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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바람 Jun 29. 2024

첫 유럽여행, 그리고 카톨릭 성지 까타콤베

feat. 폭설, 혹한, 2200원/유로, 교황님 그리고 또 다시 귀인

오늘은 꼭 글을 써야겠다 다짐했다. 방송대 기말고사다 뭐다 바쁜 6월이었다(나는야 만학도). 벌써 2024년 상반기 워킹데이라니.


나의 첫 해외여행은 군제대 이후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유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그 연장선상에서 빠르게 해야했던 대학졸업, 자부심을 가지고 월급도 제대로 받고싶어서 시작했던 공군장교 제대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당시 병사(사병 아님)들의 월급은 5만원이 채 되지 않아 휴가를 나가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슬픈 일이다.


아무튼 40개월 가까이 되는 군생활을 다행히(?) 무사히(?) 마치고 삼성전자 2월 입사를 앞두고 있었다. 전역을 한달 남겨놓았던 시점이었나 사후 동기이자 시설특기 동기였던 형이 언제 해외에 나가보겠냐며 내게 입사하기 전 해외여행을 추천했다. 우리는 모두 흡연자였었는데, 그때 형이 내게 했던 말은, 외국 공항에 도착해서 출구로 나온 후 외국에서 하늘을 보며 한국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라며 얘기를 꺼냈었다.


아직도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걸 보면 인상깊었나보다. 생각도 하지못했던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군대 동기 형과 나누었던 이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그 대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이토록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게 될 줄이야.


여행기간: 2010년 1월 5일 ~ 1월 22일

여행지역: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나의 첫 항공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행이었는데,  2010년 1월 2일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그래서 많은 항공권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조마조마했다. 첫 해외여행인데. 설마. 근데 그때는 걱정하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시설특기여서 그랬을까. 더 이상의 폭설만 없다면 활주로에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나 1월4일인가부터 다시 하늘길이 열렸다. 그래서 나는 무사히 첫 해외여행길을 떠날 수 있었다.


아무튼 부랴부랴 항공권이며 숙소를 예약하고,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던 친구가 추천했던 여행책자와 함께, 제대한지 5일만에 짧은 영어 "Can I ~"만 장착하고서 무작정 길을 떠났다. 이때는 구글맵, 스마트폰이 없었다. 그래서 Information Center를 만나면 늘 방문했었다. 낭만 넘치던 시절이다.


너무나 짧았던 준비기간, 유럽 전역의 혹한, 미친 유로 환율, 그래서 눈이 30cm 넘게 쌓여있고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던,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명소에 줄을 서지않을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던 17박18일동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영어이름은 '안토니오'다. 모태신앙으로 천주교를 믿었고, 잠깐이지만 복사 생활도 했었다. 지금은 냉담자이지만 지금도 유럽에 여행을 가면 캐세드랄, 대성당에는 꼭 가보게 된다. 나의 첫 여행 때도 그러했다. 대성당이라는 대성당은 다 둘러봤던거 같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로마는 어떠한가. 무려 교황님이 계신 바티칸이 있는 곳이 아닌가. 천지창조며 최후의 만찬이며 봐야할 것, 그리고 경험해야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행일자: 2010년 1월 17일

여행지역: 바티칸, 까타콤베, 산 죠반니, 해골사원



그런데 여행책자에 아주 조그맣게 소개되어있는 곳이 있었다. 읽지말았어야 했나. 그 몇줄 안되는 소개를 읽고 "Can I ~"만 장착한채 용감하게 길을 나섰다. 그 몇줄 안되는 소개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가이드 없이는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지만, 그곳에 가면 일일 가이드가 가이드 없이 방문한 관람객들을 모아 투어를 할 수 있다"라고.


그곳은 바로 까타콤베. 첫 유럽 여행 때 나는 많은 역사 속 유명한 사람들의 무덤을 다녀왔었다. 가령, 피렌체에서는 마키아벨리의 무덤이라던가, 독일에서는 베토벤, 슈베르트의 무덤이 있는 곳을 다녀온다거나.


까타콤베가 내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내 기억으로는, 순교자들의 무덤, 그리고 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이 숨어살던 곳, 그래서 지하에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미로같은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로마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 관광객들중 이곳을 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더욱 가고 싶어졌다. 아무튼, 글을 쓰기위해 다시 까타콤베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기억과는 다른 부분들도 있었고, 이제는 내부촬영도 가능해 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일일투어 프로그램도 많아졌더라.


https://m.blog.naver.com/sanaella/221513852513



로마 외곽에 위치한 까타콤베에 가려면 환승을 하며 한시간 넘게 가야했었다. 안되는 영어였지만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는 유럽 여행 여정 짬밥으로, 힘든 여정 끝에 까타콤베에 도착했다.

구글맵, 바티칸 to 까타콤베




오! 근데 이게 무슨일인가. 아무도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가이드도 없었다!


설마 운영하는 날이 아닌건가 했지만, 그곳 근무자에게서 가이드 없이 들어갈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신이 나가는거 같았다.


허탕친 것인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라 생각했던, 생애 단 한번뿐일거라 생각한 유럽여행에서 하루를 날리는 것인가. 당시만 해도 취업 후 장기간(2주 이상) 여행은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그때 진짜 처음이자 마지막 유럽여행일거라 생각했다. '선택'의 또 다른 의미는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때 나는 로마의 다른 곳을 방문하는걸 포기하고 여기를 온 것이었는데 들어가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오, 그런데 어디선가 일행이 보였다! 남자분 한분과 여자분 셋. 느낌이 왔다. 저분들에게 가야한다. 나의 동앗줄이 되어줄거라 느낌이 왔다.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때만 해도(사실 지금도), 나는 낯을 많이 가렸다. 특히 이성에게는 나는 먼저 말을 잘걸지 못한다. 그런데 여긴 외국 아닌가. 심지어 영어로 말을 걸...어야 한다...!


다가갔다. 그리고 한국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 이제 용기만 내면 된다. 영어는 안써도 된다! 가족분들이 가이드분과 함께 투어를 오신거 같았다. 어머님과 자제두분, 그리고 가이드분으로 보였었는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어떻게 양해를 구할것인가와 받아주신다면 가족분들의 오붓한 시간을 내가 방해하는게 아닌지,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할지, 그리고 가이드분께 비용은 어떻게 지불해야할지 등등 이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다행히 가족분들과 가이드분께서는 흔쾌히 합류를 허락해 주셨고, 멀리서 혼자 성지를 보러 왔다는 사실에 어머님께서는 기특해 여겨주시는 것도 같았다. 아무튼 가족분들과 가이드분의 아량과, 용기를 덕분에 까타콤베 내부 구경을 무사히 마칠 있었다. 심지어 그 뒤의 일정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너무너무 감사하다. 여행은 예상치 못하게 인연을 이어주기도 하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까타콤베 입구, 들어가기 전 가이드분께서 설명중이신 모습.
까타콤베 내부 관람 후 다음 관광지. 산죠반니 사원?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아쉬워서 업로드




나의 기억으로는 마지막에 뭔가 와인 한잔을 했던거 같은데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체코에서 마셨던 와인과 기억이 섞여있는걸지도. 이 모든일들이 15년전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뒤에 이 글을 쓰고 있고, 사진도 남아있고, 쓸 수 있다는게 놀랍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일은 우연히, 아주 우연히, 밀라노에서 가족분들을 다시 만난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밀라노에 갈 계획이 없었고, 밀라노 정차역에서 30분간 정차한다고 하여 첫 유럽 여행의 패기로 정차하는 시간에 역 주변을 돌 계획으로 기차에서 나왔던 참이었다.


어머님과는 지금도 아주가끔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하고있다. 감사하다.


내가 이후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된 이유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인연들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종종 생각해 본다. 일상에서 만나는 내 주변과는 완전히 다른 직업 - 예를 들어 동화작가라던가  - 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사람 수 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와 모습이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여행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글을 마무리하는게 쉽지 않을까 했지만, 여기까지 잘 일단락한거 같다. 귀인 시리즈는 더 이상 없을거라 지인에게 말했었지만, 오늘의 글 또한 귀인 시리즈가 된 거 같다.


모두들 인생에서 각자의 귀인을 만나길 바라면서 오늘 글을 마쳐야겠다.


끝!






보자마자 알았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거라는걸.


왜 하필 그때였을까.


차라리 가지말걸.


가지말았어야했다.


이 글을 시작하지 말았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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