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S FOR SMILING
데시벨 높은 누군가의 새된 소리에 깨어나 시계를 보니 아침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밤 1시 넘도록 고래고래 고성방가를 불사하며 몸을 불살라노시고, 그것도 모자라 각자 방으로 흩어져서 웃고 떠드느라 언제 주무셨는지도 모르는데, 참 체력들도 좋으시지. 일상을 떠나 놀러온 자들은 원래 내일 쓸 체력을 미리 당겨 쓰는 법이기는 하지.
나이 든 콘 타이(THAI PEOPLE)들의 흥겨운 소음에 아침녘까지 시달리고도 내가 웃는 이유 한 가지는 아마도 그들 언어의 의미를 아예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를 모르는 언어들은 그저 흩어지는 소리의 파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음에 고이지 않는다. 그저, 한 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나갈 뿐이다. 물론, 흩어지는 소리일지라도 새벽부터 시작하여 하루 종일 스피커를 통해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기도 소리나 노래 소리, 혹은 고래고래 목청을 높인 스피커 폰 통화처럼 강제적 소음 청취 상황이라면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 올라갈터라 분노하겠지만, 들뜬 마음을 장착하고 집 떠나 온 사람들이 잠시 잠깐 크게 내는, 내것과 달라 그 의미를 모르는 언어는 공기 속으로 희석되어 사라질 뿐, 마음을 괴롭히지 못한다.
내가 웃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과 나의 관계성에서 기인한다. 언어는 의미 만큼 관계에도 영향을 받는다. 발화 대상과 나의 관계가 친밀할수록 언어는 스쳐 지나가거나 흩어지지 못하고 마음에 고인다. 그래서 가족이나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의 부정적인 말들은 오래도록, 혹은 인생 전반에 걸쳐 털어내거나 떨굴 수 없는 깊은 데 고여 있으면서, 현재진행형으로 나를 괴롭게 한다. 하지만 어제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나와 미움이나 애정 그 어느 것으로도 얽히지 않은 전혀 모르는 이들의 언어 역시 내게는 어떤 타격감도 주지 못하는, 불규칙하거나 리듬감 있는 소리의 파편들일 뿐이다. 그리고 언어의 바로 이 특성 때문에 내가 다른 나라 외유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대놓고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든, 넌지시 심어놓고 곱씹게 만들든, 세세히 알아들을 수 있는 모국어와 그 발화 대상이 주는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언어에 개복치처럼 예민한 스스로를 일정 기간 동안이나마 편안히 숨쉬게 해주고 싶어서, 언어가 소리의 파편에 불과해지는, 생뚱맞은 나라, 생면부지 깡시골에 있고 싶은 것이라고.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내가 웃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행자의 관대함 때문일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에서 잠시나마 놓여난 여행자로서, 그 현재가 주는 느슨함과 너그러움이 제일 크지 않을까. 여행자로서 맞는 현재 중요. CARPEDIEM 제일 중요.
단체 관광객들은 식사를 마치면 타고 왔던 두 대의 차량에 다시 실려 순식간에 콩찌암을 떠날 줄 알았지만, 단체관광객이 대목의 시작이고 끝인 콩찌암을 내가 너무 띄엄띄엄 생각했나 보다. 아침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왔는데, 순간 우리 숙소가 아닌 줄 알았다. 그 조용하던 숙소 앞이 온갖 상인들로 북새통이었다. 메콩 강 혹은 문 강에서 잡은 것으로 보이는 생선 말린 것을 파는 상인들부터, 생선젓갈과 장을 파는 상인, 이 때를 놓치지 않는 복권 판매 소년, 심지어 아줌마, 아저씨들이 어제 밤 격하게 놀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액자 째 파는 사진사까지 와글와글하였다. 아니, 사진사 아저씨는 아예 잠을 안 주무신 거예요?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줄 서서 본인이 나온 사진 찾느라 숙소 앞은 구관, 신관 할 것 없이 야시장 만큼 붐볐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울려퍼지는 느린 곡조의 태국 트로트가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배웅하였다. 그런데, 그게 내 귀에는 '안녕히 가세요' 라기보다는 '아침 잘 자셨고, 기념품 살 만큼 사셨으면 인제 그만 가세요,' '댁들이 얼른 가야 청소하고 정리하고 다음 손님 받아요'로 들렸다. 뭐지.ㅋㅋ 그리고 정말이지 순식간에 그들은 사라졌다. 다시, 숙소에는 구관, 신관 통틀어 멍, 한 나만 남았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지나는 소와 21세기 목동. 어린이를 갓 벗어난 어린 소여서 낯선 사람이 쳐다보면 투정을 부린다. 목동은 말하자면 임시 보호자 혹은 위탁자여서, 어느 순간 어린 소와 목동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더는 볼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가 고되게 부려먹다가 나중에 고기나 취하면 그 뿐인 모진 사람이 아닌, 가족처럼 돌보고 좋은 여물 먹이고 일 안 할 때는 푹 쉬게 해주며 애지중지 대해줄 좋은 주인을 만나기를 마음 깊이 빌어주었다. 행복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