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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Dec 11. 2018

서울 삼전도비

#남한산성

얼마 전 잠실 놀이공원에 놀이기구가 멈췄다는 뉴스가 라디오로 듣게 되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참 다행이다하는 안도감도 잠시, 오래전 우연찮게 시작된 흥미와 열정의 계기가 그 놀이공원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회상해본다.   

 

송파구 놀이공원 근처 석촌호수 모퉁이에는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삼전도 청태종공덕비“ 일명 서울 삼전도비는 소외된 위치만큼 우리 역사의 수치의 표본으로 놀이공원 변방터로 밀려나 우두커니 서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갇혀 결국 청에게 항복을 하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한 인조와 그 결과로 청 태종의 공덕을 기리는 비는 그렇게 세워진 것이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문헌을 찾고 역사소설을 읽고 흥미를 느끼게 된 사연이 저 비석에서 기인한 듯하다.  

역사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은 하나의 책을 묵독하기 위해서 다른 여러 서적을 읽고 사전적 지식을 습득한 후 어렵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선조대에 이르러 훈구의 소멸과 붕당의 시작, 임란을 거쳐 군주가 된 광해는 북인에만 의존한 채, 대명 대청 중립외교의 정치적 사안이 맞물리면서 서인세력의 반정의 빌미가 되고,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전쟁을 막지 못한 무능한 군주로 후대의 평가를 올리게 된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소설 남한산성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말(言)로 표현한 문장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47일 동안 성안에 갇혀있는 내면적 심리의 절정을 표현하는데 작가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싸우자고 하고 내일은 화친하자고 하는, 성(城) 밖의 적을 두고 성(城) 안에서 서로 싸우는, 말(言)과 말(言)이 포개어져 말(言) 넘쳐나고, 성(城) 안에서도 성(城) 밖에서도 구해지지 않는 답을, 작가의 냉철함으로 독자를 답이 없는 벼랑 끝까지 치열하게 몰고 가 처절함을 보여주게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그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길 은 포개져 있었고, 그 포개진 길을 같이 나오는 장면은 다른 소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소설 소현세자 (이정근 저)에서 소설 남한산성에 귀결되지 못한 주전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을 표현한 문장에서 압도 감마저 느끼게 한다.  

“청음(淸陰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나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비록 지조가 높으나, 또한 완성군(完城君 최명길)이 열어놓은 남한산성의 문으로 나왔다”  

대립의 구도가 어쩔 수 없는 화합의 구도로 변화한 상황을 격조 있게 표현한 문장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지는 것을 자득이라고 한다. 역사 속의 개별적 삶은 현실에 투영되어 개별적 자아의 삶에 녹아 자득의 긴 성숙을 낳아낸다. 수치의 역사는 체념이나 관념의 과거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희망으로 미래에도 꾸준히 되살아나 성숙으로 영글어진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 자득이 어쩌면 삶의 교훈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엔 if는 없다고 하지만 소현세자가 임금이 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등진 것이 가장 아쉬운 역사적 사실로 많은 사람들은 꼽는다. 소현세자의 집권이 이어졌다면 과연 후기 조선의 역사는 어떠하였을까. 이 부질없는 자문은 허망한 물음에 그치지 않고 현명한 자득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개별적인 노력의 몫일 것이다.

   

놀이공원터로 쫓겨난 비석에서 시작한 이 작은 스토리는, 과거의 삶을 통해 현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절박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삼전도의 겨울을 상상하게 하는 지금,  경술국치일이 여름에 있는 것은 계절적 교차 감으로 대비되는 역사의 부조화일까? 올해 여름이 그렇게 지금 지나가고 있다.


-2017.08.20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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