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래.

살아남은 것만으로 장한 거니까 걍 우리끼리라도 북돋아줍시다.

by 키미키

주의: 자살, 학대, 폭력 키워드 포함

날 것의 학대 및 폭력 묘사가 있음. 일부 트리거가 본문에 배치 되어 있음.


2025년 3월 포스타입에 올렸던 글을 다시 백업해서 올립니다. 현재 포타에서 브런치로 다시 이주 중.



그래서, 뜬금없이 이 글을 왜 쓰게 되었냐고?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금쪽이 클립에서 자폐 스펙트럼인 아이들의 이야기나 어쩌다가 본 자폐스펙트럼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성인이 된 자폐 스펙트럼 자녀들과 부모들의 이야기, 성인이 된 자폐 스펙트럼인들의 청소년기 회상이 담긴 컨텐츠들이 숱하게 떴다.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공감이 가서 엉엉 울다보니, 왠지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너무 비슷해 공감이 갔다. 이들이 겪은 성장, 청년기에 겪은 아픔이 너무 밀접한 유사도를 갖고 있기에 이것은 그저 개인의 아픔으로 치부하기엔 그저 묵과해선 안되지 않나 싶어 간만에 글을 쓴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사회의 이해 부족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로 이어진다. 직장에서의 합리적 배려 부재, 의료진조차 보이는 무지와 편견, 그리고 지지 시스템의 부재는 우리를 극단적인 고립으로 몰아간다. 통계는 말하지 않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성인들의 삶은 끊임없는 생존 전쟁이다. 우리는 매일 자신의 본질과 타협하고, 마스킹(masking)을 통해 자신을 숨기며, 그 과정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감수한다.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면 주변에선 다들 못 믿겠다는 분위기이다. 전혀 그런 일을 안 겪었을 거 같았단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말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스펙트럼 2군, 3군(자폐증)에게도 듣는다. 그들의 입장에선 누가 봐도 겉으로 보기에 너는 티가 안 나는데 니가 무슨 그런 사회로서의 격리를 엄청나게 겪었겠냐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자폐인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자폐인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분리한다. 겉으로 상동행동, 틱 장애, 루틴 fixatation, 초집중 pattern recognition, 과활성감각인지분리 등이 발현화로 보이지 않고 공적/메시지가 명확히 전달해야하는 맥락의 대화를 나눌 때 전혀 티가 안 나더라도 바디랭귀지나 눈빛, 손짓 등의 본능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암시하는 함축적 의미의 정서 소통에서 막히는 시그널을 몇 번 받으면 바로 차단 당한다.


겉으론 정상인처럼 보이는 스펙트럼 1군은 그렇게 소셜에서 분리된다. 본인들의 장애를 주변에 전혀 이해를 못 받아 Accommodation이나 stipend는 못 받고 다른 비자폐인과 같이 사회로 나가 경쟁을 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자폐 스펙트럼 1/2/3군에서 가장 자살율이 높은 게 1군이라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더 깊게 다루겠다.


성인이 된 ASD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쩜 그렇게 다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학대를 겪고 자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감정을 더욱 본인의 자아와 차단하고 더 사회로 자기방어를 위해 격리하거나...


어쩜 그렇게 다들...

나랑 똑같이 처절한 고통을 참아내며 성장했나. 너무나 비슷한 고통을 겪고 살아난 생존기를 담담하게 말하는 걸 들으니 너무 눈물이 났더라.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육체적 폭력 혹은 경멸어린 정서적 모멸감을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허구헌 날 느껴서 죽고 싶었다는 그들의 회상을 듣다 오열을 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방송에 나온 성인ASD인들은 다행히도 그 부모들이 일반적인 도덕관념과 가족끼리 나눌 정서적 교감이 충분히 있는 분들이라 갈등은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내가 본 유튜브 컨텐츠에선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폐 스펙트럼군 중에는 제대로 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체계화된 돌봄을 받아야 할 성장기에 발달장애 요소가 발현된 미숙함을 근거로 가족에게 폭력을 허구헌 날 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


대부분은 그 때의 트라우마로 너무 망가져 본인을 노출하는 상황을 극히 피하기에 방송 같은 곳에 나와 본인의 경험담을 내보이지 않거나...아마 이미 이 세상엔 없을지도 모른다. 가족의 학대에 더 취약하기에 생존해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에 예체능계로 진학을 아예 정했던 나의 자폐 성향은 그저 괴팍한 예술 성향이 충만한 미친 학생(?)정도로 퉁쳐졌다. 그렇다고 왕따를 안 당하거나 또래들에게 모멸을 안 당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겉핥기 수준의 교류를 하는 먼 거리의 친구나 좀 더 여러 중간다리를 거쳐가는 커뮤니티에 속하며 어울릴 곳이 아주 없진 않았다(특: 광활한 범용덕후-축구, 농구, 만화, 애니, 게임, 춤, 노래 등 너무 관심사가 퍼진 전형적인 AuDHD라 속한 그룹이나 단체에선 왕따를 당해도 묘하게 멀리 한두다리 떨어진 취미집단은 넓게 접할 순 있었다).


집 밖의 세상은 잔인하지만 그렇게 못 살아나갈 정도로 냉정하진 않았다.


집 밖의 세상이 나에겐 차가운 씹새끼가 아니어서는 아니고...그냥 그보다 더한 지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잠시 숨을 쉴 수 있어야 할 공간이 아닌 현관을 열자마자 숨이 턱턱 막혀오는 나의 집.


지금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 가족들만큼 나에게 발길질을 가한 이도 이 나이먹도록 만난 적 없고, 내 마음을 후벼파는 잔인한 말을 던진 이들도 없다. 뒷발차기로 내려찍거나 쇠파이프로 때려패던 부친. 뺨을 때리고 머리를 잡아 뜯던 모친. 부모가 자리를 빈 사이 몰래 나에게 칼로 협박하던 남동생. 나에겐 집에 있던 한 순간이 그저 지옥이었다.


내 곱슬거리는 천연 갈색머리를 잡아 뜯으며 소리를 지르던 담임의 폭력도 그닥 사실 크게 상처가 되지 않았다. 담임이 나에게 해코지를 할 때 이걸 부모에게 말하면 부모는 담임에게 항의할까 왜 이런걸로 사람 피곤하게 바빠죽겠는데 왔다갔다하게 하느냐고 들을까 선택의 기로만 머리속에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 균형을 살짝 잃어 담임이 끄는데로 그대로 걍 넘어졌다. 뭔가 내 머리채를 잡고 빼짝 뼈가 앙상한 가느다란 팔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니 귀찮아서 걍 그녀가 끄는 방향으로 엎어졌더니 담임도 꽈당 넘어져 책상에 찍혀 소리를 질렀다. 언뜻 귓가에 애들이 킥킥 대던것 같기도 하다. 담임이 아마 나보다 부상은 더 당했지만...어쩌겠는가 본인이 내 머리를 안 잡아 당겼음 이런 일도 안 생겼을텐데. 곰곰히 보면 체력도 전혀 없고 본인 몸을 어떻게 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꼭 지위를 이용해 폭력을 저지르더라 ㅉㅉ


여튼 후에 한참 지나 모친에게 말하니 모친은 왜 그런걸 말 안 했냐고, 알았다면 교무실로 찾아가 다 뒤엎어버렸을거라 했다. 화를 실컷 내시던 모친은 대체 넌 왜 그렇게 남동생과 달리 미련하냐고 타박했다.

뭐...답답해서 하신 말씀이시겠지만...분명히 말하자면 부모님은 으례 밤마다 퇴근을 하고 와선 나 기분 거지 같으니 건들지 말라는 아우라가 가득했기에 딱히 말할 틈이 없었다는게 더 옳았다.


내 세대의 부모들은 청년기에 5.18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인권 유린의 시대와, 고속성장 부흥기, 바로 추락한 경제 위기를 한번에 겪은 사람들이라 이런 장애들에 정보가 잘 퍼져있지 않았고 접할 정신적 여유가 없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뜩이나 유년기 때 진단을 놓치기 쉬운데 그마저도 운이 안 좋은 경우 방임형 부모, Control Freak 타입의 부모, 강박적 부모, 심하게는 정서적 폭언과 착취 및 더 나아가 신체가학폭력도 일삼는 자기애성/분노조절장애 부모를 둔 경우엔 유년기와 청년기에 겪는 트라우마는 거의 평생을 따라잡히며 삶을 괴롭힌다.


한창 보호받거나 관심이 필요한 나이대의 유년기에 자폐 스펙트럼/ADHD 성향으로 본인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특정 행동이나 따르기 힘든 지도들을 수행하지 못해 과한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나의 부모는, 참 불운하게도 가장 마지막 케이스였다. 정서적 착취와 방임, 폭력에 노출되는 환경에 일부러 사디스틱하게 몰아넣고 구경하며 거기서 생존을 하지 못하거나 지시된 수행을 못할 시 목덜미를 그대로 잡아패 머리를 바닥에 짓누르고 발길질을 해댄 이들이었다. 그때 과한 스트레스로 초등 6에서 중1까진 틱 증상도 겪었다. 그걸 일부러 억누르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다가 흉진 자국을 보면 기분이 씁쓸하다. 하지만 이를 굳이 말로 드러냈다간 부친과 모친과 싸울 뿐이었다.


어찌나 기운들도 좋은지, 자식 기를 다 뺏어가 본인들의 체력으로 썼나 싶을 정도로 20대 중반에 들어가던 당시의 나는 중년의 나이인 그들에게 목덜미를 잡혀 기도가 막힐 느낌이 들 정도로 목을 졸린적도 있다.

노인이 되버린 그들은 본인들이 먼저 폭력을 저질러놓고 허우대는 멀쩡한 딸이 방어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대 갑자기 피해자가 되어 자식에게 맞고사는 부모가 어딨냐고 동네에 널리 알리며 소문을 내기도 했기에 걍 엮이지 않는게 가장 최선이다. 그놈의 죄책감이 뭐길래 그래도 늙은 부모가 정서적으로 몰려 노인 자살하는 건 아닐까 싶어 생일날 문자 메시지라도 보내긴 하지만 참 현타가 온다.

정작 나는 타국생활 10년이 다 넘도록 정작 나는 생일날 가족에게 문자 한번 받은 적이 없기에.


가끔 내가 당한 폭력만큼 나에게 가해를 한 모든 이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지만...그 후에 법적체제에 방어권을 어떻게 프레임을 변호사랑 머리 굴릴지 곰곰히 생각하면 너무 골치가 아프니까 그냥 잊고 넘어가자고 매번 상기한다. 뭐 이젠 지리상으로 아주 지구 반대편에 있어 반격을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가해자는 항상 피해자의 기억을 부정한다. 이것은 학대 관계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나는 몇 년이 지나서야 이것이 가스라이팅의 한 형태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내 기억, 내 감정, 심지어 내 존재의 진실성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미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불확실함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내가 경험한 현실 자체를 부정할 때, 그 혼란과 자기 의심은 몇 배로 증폭된다. 때로는 내 기억이 정말 맞는 건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내 경험은 실재했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학대라는 것을.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뇌와 신체에 각인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덮친다. 특히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은 감각적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때 느꼈던 공포, 무력감, 절망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런 플래시백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 타국에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그 집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치유는 직선적이지 않다. 어떤 날은 완전히 자유로운 것 같다가도, 다음 순간 다시 그 어둠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내 인식과 타인의 인식 사이의 간극을 항상 의심해왔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것이 정말 학대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치료사는 이것이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말했다. 장기간의 학대와 방임은 자신의 현실을 불신하게 만들고, 이는 특히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나는 내 경험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것은 치유의 첫걸음이다.


본 포스팅은 좀 날것의 기억과 감정을 쏟아부은 글이다.


어떤 이에겐 불행포르노를 파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어떤 이에겐 이렇게까지 과하게 본인의 아픈 과거를 굳이 익명의 다수에게 공개하는 관심 구걸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안 하고 넘어갈 순 없다. 내가 한참 나이 먹어서도 반복되는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 굴레를 파악하기 위해 내 정체성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필요하고 이런 과정을 나뿐만이 아닌 스쳐가는 타인의 글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세상은 분명 옛날에 비해 많이 진보되고 좋아졌지만 아직은 여전히 삶과 생활의 존립을 위해 남들보다 더 뼛골 빠지도록 고군분투 해야한다. 그건 좀 쓰리지만 뭐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와 같은 ASD인이라면 그저,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이 오늘 이 순간까지 살아온 그 집념 어린 생명력과 끈기, 생존을 향한 집착과 근성, 그리고 고군분투한 당신만의 전쟁은 당신 자신이 아닌 그 누구도 모른다. 그걸 모르는 타인이 함부로 당신의 가치나 능력, 사회 일원으로서의 존재의미를 후려칠 때 하나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상황이나 처지였다면 이만큼 생존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니까.


어찌됬건 우린 살아남았잖아.


살아서 발을 이 땅에 딛고 숨을 쉬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장하다 말해주고 싶다.

잘했다. 정말 잘해왔다. 정말 애쓰고 수고가 많았다.

당신의 고충과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 삶의 장애를 인정하고 떠안고 살아간다는 것 만으로 이미 많은 것을 인내하고 이겨왔다. 다른 이들이 당신을 아무리 냉정히 폄하해도,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생존해 오늘 하루도 어금니 꽉 깨물고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이미 존재의 의미가 있다.


당신 주변에서 그런 말을 안 했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그 누군가 그런 응원을 보내기 위해 이 글을 쓴다는 걸 기억하고, 잠시 밖에 나가 차가운 공기를 폐로 들이키며 순간의 감각에 나를 진정시켜보자. 그렇게 오늘도 살아내고, 내일도 살아가보자.


많이 수고했다. 앞으론 행복하자.


PS. 글 쓰는 내내 사실 많이 오글거렸다. 오글거린다 굳이 코멘트 붙이지 마라. 글 쓰는 나도 손가락이 말려들어가니까. 하지만 그래도, 글에 담긴 메시지는 정말 나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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