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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Dec 11. 2018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공터에서

은평문화예술회관 숲 속 극장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흑산' 이후로 간간히 단편이나 에세이는 간간이 출간되었지만 장편은 실로 오랜만에 출간된 올해, 적지 않는 강연을 소화하는 소식을 접하였다. 장편소설의 출간이 오랜만인 만큼 나 또한 그 기간이 지난 만큼 작가의 강연에 참석하는 것 같다.


김훈 작가의 강연을 얼추 4~5번을 직접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후 올해 어느덧 70을 맞이한 노(老) 작가, 첫 시선이 주는 연륜에 세월의 무거움을 느끼게 하였지만, 작가의 또렷한 언변과 작품에 대한 관조,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그의 비루한 삶을 고귀하게 그리고 문학으로 승화하기 위해 자아성찰의 노력에 대한 그의 발언은 느낌의 체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작가의 개인사의 특히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비극적인 현대사의 아버지로서의 마동수, 그리고 그의 아들들 마 장세, 마차에 이 마 씨 집안의 3명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차남 마차세의 삶을 통해, 장남 마 장세의 현실도피성의 이유 있는 삶, 그리고 죽음에 다다른 아버지 마동수의 삶을 연관시켜 비극적인 현대사의 줄거리를 풀어간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마차세의 삶을 희망과는 거리가 먼,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야 하는 세상의 절망과 무거움을 더욱 치열하게 묘사하고 있다. '공터에서'라는 책의 단순 줄거리로서는 이 장편이 나타내고자 하는 문학적 이해에 한계를 느낄 것이다. 작가의 그동안의 작품,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변화와 개별적인 일치성을 단 한 권에 책에서 꿰뚫기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공터에서의 작품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할지 모른다.


작가의 작품을 어느 정도 섭렵한 후 익숙함을 토대로 노 작가의 거의 후반기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을 읽은 나로서는 작가의 연속성과 변화성을 감지하였다. 김훈이 누구인가? 냉랭하고 무미건조하고 마초성의 단단함의 빈틈이 없는 여태껏 그의 글에서, 강함을 유연하게 하는 부드러움을 그가 세월에 바친 나이만큼 녹아들어 간 변화성을 보았다. 일치성과 변화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작가의 품은 의도와 그에 발현된 글쓰기의 출발점을 고정시켜 작품을 읽고 느낌의 체적 될 시간을 오류 되지 않게 하는 아주 중요한 독자의 노력이다.


강연이 끝날 무렵, 여느 강연에서 볼 수 있는 독자와의 문답 시간이었다. 어느 한독 자가 묻는다. 김소월의 피다 지다 울다는 단순 명료함에 눌려 시를 쓰지 못한단 작가의 말씀, 그러나 이제 시를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의 물음에 작가는 재능이 없어 못쓴다고 했다. 소설은 노력에 의해 쓰일 수도 있지만 시는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시인은 우리 모두의 공적인 재산이라 한다.


다른 독자가 묻는다. 공무도하란 작품에서 강을 기준으로 이곳 현실의 절망과 비극 저곳 강을 건너 희망의 세계가 이분화되어있다면 작가는 강을 건너 이제 희망을 말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 하셨는데 공터에서도 우울함과 비극이 난무한 느낌인데 희망적인 작품은 언제 쓰실 거냐는 물음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있지도 않는 허황된 유토피아를 내세우며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했다. 이념과 심지어 종교까지도, 그런 허황된 희망을 제시하는 것보다 우리는 희망 없는 곳에 살아낼 줄 알아야 한다. 애당초 없는 희망을 만들지 말고 사실적은 객관적으로 살아낼 줄 알아야 한다. 거기서 약자를 보호하고 사람에게 친절하고 서로를 위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라 한다.


세상은 무섭게 각자의 삶에 안착하여 일어나는 무지막지한 일을 고스란히 포갠다. 그러고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답변은 명쾌하지 않은 설득은 되지 않지만 납득은 되고 공감은 되지만 이해되지 않는 그 무언가로부터 결핍된 억눌림에서 벗어난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에 온 느낌이랄까. 돌아가는 길, 노 작가의 마지막 답변이 내내 뇌리에 스치며 녹번역으로 걸어가는 길을 오히려 가볍게 했다.

 

- 2017.05.28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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