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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Mar 10. 2020

거리(距離)

Distancing

주말 근무가 취소되고 업무가 격리되다 다행히 주위 발열자는 음성, 다시 온전한 일상은 진행된다. 거리두기가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이기심과 이타심이 동일지점을 향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다. 바이러스와 관계없이 이 밥벌이터에서는 차라리 거리(距離)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조롱, 혐오 그리고 비난, 국어사전에 안 좋은 수식어에 지친듯한 도시로 전화를 한다. 나의 연(緣)과 관계로 맺어진 도시는 여전히 나와 이어져있다. 안 좋은 일 터지면 우선 수습한 후 나중의 책임의 명분으로 누군가를 벌준다. 그런다고 다시 그런 일이 안 생기는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순 없고, 많은 사람들의 화풀이, 분통을 터트릴 그 대상을 찾는 것이 책임이다.


종교를 빙자한 사이비 집단을 욕하고, 정부를 욕하고, 또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을 욕하고 그리고 그 도시를 원망한다. 별 볼일 없다 싶으면 빠르게 왕따시키것이 세상사라 스스로 알아서 투명인간처럼 서있어도, 흰 도화지에 투명인간은 까맣게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 바이러스처럼 숨을 데도 없다. 저 도시는 나만큼 지겨워 보이는데도 저렇게 꾸역꾸역 망가지면서 존재해다.


돌이켜보면 그 도시에서의 즐거움, 따뜻함보다 상실감과 좌절, 피폐한 기억만 떠오른다. 그것도 추억일까?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진 거리(距離)의 도시! 그 도시 속 개인의 삶이 선하든 악하든 관계없이 정치가 끼어들면 그 도시 속 모든 이는 악인이다. 내가 다른 이에 무관심하다고, 내가 다른 분풀이 대상을 찾지 않았다 해서 도시가 낙인 안 찍힐 것도 아닌 것이어서 그 도시의 나의 감정은 편안하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다. 아니 모르겠다.


의료체계가 무너지니 걱정이 앞선다. 당분간 오지 말라고 한다. 다들 꿋꿋이 잘 견뎌줘서 고맙다. 전화 속 도시는 저렇게 망가져있는 것 같은데 어쩜 아무렇지 않은 듯이 휑하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망가졌다고 외치지 말라고 항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창문을 열어 어둠 속 불빛을 바라본다. 온전히 맑게 소외된 자리에서 밤을 들여다본다.


삶이란 게 항상 최상의 목표에 도전하는 것만 아니며, 바로 최적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여 주는 것도 삶이다. 어둠이 싫다고 어둠을 마비시키면 불빛도 마비된다. 거리(距離)는 비정(非情)하고 냉대하지만 원망과 슬픔을 멀어지게 해 주고, 언젠가는 다가올 일상의 행복과 평온을 움트게 한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그 도시와의 연(緣)은 멀어질 것이고 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그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고된 삶도 있을 것이고, 희망 없이 그저 사는 삶도 있을 것이고, 아픈 삶도 있을 것이지만, 다들 지겹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친절하다고 해서 손을 잡아주진 않는다. 그저 그 친절만 감사히 생각하고 손 잡아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의 거리(距離)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갈 수 있는 날까지만이라도 그 도시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이 동네도 망가진 것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것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2020년 3월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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