은 말할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그저 외우기만 하라고 강요한 저 시속에, 스스로 운행하는 자동사의 세계를 알지 못하였으니 일상에서의 행복 또한 놓쳐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늙어서 저절로 알게 되는 자득이란 것을 본래는 말하고 싶을 법도 하겠지만 본래 필요 없는 것을 그저 하지 않는 것을 자득의 깨달음이라 다짐해 봅니다.


삶이란 유무 상생의 자동사의 세계입니다.


-2015.03.31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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