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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Jan 09. 2020

충만

X좌표에 어깨와 허리 통증, 그리고 Y좌표에 요가의 수련도 이렇게 경직된 인식으로 시작한 요가가 어느덧 혼돈의 1년이 지나가고 2년 차 나의 요가는 진행 중이다. 한주에 새로운 동작 1~2개를 중복 없이 배운다면 2년이면 산술적으로 100~200여 개의 아사나를 배운 셈이 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제 팔과 어깨의 통증은 요가의 숙련도와는 별개의 Z좌표에서 따로 인식되고, 통증이 시작되고 마무리짓은 계절의 반복에 더 달관해진다. 아프면 아픈가 보다 하고 그래 밤에 잘 땐 안 아프겠지 하고 내버려 두는 여유랄까?


포기와 포용은 다르듯이 체념과 관록의 구별도 그러한 것이다. 패턴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니 욕심도 생긴다. 어깨의 통증으로 시작한 요가인데 가끔은 어깨만 괜찮다면 욕심내고 싶은 아사나에 도전할 건데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1년 차와 2년 차의 큰 차이점은 바로 몸의 차이보다 심리적 차이다. 몸은 분명히 더 좋아졌는데 1년 차의 상쾌한 느낌보다 2년 차는 무겁고 뻐근하고 아린 느낌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2~3년 차는 오히려 몸의 느낌이 더 안 좋아진다는(?), 특히 자고 났을 때의 무거운 느낌을 이야기하셨는데 꼭 바로 그 느낌이다. 추측컨대 아무래도 진도가, 좀 더 어렵고 숙련을 요하는 자세로 향하다 보니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마 수련자의 불안한 심리를 선험적으로 판단하여 이끌어 주면서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요가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요가 수련인의 큰 힘이 된다.


돌이켜보면 수업시간 중에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사소한 부상이지만 별 무리 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수업 후 오히려 몸이 더 뻐근하고 허리가 아픈 경우도 있었다. 근데 잊을 수 없는 수업시간이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은 요가원에 수련생도 많이 계셨고 선생님께서 수업 진행을 하타요가의 루틴 코스가 아닌 10분 명상 이후 50분내내 사바아사나의 쉼도 없이 끊임없이 시퀀스 동작으로 쉴 새 없이 평범하지 않게 진행하신 날이다.


그날 모든 수련생은 처음에는 따라 하기 바빴지만 어느덧 모두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선생님도 가르치는 입장보다 우리와 같이 요가를 하는 파트너 입장에서 다만 구령을 붙이는 목소리만 선생님의 역할일 뿐 모두 함께 열정적으로 격렬하게 수련한 날이었다. 저렇게 쉴 새 없이 동작을 하면서 말(구령)로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지치지도 않으시나 하는 경외로운 생각도 하면서 수련에 몰입도가 최고조에 이르러 드디어 마지막 동작이 끝나고 타다아사나에서 처음 느끼는 기운? 무엇일까?


합장을 하고 '나마스떼'를 외치는 순간 복부에서 가슴까지 올라오는 벅찬 느낌, 가슴이 충만해지는 느낌은 예전의 그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감명 깊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뭉클하는 감동과는 또 다른 내적인 충만감, 상실의 시대에 인간이 부속품처럼 취급당하고 끊임없는 밥벌이를 행할 때 소진하고 탈진해버린 공허하고 결핍된 가슴에 무언가 꽉꽉 채워지는 충만감! 선생님이 요가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고 냉엄하게 말하신 면을 막연하게 수긍할 뿐, 가슴에 직접 와 닿는 순간이 이 충만의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날은 선생님도 기분 좋게 요가를 즐길 수 있었고 많이 참석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가르치신 게 아니라 수련생과 함께 같이 수련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전한 것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수업이 일치되는 날도 있는 것이다. 스멀스멀 사라지는 내적인 기운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 요가 수업에 나는 좀 진지한 편이다.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잘 웃지 않고 눈을 감고 맘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편인데, 전체적인 수업의 조화와 빗나갈 수도 있지만 그게 나한테는 편하다.


퇴근 때부터 목이 쫙쫙 펴지고 컨디션 최고조로 이른 날, 급한 성격에 준비운동 과정에서 오두방정을 떨 때도 있고, 비염 때문에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오버할 때도 있는데, 그때쯤이면 선생님께서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어주시는데, 잘 알아듣고 다시 정상적인 수련에 들어오게 하신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은 자의식이 강해서 자신의 분야의 고집에 엉킬 때가 많은데, 그러면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분야에서 강약 조절과 사람 마음 상하지 않게 잘 전달하는 조언의 스킬이 은근히 드러난다.


아마 책을 많이 보시는 내공에 마인드가 중요한 요가라는 직업적인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마음속 평가는 마음속으로 머물어야 오해의 소지가 없다. 또한 고마움의 표현은 내 방식대로 전달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한 번쯤은 요가의 사치스러운 날을 맞이하고 싶다. 멋진 풍경 속 자연이든, 도시 안 하루 공간을 빌려 색다르고 낯선 곳에서의 원데이 클래스든, 저 멀리 발리 우붓에서든, 당일 서로가 모르는 완벽한 타인들이 모여서, 클래스 있는 요가를 한 번쯤은 즐기고 싶다.


그러면 그 충만감에 가까운 감정에 매혹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말이다. 예전 어느 리조트서 묵을 때 테라스에서 바다의 석양과 함께 요가를 하는 이벤트 문자를 받고, 5명 모집에 현재 4명이 여성이다라는 답변에 마음을 접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당당하게 나 자신만의 요가를 즐길 수 있는 설렘이 있다. 틈날 때 유튜브로 요가 동작을 보는 등 삶의 일부분으로 이제 요가를 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 선생님의 말씀을 리마인드 해본다.


'자신의 몸과 싸우려 하지 마세요.

자기 몸과 억지로 싸우기보다 살살 달래서 펴게 하고 유연하게 하기 바랍니다'


그래 세상과 싸우지 말고, 고집스러운 나의 성향과 싸우지 말고, 불신의 타인들과 싸우지 말자.

그냥 살살 달래가면서 순리대로 세월에 내 몸을 얹혀보자. 언젠가 안 되는 동작이 되듯이 언젠가 분노와 짜증스러움도 서서히 잠들지 않을까! 언제까지 나에게 충만한 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삶의 일부분의 요가로 그렇게 계속 지속되길 빌어본다.


- 2020년 새해 첫 달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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