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CHUAP AGAIN 4

IT AIN'T OVER TILL IT'S OVER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주룩주룩 비가 내렸고, 그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개쉑들은 아랑곳없이 으르렁거리며 우리를 위협하였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여 씻고 쉬었다면 또 여행이 아니지.


숙소 입구까지 다 와서, 옆 숙소에서 나오던 오토바이 언니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정말 대자로 넘어졌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제대로 일어설 수 없었다.


"어휴, 엄마. 숙소 다 와서 무슨 일이야. 일어날 수 있겠어?"


아이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비에 젖은 옷을 털어주고, 넘어진 자전거 핸들을 잡아 살펴보고 자전거를 건물 벽에 기대놓은 뒤, 내가 떨어뜨린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챙겼다. 문득, 여행 떠나기 직전 도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짱이 효도 관광이냐고. 이 정도면 효도 관광 수준이 아니라 수발 관광이구나. 미안하다, 연짱이.


비 들이치지 않는 주차 공간에 자전거 두 대를 세워두고 절룩절룩, 계단을 올라 객실 문에 카드키를 댔는데, 띠리릭, 이 아닌 삑삑, 효과음이 들리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리셉션에 가니, 오후 근무자 언니가 띄엄띄엄 설명을 해주는데, 어제 일 박 비용만 지불했을 뿐, 몇 박을 더 할 지, 언제 숙박비를 지불할 지 가타부타 말이 없어서, 카드키를 잠궈두었다고. 더워지기 전 아침 일찍 움직일 생각에 바빠서, 다른 건 살피지 못하였다. 이미 체크인을 하였으니, 체크아웃하면서 숙박비를 정산하면 되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다. 숙소 입장에서는 내가 진상이었겠구나. 얼른 나머지 숙박비를 지불하고, 영수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언니는 열심히 서식을 꾸며서 영수증을 출력해주었다. 성실한 리셉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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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긴 하루 끝에 겨우 먹는 저녁 밥. 자전거 장바구니에서 내동댕이쳐져서 연짱이가 제일 좋아하는 닭고기덮밥은 그냥 닭고기와 밥이 되었다.


저녁밥을 먹고 무사히 보낸 하루에 감사하며 잠에 들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연짱아, 엄마가 고무팩 아주 브랜드 별로 두 개씩 쟁여왔잖아. 우리 그거 해보자."

"지금? 귀찮은데."

"엄마는 자전거에서 먹을거리하고 함께 내동댕이쳐져서, 어깨하고 다리도 몹시 아퍼. 기왕 갖고 온 것 오늘 개시해보자."


그런데. 내가 생각한 점도가 아니었다. 앰플과 섞은 다음 얼굴에 도포하라는데, 앰플을 넣지 않았는데도 막 흘러내려. 연짱이 볼부터 쓱쓱, 발라주는데, 바르는 족족 흘러내려. 살바도르 달리 그림도 아니고, 주르륵 주르륵,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계속 주르륵 주르륵.


"엄마, 이거 맞아? 계속 흘러내려서 눈에 막 들어가. 이러다 실명되는 거 아니야?"

"와, 점도 무슨 일이니. 안 되겠다. 우리 딸 실명하면 안 되지. 그냥 닦아내자."


그런데. 잘 안 닦인다. 닦이지도 않는데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끝이 없어. 닦아내고 걷어내는 중에도 계속 연짱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


"엄마, 눈 따가워 죽겠어. 그냥 씻어내야겠어."

"알았어. 어휴,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 손 잡어, 욕실 데려다 줄게."


눈을 못 뜨는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더듬더듬 욕실로 가는데, 마음은 급하고 눈을 감고 있으니 빨리 움직이지는 못하겠고, 막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겨우 엉금엉금 세면대에 다다라서 열심히 물로 씻는데, 그것도 안 돼. 한 쪽 눈만 간신히 뜬 아이가 아예 물줄기로 박박 닦아내리려고 샤워기를 켰는데, 수압이 너무 약하니 이것 마저 맘대로 안 돼. 수압도 수압이지만 샤워기 호스 길이가 어정쩡하여 흘러내리는 팩은 지워지지는 않고 윗옷만 잔득 젖어. 그러다 문득, 이역만리 먼 곳에서 둘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싶은 생각이. 이심전심이라고 아이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둘이 우뚝, 멈춰서서 웃느라 거의 오열할 지경이었다.


"아니.ㅋㅋ 이게 지금 무슨 일이냐고. 이 밤에 우리집도 아니고 쁘라쭈압에서."

"너무 웃어서 배에 복근 생기겠어, 엄마. 맨 얼굴에 하려고 했던 우리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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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짱이와 내게 큰 웃음을 준 고무팩. 기술도 융통성도 없는 내 잘못이지, 고무팩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맨 얼굴에 펴바르면 연짱이처럼 된다. 거즈라도 얹은 다음 펴 바르던지, 아니면 고무팩에 점도를 좀 더 뻑뻑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첨가해야 한다.


정말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