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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Dec 15. 2018

Onward

하워드 슐츠

인생을 살다 보면 뒤늦게 무엇인가 꽂힐 때가 있나 보다. 나는 지금 커피보다 스타벅스 이야기를 하려 한다. 스타벅스가 좋아지게 된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 “편안함”이다. 사람이 많고 어수선함을 싫어하는 나에게, 그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 불일치는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것에 지배를 받도록 내버려두니 문득 오래 잊고 있었던 추억이 그리워지는 법, 그 편안함이 어디서 유래되는지 잊고 지낸 호기심의 탐색을 시작해보았다.

우선 편안함의 불일치는, 홀로 편안한 것보다 차라리 군중 속의 고독이 더 낫다는 내면의 바닥에 있는 심연이 수면 위에 떠올라 새로운 나를 발견한듯하고, 그다음 편안함의 본질은 하워드 슐츠 경영마인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얼마 전 사임한 스타벅스 前 회장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스타벅스는 어느덧 가정과 직장에 이은 세 번째 장소로 고객들에게 인식되었고, 슐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사회는 점점 파편화되지만 우리 매장은 황폐한 개인들을 위한 오아시스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를 지치 게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떠날 수 있는 작은 탈출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의 경영마인드의 핵심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말이다. 이 기반으로 한 마케팅과 경영기법이 투영되어 스타벅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켜 놓았다. 커피 한잔에 과대한 의미부여가 아니냐라는 반론을 가질 수는 있으나 스타벅스 이야기에 몰입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슐츠 회장이 이윤이라는 기업의 본질에만 더 충실하여 처세와 업적에 집중한 CEO였다면 지금의 스타벅스 마인드를 기업문화 속에 녹아내리게 하여 기업가치의 질적 성장을 이루 내지 못하였을 것이고, 잘해봤자 성과가 잠시 뛰어난 이방인 CEO로 그쳤을 것이다. 추종하는 사람은 존경받지 못한다. 윗사람은 속여도 아랫사람은 못 속인다는 평범한 법칙을 너무나 잘 터득한 우리네 월급쟁이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스타벅스 이야기를 윤리와 경영의 이분화된 영역으로 끌고 가고 싶진 않다.


많은 컨설턴트들이 대표적인 기업실패사례로 로베르토 고이주에타(Roberto Goizueta) 코카콜라 회장의 뉴코크 new coke 혁신을 꼽는데 완전히 실패해서 비즈니스 스쿨 교재로 활용될 정도이다. 실패 원인은 어느 컨설턴트 말을 인용하자면 감정의 끈의 연결 실패라 분석한다. “콜라맛이 왜 이래? “ “내가 기대한 콜라맛이 아니잖아” 인간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항상 힘든데 콜라맛 또한 그중에 하나다. 고객 감성의 끈을 놓친 어설픈 변화의 추종이 실패를 가져왔고, 다시 고객과 콜라맛의 감정의 끈을 연결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코카콜라는 옛 권자의 자리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이글의 화두를 나는 “편안함”의 감정으로 시작했다. 찾아보면 스타벅스보다 더 편안하고 나의 맛에 맞는 소규모 카페도 있을 것이고 다른 프랜차이즈도 있을 것이다. 찾아보질 않아서 모를 뿐이다. 그런데 설령 찾아진다 해도 스타벅스에 더 자주 가서 구매할 것 같다. 고객인 내가 스타벅스에서 느끼는 감정의 끈이 경영인 슐츠 회장이 말한 제3의 공간의 오아시스와 사소한 사치로 세계적인 것을 즐긴다는 편안함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는 커피맛이라는 주관적 지점과 세계적 브랜드라는 만족의 객관적 지점, 그 묘한 지점에 고객을 놓아두는 감성적 능력으로 고객과 기업을 소통케 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다루어온 인류의 유산이 바로 인문학이다. 슐츠 회장은 그 유산의 기반으로 경영을 하였다. 최소한 사내 관료주의나 세부사항까지 일일이 관리하는 좁은 경영(micro managing)은 스타벅스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재무의 ‘밥알’이라는 익숙한 시가 있다. 시인이란 하늘이 내린 영감으로 쓰는 직업이라 한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어찌 사물을 표현하는데 이토록 영감이 극적일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시다. 경영을 문학의 영역으로 끌고 와 보면, 하워드 슐츠는 조직만 있고 사람이 없는, 일만 있고 존재가 없는, 그런 물에 말린 찬밥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끈적이는 밥알을 지을 줄 아는 CEO다. 기업의 비전이 아름다운 유산과 감수성의 가치관으로부터 제공받지 못한다면, 그런 기업은 사회적 책무를 할 수도, 세계적 기업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다. 각자의 밥벌이터에서 갓 지은 그 밥을 각자 편안히 누릴 때, 비로소 스타벅스의 커피보다 그 밥 한 숟가락이 더 달콤하다는 것. 이것이 궁극적인 그의 온워드 Onward 메시지일 것이다. 


- 2018.09.07, 어느 스타벅스 매장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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