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AINED UNSPOKEN
우기 쁘라쭈압의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먹기 싫어서 해산물 식당 대신 GREEK TAVERNA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던 건데, 토니를 생각하면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토니는 동맥경화와 염증 때문에 설탕을 거의 드시지 않는다고. 주변 다른 식당들에 비하면, 이 집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달지 않은 편이었다. 태국 음식점들은 거의 모든 음식들이 달고, 태국 사람들 역시 달고 짠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실제로 나이 들어 신장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는 말을 지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
GREEK TAVERNA 사장님과 직원들은 토니와 레오가 들어서자 너무도 익숙하게 레오에게 인사를 하였다. 봤지, 모두가 레오를 알잖아, 토니가. 모두가 레오를 알기 때문에, 식사 내내 음식점 테이블 아래 레오가 누워있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연짱이가 주문한 망고 음료.
연짱이와 상의하여 주문한 카프레제.
토니가 주문하신 그린 커리. 양이 꽤 많았는데, 이 많은 걸 밥하고 다 드셨다. 2년 전 뭘 드시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샐러드 정도만 가볍게 드시며 사시는 줄 알았는데, 굉장히 의외였다. 그러니까 건강하시지. 엄마도 잘 먹어. 그래야 건강하게 산다고, 연짱이가.
그리스 음식점에서 주문해 본 그리스 식 음식, 무사카. 처음 먹어본 음식임에도 꽤 맛있었다. 특히, 저 소스.
"토니, 2년 전에 제 아빠 투병 중이었다고 말씀드린 적 있는데, 기억하세요?"
"응, 그랬었지."
" . . . 그 해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파서 쉽지 않아요. 저는 아빠가 쓰시던 테니스 라켓하고 취미로 하셨던 서예 용품을 가지고 왔어요. 동생들이 가져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이어서요."
"그래서 미리 유언을 작성하는 거야. 자식에게, 친척에게 이만큼 남기고, 사회에 얼만큼 환원을 하고. 그런 것들은 작성하는 과정도 복잡하고, 조율도 어렵지. 유언을 작성하고,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나는 내 사후 화장을 할 곳도 물색해뒀어. 왓 아오 노이에 소각로가 있거든."
나는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INCINERATOR'라니. 아마도 내가 CREMATORIUM, CREMATORY 라는 단어를 모를까봐 그렇게 말씀하신 듯 하였는데,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연짱이까지 소각로요?, 라고 되물을 정도로 놀랐다. 나는 시아버지와 내 아빠의 화장장을 직접 치렀다. 거의 20년 가까이 된 시아버지의 화장 때는 시아버지의 육신이 들어 있는 관이 소각로로, 검붉고 푸른 혀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불꽃 속으로 감겨 들어가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트라우마처럼 기억 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다. 내 아빠의 화장 때는 육신이 말그대로 회색 뼈 조각이 되어 나온 것을 보고,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웠다. 사람이 이토록이나 놀라는데도 죽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었다. 그런데, 살아계신 분이 소각이라니오.
"내 사후 내 시신을 소각로에 소각해서 바다에 뿌려 줄 친구까지 유언에 있어. 푸켓에 사는 친군데 . . . "
아, 거기까지 듣고 나는 오열하였다. 당신의 ONLY SON은 어디 두고 이역만리에서 친구에게 당신의 마지막을 맡기느냐고. 하지만 그 말들은 언어화되어 내 입 밖으로 발화될 수 없었다.
"아니예요. 토니는 죽지 않을 거예요. 죽지 마세요."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어."
토니의 담담한 말이 나는 너무 슬펐다. 죽음은 전혀 상관 없는 머나먼 타인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몰라도, 애정이 보태어지면 그 때부터는 흔한 현상이라는 말에 쉽게 수긍할 수 없게 된다. 죽음이라는 개념을 대하는 태도가 머리가 아닌 감정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리적 세상에서 그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손도 얼굴도 만질 수 없다는 뜻이다. 따뜻한 온기 따위 없는 사진 몇 장 덜렁 남는다는 의미이다. 내가 그토록이나 사랑하는 존재인데, 그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수긍이 된단 말인가. 토니의 얼굴 위로 내 아빠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죽어가는 내 아빠를 향하여 내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러고 싶었듯, 당신은 죽지 말라고, 나는 당신의 죽음이 싫다고, 토니의 어깨를 흔들어 일깨워주고 싶었다. 죽지 말라고.
내가 너무 울어서 연짱이가 내 대신 토니께 변명을 하였다. 엄마는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 토니는 담담하였다.
소중한 존재의 유무, 내게는 전 우주가 달린 그 엄중한 차이 때문에 내가 울거나 말거나, 레오는 꿀잠을 잤다. 레오에게 내 아빠는 말그대로 털끝에 쓸리는 티끌 만큼의 의미 조차 따질 수 없는 아무나도 못 되는 무언가, 혹은 더 나아가, 밥그릇에 도르륵, 떨어지는 사료 한 줌이라는 현실적 일상과도 전혀 상관 없는 미지의 추상성 같은 것이다. 개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한다면. 내게는 존재 혹은 우주가 흔들리는 사건이지만, 그건 내게나 그러할 뿐, 현재의 레오에게는 당장 배에 닿는 매끈하고 적당히 시원한 식당 바닥의 촉감과 무료함을 달래줄 잠이 제일 중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토니 말씀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다. 세상의 권세는 남아 있는 사람들,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초점 맞춰져 있으니. 어제 신문으로 오늘을 살 수는 없다. 어제 신문은 그저 오늘 아침 새 이슬을 맞으며 피어난 꽃다발을 감싸는데나 쓰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은 토실토실 빵빵한 레오의 동전색 엉덩이인 거다.
"레오는 언제 밥 먹어요?"
"아침 10시하고 오후 5시 두 번."
하루 두 번만 밥을 먹고서는 저런 비만 견이 될 수 없어, 도로시가 확신의 미간으로 말하였다.ㅋㅋ
우리 숙소까지 토니가 직접 운전하여 데려다 주셨다. 그리고 그 잠깐 동안, 차 안에서 나는 레오 발에 끊임없이 짓밟혔다. 무슨 발톱까지 뚠뚠 딴딴해서 꽤 아팠다. 엉엉.
"내일 기차 시간이 몇 시니?"
"낮 12시인가 1시예요."
"너네가 아는지 모르겠는데, 태국 기차는 무조건 연착해. 12시에 온다고 하면 1시 반에나 도착할 걸. 오전 10시까지 너네 숙소로 데리러 오마."
"고맙습니다."
"그래, 내일 아침 보자."
내일, 토니가 정말 와주실까. 밤 사이 기억이 새로워지는 건 아닐까. 참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연짱이에게 핀잔만 한 바가지 들었던 또 한 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