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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Jan 21. 2020

사서(司書)

도서관 사서

책을 읽다 보면 책 선택의 패턴이 차차 성립되는데 나의 경우는 이렇다. 먼저 작가 중심으로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집중해서 읽기, 두 번째 베스트셀러 등의 신간 읽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힘든 책을 읽고 나서 쉼의 휴식으로 짧거나 무겁지 않은 책으로 전환해서 읽기 등이다.


책은 구입해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빌려서 보는데, 우리나라는 도서관 문화가 잘되어있어 지자체, 학교, 기업, 동네책방 등등 책이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책 빌려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나의 경우 두 번째 이유로 사내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사내 도서관은 보유 장서의 한계가 있는 단점이 있지만 신간을 신청하면 금방 빌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립도서관의 경우 신간 대기줄이 꽤 길 것이다. 아마 내손에 들어왔을 때 이미 시간이 흘러 신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내 도서관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사서직원이다. 사내 도서관은 계약직으로 운영된다.


2년여 전쯤 그날도 책을 빌리러 사내 도서관에 갔다. 익숙한 사서 여직원이 안 보이고 새로운 직원이 와있었다. 아! 전(前) 사서직원 계약기간이 끝나고 새로 온 젊은이인가 보다 하고 그날도 키오스크처럼 기계적으로 신청하고 빌리려 했다. 근데 내가 신청한 책이 누가 먼저 찜을 해놔서 사서 여직원이 조금 미안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날은 설 연휴 바로 전날 퇴근 무렵이었다. 대략 이런 경우 내가 비공식적으로 지금 빌려서 다 읽고 연휴 끝나고 아침에 갔다 드린다고 했더니 첫 업무의 첫 케이스라 사서 여직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흔쾌히 빌려주었다. 솔직히 규정상 안된다고 해도 그만이지만 뭐 안될 것도 없지 않은가? 다른 것도 아니고 책이고 신원이 명확한데.


그리고 한 묶음 초콜릿을 집어서 나한테 주면서 설날 잘 보내시라고 한다. 아! 오늘이 밸런타인데이구나!  첫인상이 융통성도 있고 상냥하고 암튼 친절이 몸에 밴 그런 스타일의 아가씨였다. 도서관 이용은 전과 다름없이 이용하니까 계속 만나게 되는데 이번 사서직원은 내가 전에 보와 왔던 사서직원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친절하고 업무적 융통성에 인간적인 됨됨이가 돋보였다. 관료적이고 투박한 사내 문화에서 나부터 무뚝뚝한데, 이 젊은이와 같은 직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인상에 남는 것이다. 그저 책을 빌려가고 기간 내에 반납하고 신간 나오면 신청하고 책 못 찾겠으면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기계적인 업무에 서로 익숙한 곳에서, 사서 여직원의 업무 스타일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도서관에 책 빌려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신간을 손쉽게 빌려볼 수 있기도 하고, 책 이야기를 가끔 나누기도 하면서 서로 추천해주는 책도 정보 공유한다.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았는데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내 눈에 들면 다른 사람 눈에 드는 것은 세상 이치다. 어느덧 조용한 도서관이 붐비기도 하고 사랑방 같은 다정한 곳으로 변해갔다. 참 희한한 일이다.


굳이 급여도 더 챙겨주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이 붐비면 하는 일만 더 많아지고 민원만 제기될 뿐인데 하는 나의 퇴행적인 매너리즘 생각과는 영 다른 사서 아가씨는 이곳에 좋은 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좋다 하고 한다. 책을 운반할 때도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시고, 도움을 주고받고 그렇게 사는 것이 참 좋다고 한다.


그렇지 한때 우리도 그렇지 살았었지. 서로 돕고 양보하고.. 부족한 거 채워주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사서 아가씨가 철없는 나이도 아니고 어느 정도 사회의 경험이 있을 것인데 그렇게 올바르고 행복 넘치는 생활의 태도는 아무튼 신선한 활력소임엔 분명하지만 저러다 지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솔직히 들었다. 책 빌리러 갈 때 어느 날 갑자기 불친절로 돌변하면 그냥 속상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그냥 이 젊은이는 사람 그 자체로 괜찮은 젊은이다. 시류에 편승하지도 않고 자신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젊은이였다. 급한 신간이 금요일 저녁에 도착 예정이면 기숙사로 배달되는 책을 누구한테 맡겨서 다음날 아침에 찾아갈 수 있게끔 하고 그렇게 편의를 봐주면서 도서관으로 사람을 불러 들게 하였다. 휑한 도서관을 그렇게 바꿔 놓은 것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간절하게 읽어야 할 신간을 누구보다 빨리 읽을 수 있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다. 비교하기엔 무리지만 아이폰 출시할 때 줄 길게 서있는 것 비슷한 것이다. 고맙다고 음료수 하나 갖다 줄 수 있고 또 사서 아가씨로부터 커피 한잔 대접받을 수 있고 책 이야기할 수 있고, 상식적인 사람살이가 유일하게 작동되는 곳이 있다니 참 신기할 노릇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도서관 사서 아가씨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었다. 요즘처럼 불경기에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시대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바르고 생각이 올곧고 남에게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젊은이들이 삶의 태도와 가치를 침해받지 않고 온전히 지탱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조직은 리더의 자질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바뀌고 변화할 수 있으며, 핵심가치에 기반을 둔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은 존경받을 것이라는 말은 그 도서관에 있는 책 안에만 있을 뿐, 책 밖에도 도서관 밖에도 그런 리더는 전혀 없다. 리더가 아니더라도 그런 상식을 행하는 사람은 최소한 이곳엔 전혀 네버 진짜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그녀는 도서관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러게요.. 2년이 많이 빠르게 지나갔네요.
그동안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이곳에서 만난 좋은 분들의 기억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의 사서 아가씨는 그래서 내 기억에 오래 남을듯하다. 누구한테 친절하고 행복하게 해 주면 자기가 행복해진다는 참 그 단순한 이치를 이 젊은이로부터 많이 느끼고 배웠다. 그리고 이 젊은이가 어딜 가든 잘 되었으면 한다. 아니 잘될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면서도 한편 공평한 부분도 있으니까.


어딜 가도 건강히 잘 지내길 빌어보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마음속으로 전달해 본다.


-2020년 01월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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