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며 경험한 나의 기회와 슬럼프_2편
알제리, 모로코에서의 기회와 슬럼프에 대해 바로 전 1편에서 풀어서 썼다. 쓰고 난 뒤 그보다 앞선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접하며 경험했던 기회와 슬럼프도 추가로 풀어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에 살았던 그 시기를 잠시 떠올려보면 '그땐 참 좋았는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순간순간 깊이 들여다보면 나름의 힘든 시기도 있었다. 파리에 산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들뜨지만 나는 과연 어떤 고충의 시간들이 있었을까?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매 순간이 기회였고, 슬럼프는 언제나 내 곁에 찾아왔다. 다시 말해 기회와 슬럼프는 어느 특별한 순간에 찾아온다기보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있고, 기회와 슬럼프라고 정의하는 주체는 자신이다.
처음 프랑스를 도착했을 때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할 때는 입마개도 착용하지 않은 사냥개 같이 큰 강아지가 허름한 차림새를 한 사람과 같이 올라타 바로 앞에 앉아 같이 이동했다. 한마디로 파리의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뭔가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청결하거나,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유색인종의 다양한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파리의 부정적인 첫인상과 함께 프랑스 생활을 시작했다.
어학교를 방문했던 첫째 날이 생각난다. 자기소개를 했는데, 6개월간 한국에서 공부했던 몇몇 단어들을 조합해서 간단히 몇 문장을 말했다.
같은 반 학생들을 보니 딱 봐도 한국인이 꽤 있었고 그들 중에는 파리에 온 지 몇 개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기초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나도 그들처럼 계속 기초반에만 머무르면 어떻게 하지?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기초를 공부하고 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ABCD부터 배우는 A0(왕초보) 반에서 시작하지 않고, A2(초보) 반에 배정되어 프랑스어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같은 반 외국인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할 줄 아는 말은 지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자주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같이 오전에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중간에 외국인 친구들과 알고 있는 표현 한 두 개씩 사용하며 계속해서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수업 후에는 도서관에 방문하여 문법공부를 따로 하기도 했다. 때문에 파리를 막 즐기지는 못했다. 파리는 내게 또 다른 일상이 되었고, 일단 언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회화가 절실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파리에서 언어를 배워 스스로 자립해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3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호주에서 '프리 잉글리시 클래스'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영어를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에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발품을 팔기 시작했고 파리의 생제르망데프레 (Saint Germain Des-Pres) 라는 곳에서 진행하는 한 곳을 발견했다.
호주에서의 경험이 프랑스에서도 도움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은퇴하신 후에 여가 시간에 외국인들 대상으로 무료로 프랑스어로 대화를 해주시며 프랑스어를 가르쳐주고 계셨다. 일단 좋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어학교에서 주로 보이던 아시아인들보다 유럽인이 많이 보였다.
그곳에는 6개 정도의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각 테이블마다 원어민 한분과 5명 이내의 외국인들이 프랑스어를 한마디라도 해보려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곳을 몇 개월간 매주 찾아갔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위기였다.
대부분은 유럽인들이라 그런지 그래도 곧잘 문장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나는 일단 그들이 뭐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고, 듣기가 되지 않으니 자리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끔찍했다. 그곳에 있는 거 자체가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그곳에 가끔 오시는 한국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꽤 불어를 잘하셨고, 부러웠다. 어떻게 프랑스어를 당신과 같이 잘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도 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큰 도움이 되는 답변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미래에 프랑스어 통번역을 하게 되고, 프랑스인들 대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한국어를 가르치게 될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앞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고, 일자리를 찾는 중에 스타벅스에서 면접 기회가 생겼다. 프랑스 현지인들 매니저들과 몇 시간 동안 면접을 진행했고, 모두 프랑스어로 진행됐다. 면접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질문을 프랑스어로 듣고 대답했다. 몇몇 개의 질문은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어보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몇몇 과정을 거쳐가며 진행되었지만 아쉽게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난 더 큰 것을 얻은 상태였다. 나에겐 원어민과 몇 시간 동안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아듣지 못해 좌절하기만 했었는데,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 답하며 대화를 했다는 것만으로 나 자신이 뿌듯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프랑스어라는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더욱더 늘어갔다. 늘어가는 것이 느껴지니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 이후로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슬럼프와 시련 뒤에는 또 다른 기회와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앞이 보이지 않아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나는 경험을 통해 믿기지 않지만 조금만 참고 가다 보면 언젠가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