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CREMATORIUM, WAT KHONG CHIAM
콩찌암은 동네가 손바닥 만 할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에 현지인 관광객들이 수시로 다녀가는 이유는 가까이에 파땜 국립공원과 쌈판복이라는 유명한 관광 스팟이 있기 때문이다. 파땜 국립공원은 태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스팟으로 유명하고, 선사 암각 벽화와 영화 '알렉산더' 촬영지가 있다. 쌈판복은 '3천 개의 구멍'이라는 의미로, 마치 화성이나 다른 혹성에 온 것처럼 구멍이 숭숭한 바위 지형이 신기한 볼거리여서, 현지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6년 만에 다시 온, 손바닥 만한 콩찌암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차비를 차려 숙소를 나섰지만, 왁! 열심히 걸어보겠다는 굳은 각오가 무색하게도 넘나 더운 것. 하지만 궁금함이 더위를 이겼다. 메콩 강변 쪽에 무엇이 있는지 쭉, 걸어가보기로 하였다.
메콩 강(RIVER KHONG). 메콩 강하고 문 강이 만나는 지점의 강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콩찌암은 '두 가지 색 강(매 남 썽 씨, TWO COLORED RIVER)'로도 유명하다. 배를 타고 나가야 잘 보이는 건지 . . . 나는 올 때마다 잘 모르겠더라.
강변 길의 끝에 왓 콩찌암이 있다. 사원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그곳 뷰 포인트에서 시원하게 보이는 문 강(RIVER MOON) 때문에 사람들이 들르는 것 같았다. 마침 주말이어서 미니밴을 타고 온 가족 여행객들로 뷰 포인트는 붐볐다.
왓 콩찌암은 작은 동네 대비 경내가 매우 넓은 사원이다.
왓 콩찌암은 화장터(CREMATORIUM)의 역할까지 함께 하고 있는 사원으로 보였다. 은유나 수사적인 죽음이 아닌 현실적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원이라는 점에서, 이 사원 역시 쁘라쭈압의 왓 아오 노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구나, 싶었다. 이곳 경내가 넓은 이유, 그리고 사람들이 이곳에 꾸준히 들르는 이유 중 큰 지분은 사진 속 탑들 때문일 것이다.
일반인 화장을 하고 나온 유골을 넣은 탑들이 최근에 만들어져 반짝거리는 것부터 비비람에 쓸린 테가 역력한 것까지, 사원 담을 따라 쭉 이어져 있었다. 어떤 유골함 탑에는 누군가의 사진 한 장이, 다른 탑에는 부부의 사진이 함께 붙어 있었다. 의식하지 않고 살 뿐, 죽음은 언제나 아무럴 것 없는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신앙이 한 몸인 모든 생활밀착형 종교가 그려주는 죽음은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볕을 쬐고 비를 맞는 탑들처럼, 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죽어가는 내 아빠와 쁘라쭈압의 토니 앞에 다시 선다고 해도, 나는 또 오열할 것이다. 죽음 앞에 담담한 당사자와 죽음 앞에서 담담할 수 없는 남은 자, 혹은 좀 더 감정적인 자와 덜 감정적인 자의 표현의 차이일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유골함 탑인지라 울지는 않았지만, 서글펐다. 어쩔 수 없다. 얼마가 될 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한동안 이러할 것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지, 정말 무덥고 습한 날이었다. 잠잠한 시선으로 올려다 본 흰 구름 띄운 하늘이 참 예뻤다.
오후 5시 즈음 숙소로 돌아왔는데, OMG. 2층 버스 두 대가 너른 구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고, 신관 계단 입구에 할머니들이 전기줄에 앉은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 삼매경 중이었다. 그런데, 와, 할머니들. 눈은 나이 불명, 국적 불명 외국인에게 고정되어 있는데, 입은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어마어마한 스킬을 시전하였다. 오늘 잠은 다 잤구나, 싶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어제처럼 이상한 먹을거리만 파는 시장에서는 저녁거리를 사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않아서, 우울한 상태로 씻고 나와 맥주 한 캔 마시고 자려고 했는데, 할머니들 너른 조식 식당에서 가라오케 판 벌이시고 난리가 났다. 사회자가 중간 중간 멘트도 하고, 심지어 몇몇 할머니는 무슨 가수처럼 노래도 잘 해서 시끄러운 와중에 너무 웃겼다. TV도 안 나오는데, 하나도 안 적적해. 심지어 신나.
'연짱이, 할머니 할아버지 단체 관광객들 지금 가라오케 합창 중이셔. 몇몇 할머니는 무슨 가수처럼 노래도 잘 해. 막 화음도 넣어. 너무 웃겨서 화도 안 나. 심지어 막 신나.'
'나 없이 적적할까봐 오신 분들 아니야?'
'그런가. 근데 두 번은 안 오셨으면 좋겠어. 언제까지 저러려나. 엄마 자야 되는데.'
밴드 톡으로 연짱이와 대화를 하다가, 연짱이 자러 들어가고도 한참 뒤 조용해졌다. 여기 봐, 죽음에 침울해 할 때가 아니야. 삶은 현재를 즐기는 거라고. 'LIFE GOES ON'은 이런 거야. 할머니들이 내게 준 것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각혈할 것 같은 소음이 아니라, 적적할 새 없이 현재에 몰입하도록 나를 휘몰아간 불꽃 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