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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바람 May 27. 2024

바간, 이제는 사라져 없어진 옛 왕조의 흔적들이 가득한

고요한 아침 숲속의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언제 다녀온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내게 특별했던 여행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늘 포함되었던 여행지.

미얀마의 바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들은 오래된 옛 왕조의 수도였다는거. 그리고 왕이 바뀔 때 마다 궁궐을 옮겼다는거. 그래서 넓은 지역에 걸쳐 오래된 사원, 유적지들이 흩어져있다. 그래서 여기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아침이면 각자의 사원을 찾아 여명이 걷히는 순간을 맞이한다. 새소리와 숲에서 올라오는 안개와 함께.


바간에 대한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나의 2024년 5월을 찬란한게 만들어 주었던 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이유에 대한 대화였다. 그 친구가 내게 이야기해 준 새들이 지저귀는 이유는 나의 환상을 깨뜨렸지만, 오래된(?) 바간에 대한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여행기간: 2016년 4월 4일 ~ 10일

여행지역: 미얀마 바간, 인레호수, 양곤


이미 파기된 여권을 통해 언제 다녀온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구석구석을 뒤져서 사진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찍은 사진은 얼마되지 않았다. 그리고 브런치에 올릴만큼 예쁜 사진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의 도움을 받았다. 내 기억 속의 바간과 가장 흡사한 모습의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꼭 찾아보길 바란다. 아마 다음 여행지로 바간을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표지사진의 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B%B0%94%EA%B0%84-%EB%9C%A8%EA%B1%B0%EC%9A%B4-%EA%B3%B5%EA%B8%B0-%ED%92%8D%EC%84%A0-%ED%95%B4%EB%8F%8B%EC%9D%B4-1137015/





미얀마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친한 대학교 선배가 미얀마 양곤(옛 버마)에 파견을 나가있어서였다. 그전까지 나는 아웅산 수지 등등의 키워드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버마가 양곤으로 바뀌었으며 수도가 아니라는 사실도 여행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양곤에는 많은 유럽식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각종 관청들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유럽풍 건축물들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시내에 많지 않은 신호등이 있었다. 도심 초기의 신호등의 갯수는 어찌보면 그지역의 발전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리고 미얀마 지역은 인도와도 가까워 내게 다채로운 인종 구성을 보여주었다. 과연 아시아가 맞나 싶은 다채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리고 미얀마에 온 김에 일주일동안 이곳을 여행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 중 바간이 있었다. 당시 미얀마의 국내선은 반시계방향(아님 시계방향) 한 곳으로만 운행되었었는데 중간 기착지마다 들르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하루 한번 항공편이 운행되는데 양곤 - 만달레이 - 인레 - 바간 - 양곤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도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미얀마 국내선 공항



아무튼 나는 저녁이 되기 조금 늦은 시각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숙소에서는 ebike 투어를 떠날 여행자들을 모집하고 있었고 곧 출발하려고 하고있었다. 이 투어는 가이드가 한명이고 각자 ebike를 타고 바간의 큰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투어였다. 손전등이나 헤드랜턴이 필요한 투어였다. 바간을 여행하고자하는 여행자들에게 손전등 또는 헤드랜턴을 필수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아니면 어두워진 저녁에 돌아오는 길, 그리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유적지 내부를 둘러보기위해서이다. 아무튼, 나는 오자마자 ebike 투어를 신청했고, 위기에 빠졌다. 내가 배정받은 ebike는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지 않았던 탓이었다.


나의 여행은 가끔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위기 또한 있었다. 주요유적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ebike는 배터리가 다되어 가고있었다. 점점 속도는 줄어들었고, 나는 가이드에게 이 사실을 알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너무 많은 일행들속에 가이드는 내 외침을 듣지 못했고, 나는 점점 뒤쳐져갔다. (가이드는 좀 혼나야 한다. 나중에 내가 숙소에 도착해서 배터리 문제를 컴플레인하려고 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ebike가 어디있는지만을 물어보고 걱정했다. 어찌보면 당연한걸지도.)


나는 몰랐다.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가게 될 친구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누군가 뒤에서 내 ebike를 발로 밀어주었다. 그것도 본인의 ebike를 운전하면서. 분명 숙달된 바이크 전문가이리라(실제로 그랬다). 그 친구는 내 ebike에 문제가 생긴걸 알고 뒤에서 도와주러 내 뒤로 온 것이었다. 우리 둘은 이 숙소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모두가 웨스턴이었던 숙소에 일본인 한명과 한국인 한명만이 있었다. 처음에 만났던 이 친구의 인상은 무서웠다가 답이겠다. 온몸에 이레즈미를 한 일본인이라니. 그리고 오토바이 운전을 잘한다니. 야쿠자임이 분명하다.


고마움의 표시로 맥주를 샀다. 우리는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다행히 야쿠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후로 많은 만남을 가졌다. 이 친구는 EDM 페스티벌을 참 좋아하는 친구였고 덕분에 나도 여러 축제에 가보았다. 사실 나는 EDM의 광팬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함께하는 페스티벌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때 알게되었다. 그리고 나는 몰랐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재밌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리 많을줄이야). 아무튼 이후 수십명의 동아시아 친구들이 생겼고 동아시아 친구들이 축제에 올 때면, 축제 이후 술자리에서 우리말 통역 서비스와 가끔은 교통편 예약(축제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인 경우)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제는 전부 추억이 되었지만. 축제 이야기만 모아서 한번 글을 봐도 좋을거 같다.



세계인이 하나되는 페스티벌. 지쳐있는 내 얼굴...




나는 다음날 아침 다시 ebike를 빌려 나만의 사원을 찾아 길을 떠났다. 여행자들은 크고 유명한 사원, 유적지에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사원을 찾아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여행자 수보다 충분히 많은, 훨씬 더 많은 사원들이 흩어져있다. 수많은 사원 중에 나의 정체성에 맞는, 또는 나만의 여명을 맞이하고 싶은 사원을 찾아 떠났다. 해 뜨는 시각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조금씩 조급해 지기도 했지만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왜 그 유적지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을까. 아쉽다.


나만의 사원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이런 느낌의 아침이다.

(출처: http://www.dicalove.com/index.php?mid=board_ekVk92&document_srl=5163050)


새들은 지저귀고, 숲속의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운무같은 안개가 걷히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그런 아침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내게 마음의 평안이 필요할 때면 떠올리는 그런 곳이 되었다.


여기는 열기구 투어도 유명했는데 내가 갔던 기간에는 운영중이 아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바간 숲 여기저기 떠있는 여러색의 열기구들로 하늘을 수놓는 장관은 볼 수 없었다.


나는 보지못했던 바간 옛 왕조 하늘에 떠있는 열기구



여기서 또 잊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었던 기억이었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했었는데 나는 현지에서 음식을 먹고 싶었다. 나는 이전까지는 먼 여행지로만 여행을 다녔었기에 동남아시아쪽 여행은 해 보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길바닥에서 음식을 먹는 경험은 내게 처음과도 같았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거기있는 현지인들이 날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한끼에 700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700원을 지불하고 식사를 했다. 행복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길바닥위의 식사였지만 그땐 용기가 필요했었다. 이렇게 글을 쓸 줄 모르고 그 사진 또한 없는거 같다. 그래서 미얀마에서 먹었던 식사 사진 중 하나를 올려본다.


미얀마에서의 식사. 닭다리가 있는걸로 보아 좋은 숙소였나보다.



내게 미얀마는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아침의 숲과 바간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그리고 선배와 선배의 아내이신 형수님으로 기억되고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사원을 찾아 떠나보길 기원 해 본다.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찍은 바간의 사진들로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안녕.





바간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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