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XIETY DISORDER
가방을 마저 꾸리고, 아침 6시 전 우본 공항으로 가야 해서, 날이 밝기도 전 일어났다. 공항에 도착하여 아이가 체크인을 마치면, 연짱이와 무려 13일 동안 이별이라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였다. 그랩을 타고 우본 국내선 출발(DOMESTIC DEPARTURE) 터미널에 내렸다. 아침 6시 30분이 채 안 된 시간. 항공사 국내선 지상직 직원들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은 터라, 체크인 카운터는 오픈 전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국내선 항공편 체크인을 하고 DEPARTURE로 들어간 후 혼자 남겨질 엄마가 걱정이었을 것이다.
"엄마, 내가 우본 버스터미널 가는 그랩 탑승 위치까지 정확히 지정해 놓을테니까, 나 보안검색대 들어간 다음, 휴대폰 버튼만 클릭해서 잡아 타고 가."
아이는 그것만으로는 불안하였는지, 우본 공항 그랩 실제 탑승 위치와 온라인 상 탑승 지정 위치가 같은지 직접 구글지도를 켜고 답사까지 해주었다.
"엄마, ARRIVAL EXIT 3이 우본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이고, 그랩 택시 지정 공간이래. 여기 게이트 3 보이지? 그랩 버튼 누르고 거기 서 있으면, 그랩 기사님이 올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러는 사이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가 열렸다. 체크인을 마친 아이는 DEPARTURE 안으로 들어가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좁은 틈으로 보이는 엄마를 향해 계속 웃어보였다. 엄마, 걱정하지마, 아이의 입 모양이 너무나도 선명하였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13일이나 아이와 떨어져 있어 본 일도 없었고, 그렇게 오래 각각 다른 나라에 있어 본 적도 없었다. 나는 뭐 그리 좋은 일이 있다고 이 나라에 아이 없이 혼자 남을 생각을 하였을까. 덥디 더운 우본의 아침 바람이 너무 춥고 시렸다. 공항 시큐리티들이 지켜보는 중에 챙피한 줄도 모르고, 다 늙은 여자가 공항 한복판에 서서 엉엉, 울었다. 아이 떠나 보낸 늙은 엄마는 공항에서 어쩔 줄 모르고 맥을 놓았다. 한참을.
웅웅.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 전부터 울리고 있었던 것을 이제야 알아챘던 것. 그 흔한 카톡도 SNS도 없는, 혼자 남을 아날로그 엄마가 불안하였던 아이는 여행 전, 일종의 보루로서 밴드라는 것을 개설하여 두었다.
'엄마, 이거 카톡하고 똑같은 건데, 엄마하고 나하고 둘만 보고 대화 나눌 수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이걸로 연락하면 돼.'
아이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탑승 게이트를 확인하자마자 밴드 톡을 보냈는데, 패닉 상태의 엄마는 그걸 모르고 계속 울고 있었던 거다.
'엄마, 왜 그렇게 울어. 누가 보면 나 내전 지역 종군 기자로 가는 줄 알겠어.'
'엄마, 그랩 잡았어? 그거 버튼만 누르면 돼.'
'엄마, 버스터미널 도착했어?'
'엄마, 왜 답이 없어?'
'엄마, 아직 우본 공항에서 울고 있는 건 아니지?'
애타는 아이의 마음이 같은 색깔의 문장으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우본 버스터미널 가는 중이야, 답을 하고, 아이가 미리 만들어 준 화면 속 버튼을 눌러 편하게 그랩을 잡아탔다. 다시 우본 버스터미널. 단 1분 1초라도 우본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디로 가지? 우본과 멀지 않은 곳. 어디가 좋을까 . . . 좋은 기억이 있는 손바닥만한 콩찌암이 떠올랐다. 귀국 전까지 머무르든, 혹은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든, 지금은 콩찌암으로 가자. 가방 때문에 추가 차징을 하려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기사 아저씨와 티켓 카운터 아줌마는 두 말 없이 내 큰 가방을 미니밴 맨 뒷좌석에 실어주었다. 라오스와의 국경 분쟁 이슈 만이 다는 아닐 것 같은 한산함이 안타깝기는 하였지만, 멘탈 시들시들한 현재의 내게는 승객 없는 미니밴이 고마웠다. 졸다 깨다 차 창 밖으로 내다 본 콩찌암 가는 길은 비에 젖어 있었다. 건기에만 와 봐서 몰랐을 뿐, 우기의 우본 주는 더위 만큼 비가 차지하는 지분도 컸다. 차 창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큰 빗방울들이 내 마음 속 굵은 빗금을 따라 방향 없이 흘러내렸다.
미니밴 안에는 할머니와 손녀로 보이는 두 사람, 모녀로 보이는 아줌마와 다 큰 딸 두 사람 뿐이었다. 내게 관심을 보였던 아줌마와 딸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하차하였고, 머리카락 하얀 할머니와 작은 손녀는 내가 콩찌암에서 내릴 때에도 내리지 않고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라오스 국경 도시 청멕 주변에 사는 이들 같았다. 눈이 얼굴의 반인 것 같은 조그만 아이는 아마도 뜻하지 않았을 동승객 외국인이 매우 신기하였는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창 밖을 보다 고개를 돌려도, 잠깐씩 졸다 깨어도, 어김없이 아이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는 거무죽죽하게 죽은 내 낯에도 눈만 마주치면 수줍게 웃어주었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있는데, 아줌마가 어떻게 하리보 한 개가 없네, 아이를 향해 웃어주었다. 아이는 우울한 터널 끝 작고 따뜻한 빛 같았다. 마음이 놓였다. 콩찌암으로 가기로 마음 먹길 잘 했다.
에어컨 나오는 콩찌암 카페에서. 도로시 귀국 이틀 전에 아직 멈춰 있는 일기.
연짱이가 떠난 오후, 무덥고 비 흔한 콩찌암에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문득 추워져서, 뜨거운 카푸치노를 마셨는데도 추웠다. 아이 없는, 비 내리는 콩찌암은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