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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투안 Oct 19. 2020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아무도 당신 인생을 판단할 수 없다.

누구나 살면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고 묻는 순간이 온다. 이러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자주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삶에 치여, 자신에게 질문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곤 답을 미룬다.


 그 이유는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인생에 정답은 없다'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문제는 이 문장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어릴 때 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시험을 보며, 마치 정답을 찾는 게 직업인 마냥 살아간다. 우리는 정답을 꼭 찾아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정답을 맞히지 못했을 때 따라오는 무게는 무겁기만하고, 누군가는 두렵기까지 하다. 정답을 찾아 1등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살아가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참 이상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긴 한데, 우리는 사춘기를 거치며 나는 누구고,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즉,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세상과 1:1로 마주한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기존에 내 일상적인 삶이 싫증이 나고 무료해지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지고, 심지어 나를 낳아준 부모님도 싫어진다.


 나 또한 사춘기를 보냈지만, 반항적인 성격을 갖지 않았던 나는 그냥 큰 고민 없이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줄곧 잘 따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뛰어나게 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학교의 규칙에 따라 빠지지 않고 중고등학교 시절 1번인가 2번을 제외하고는 개근을 할 정도로 사회가 만든 툴에 적합한 기계처럼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남들 다가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이유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고3 때는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주변 어느 누구도 다른 길로 가는 친구는 없었다. 모두 사회가 원하는 모범생이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거기서 대학을 안 가고 갑자기 일하러 간다고 했으면 모두 놀랬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지만, 마치 대학을 가는 길이 정답인 듯이 모두 같은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20대가 되고, 나는 조금씩 마치 정답인 듯한 길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겁도 났지만, 그냥 새로운 것을 해본다는 것이 설레었다. 두려움보다는 설레는 감정이 이긴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해외생활을 했던 그때를 되돌아보면, '내가 행복했구나'생각이 든다.


 이것도 신기하다. 그 당시에도 물론 좋았지만 '행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살았던 날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해 얘기하자면, 얘기가 길어지니 생략하고 확실한 건 행복을 느끼는 요소에 대해서는 사람들 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는 정말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삶이 바빠 같은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흘려보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 때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는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프랑스에 살며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행복하다고 느꼈다. 일주일에 많게는 5가지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어를 배우며,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간다는 재미와 어느 순간 나는 어디 가서 프랑스어를 꽤나 잘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 때쯤에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우리는 항상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복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큰 연관이 있다. 그러나 그 행복한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생은 정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크고 작은 문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길 원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야 하는데 아무도 '너는 이렇게 해야 행복할 수 있어'라고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1+1=2와 같은 단일화된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풀어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 정답을 찾아야 행복해 지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어느 순간 몇 개의 문제를 풀어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그게 행복이었나? 의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냥 내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에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근데 여기서 의심하는 행동은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답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는 것은 정상이다. 나는 행복한 것 같은데, 유튜브나 SNS를 보면 나보다 더 이쁘고, 잘생긴 사람도 많고, 더 좋은 차를 차고 좋은 곳을 다니는 것 같다. 즉, 우리는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럼 나의 행복은 한 없이 작아진다. 그들은 마치 "이렇게 해야 행복해져"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의 행복은 오로지 내가 느끼는 감정인데, 내가 느낀 감정은 금방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매일 누군가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비교를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린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며 자랐다. 사회는 남들과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마치 본능처럼 비교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우리 집보다 좋아 보인다거나, 부모님의 직업은 더 좋아 보이고, 친구는 공부를 나보다 잘한다. 이렇게 비교를 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그 비교 개수는 더 많아지게 된다.


행복이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호르몬과 크게 연관이 있다. 사람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고, 남들과의 비교를 줄여나간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정답은 없는 인생에서 나만의 행복을 더 쉽게 찾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답은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내가 행복이라고 정의하면 행복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주 느끼도록 노력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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