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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작은 거짓말, 지독한 자기확신, 위선, 악

feat.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룰루밀러

by 최바람

!!스포있음!!


독후감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쓰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글을 써 놔야 기억에 남을 듯 해서...


이 책은 엄청난 꺾기를 선보인다.


이 책의 앞부분, 전반부를 읽을 때는 고난과 역경, 불운이 닥쳤을 때에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한 사람의 강인함, 파괴되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강인함이 작은 거짓말로부터 비롯된 지독한 자기확신, 그리고 선으로 포장된 악의, 그리고 그로인해 짓밟혔던 많은 소중한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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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에세이인 이 소설은 연달은 불운을 겪은 주인공이 계속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힘과 용기를 얻기 위해 어떻게 그걸 이겨내고 강인한 삶을 살아냈다고 여겨지는 한 인물의 에세이 두권을 중고거래로 사게되고 읽으면서 시작된다.


그 에세이를 쓴 사람은 생명의 나무로 유명한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학 채널 보다로 알게된 생명의 나무가 소설에 등장해 반가운 마음에 앞부분은 단숨에 읽혔다. 그리고 심지어 그가 스탠퍼드 초대 학장이라는 사실까지 놀라웠다.


그리고 바닷물에서 산소를 분해해 낼 수 있는 남조세균(시아노박테리아) 이야기, 그리고 우생학자였던 통계학자이자 다윈의 사촌, 그리고 통계학 연구소를 세운 것으로 유명한 골튼(수리통계학 수업에 배웠던) 이야기까지 펼쳐지면서 물고기에서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어떻게 여기로 이어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부분에서 나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동안 모아왔던 수천종이 넘는 새로운 종의 물고기 표본을 잃었을 때 물을 뿌려가며 지켜내려고 했던 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며 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모습, 그래서 대학원을 진학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다른 의미에서, 사실은 정반대의 이유로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조던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운을 겪는다. 형도 군에 입대해 병에 목숨을 잃고, 그의 자녀들도 질병에 죽었으며, 아내도 잃는다. 그래도 스탠포드 가문의 제의로 스탠포드 대학의 최초의 학장이 된다. 그의 스승 루거스는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그는 자신은 그렇진 않지만, 스승의 분류학자로서의 업적은 존경한다며 동상을 세우는 일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파괴되지 않는 것.


그의 연구실에 쌓여있던 모표본(최초로 확인된 새로운 종의 표본)들이 지진으로 인해 모두 잃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그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물을 뿌려가며 많은 수의 표본을 살려냈고, 희미한 기억들을 되살려가며 그표본들을 어디서 얻었는지 이름을 무엇으로 지었었는지 기억해 내었다.


나는 이때 이러한 모습들이 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강인한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여기서 이 소설의 화자는 슬며시 자기계발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어 든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약간의 긍정이 성취나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에관한 많은 연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은 거짓말에서 비롯되었지만 삶을 계속 살아나가게 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작은 거짓말이 진실보다 낫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고뇌에도 빠진다.


소설의 절정은 스탠포드 가문의 남편이 죽고 아내와 조던의 신경전을 벌이다 아내가 독살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화자는 그가 그녀를 독살했다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생명의 나무와 다른 생명의 사다리 이야기가 나온다. 조던의 스승, 루거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했다. 생명에는 위계가 있으며 열등한 것과 우등한 것이 있다고 믿었으며 생명에는 위계가 있다라고 믿었다. 그래서 열등함을 버리지 않으면 생명의 사다리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예시로 멍게를 예로 들었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던 조던은 열렬한 우생학의 지지자였다. 우생학의 지지자들의 주장으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불임시술이 불법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끔찍한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원제: Why Fish Don't Exist)인지가 뒷부분으로 가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왜 관념론과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 그리고 이름이 없더라도 실재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앞부분에서 했었는지도 뒷부분에 가서야 이해하게 된다.


결국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밝혀졌다(여기서 책 제목을 번역하는데 고민했을 출판사 관계자분들의 고민이 느껴졌다. 영어로는 모두 Fish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불임시술을 하던 보호소에 갇혀있었고, 그때 그녀를 도와주던 친구와 함께 남은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친구는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았으며, 많은 범죄의 피해자였음에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친구에게 묻는다. 무엇이 계속 삶을 살아가게 하느냐고.


그리고 다윈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다양성의 중요함, 그리고 목표지향적인 삶 바깥에서 삶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 해 나간다.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아직도 그러한 시설들이 남아있음에, 그리고 우생학을 널리 퍼뜨리고 제노사이드를 일으켰던 독일뿐 아니라 미국 사회 내에 여전히 그러한 악의가 살아있음을 꼬집는다.


과학자는 의심하는 존재라고 했다. 칸트도 떠올랐다. 사람은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정언명령이 떠올랐다. 생물학, 유전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은 뒤의 기분은 뭐랄까... 암담하면서도 침울해졌다. 얼른 마지막 책장을 덮고 싶었다.


잘못되고 맹목적인 신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지 알게되는 요즘이다.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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