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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바람 Apr 27. 2024

진짜 목표 feat. 귀인

히말라야, 끊임없이 결정을 해야했던 순간들.

*첫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antonio-choi/2

*두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antonio-choi/3


여행기간: 2023년 4월 27일~ 5월 14일

트레킹 기간: 2023년 4월 30일 ~ 5월 10일

트레킹 지역: 히말라야 솔루쿰부(에베레스트가 여기있다)


두번째 이야기까지 쓰고 난 뒤,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쉽지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에피소드를 먼저 써도 되지 않을까 해서

몽골 에피소드(https://brunch.co.kr/@antonio-choi/4)도 쓰고,

앞으로 어떤 후기들을 남겨볼까 고민도 해 보았다.



며칠 전, 트레바리 '놀러가기' 쿠폰으로 한 모임을 다녀왔다.


그 모임에서 책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히말라야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 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모임의 모든분들께 매우 감사하다).





아주아주 솔직하게 용기를 내어 써 보겠다.


나의 포터겸가이드(히드라)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의 예감이 문제였을까, 아무튼 침을 엄청나게 뱉었고, 불친절했으며, 영어발음 또한 좋지 않았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부터 그리고 숙소를 고르는 문제까지 아주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이드이며 식당과 숙소를 고르는 문제는 가이드의 권한이라는 요지의 말을 나에게 하고 싶어했던거 같다(그정도의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영어실력이 되지 않았던 듯).


첫날부터 포터겸가이드의 음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 포터겸가이드인 그 친구는 술에 반쯤 만취한 상태로 내게 와 다음날 일정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친구의 영어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셋째날 일정은 남체바자르에서 고소적응을 하면서 주변을 트레킹하는 일정이었다. 걔중에는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에베레스트 호텔에 가는 일정도 포함이었는데 자꾸 포리캐스트라고 하면서 No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자꾸 포리캐스트가 뭐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짜증을 내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일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남체에서 트레킹 시작 후, 처음으로 날씨가 좋았던 순간, 처음 보게 된 눈으로 덮힌 설산


지금에와서 생각 해 보면 포리캐스트는 Forecast였고, 날씨가 좋지않으면 못갈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Weather라고 하지... 그리고 날씨에 따라 못갈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못해 자꾸 No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난 술에 만취한 채 No라고만 자꾸 하는 가이드를 보며 화가 나는 것이었고. 진짜 잘 참았다. 네히트 후기를 보면서 열에 한번 있을 바로 그 사태가 내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최대한 달래서 함께 잘 가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서 바로 그 사태란, 가이드가 여행자를 버리고 그냥 떠나버리는 것이다. 히말라야 한 가운데에서(미친). 정식 가이드가 아닌 포터겸가이드는 실제로 정부에서 공식인증한 가이드가 아니며, 포터겸가이드란 명칭 또한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나같이 홀로 트레킹을 하는 경우, 비용문제로 포터와 가이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대신 짐 무게는 줄이고) 한 사람만을 고용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포터겸가이드의 경우, 카트만두(네팔의 수도)에서부터 함께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고용한 포터겸가이드이지만, 카트만두에서부터 함께하는 경우 여행자와 카트만두까지 돌아와야 포터겸가이드에게 배용이 최종 지불된다. 그런데 이 경우, 포터겸가이드와 함께 루클라까지 가는 국내선 항공권을 포함한 교통비용, 일정에 따른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여야 한다. 이 비용이 생각보다 큰 데 루클라까지의 비행이 안정적이지 않아 추가비용이 생각보다 훨씬 더 커질수도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그래서 난 루클라 현지 포터겸가이드를 고용하기로 트래블 에이전시에 이야기했고(물론 여행사에서는 모든 장단점을 이야기 해 주었다), 이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포터겸가이드인 그 친구가 식사와 숙소 문제에 민감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다. 대개의 경우, 여행자가 숙박하는 곳에서 식사와 숙박을 포터겸가이드에게 무료로 제공해 준다(아닌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메뉴를 고르는지에도, 그리고 숙박의 경우에는 더욱 민감해 했던 것이다. 나는 차박차박(유튜버)처럼 혼자 가서 숙소를 여기저기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아니었던 것이었다. 물론 나는 여행사에 숙소는 내가 고르고 싶고, 기타등등을 이야기 해 두었지만... 히드라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튼 남체에서 첫번째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했던 루트(디보체를 통해 촐라패스를 건너 고쿄리에 가려던) 중 촐라패스(고개)에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와 통행할 수 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정해야했다. 고쿄레이크를 버리고, 촐라패스를 통해 촐라체를 더 가까이서 볼 것인가, 고쿄호수를 택하고 촐라체는 멀리서보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인가.


루클라부터 남체까지 '우연히' 함께 했던 두 그룹(두번째 에피소드 참조)은 예정대로 촐라패스를 건너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가는동안 눈이 녹아 촐라패스를 건널 수 있을수도 있고, 그 두 그룹은 모두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가는게 우선순위가 높았다. 나는 이틀동안 그 두그룹과 모두 친해졌었는데 거기 그룹의 가이드들과도 친해졌었다 ㅋㅋㅋ 그래서 그 가이드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의 포터겸가이드를 그들 모두 보았고, 그돌도 불안해 했고, 그래서 나에게 자기들과 함께 가자고 했다(이때 이말을 들었어야...했다...)


나는 결정을 해야했다. 왜였을까. 고쿄호수를 꼭 보고싶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포기하고 싶지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실패와 좌절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인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을 뻔 했다.


원래 계획된 루트를 바꾸자고 했더니, 나의 포터겸가이드는 점점 태도가 더 안좋아졌다. 이틀도 안되는 사이에. 나한테 화를 내고 고압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더 세게 말하면, 자기 영어가 전달이 잘될거라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러웠다. 2022년 꿈꿨던 목표도 잘안되고, 안좋은 일만 많던 2022년을 지나 2023년 마흔을 맞이해 떠난 히말라야 트레킹에서조차, 열에 하나 있을 수 있다는 일이 내게 벌어지다니. 안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 주여 대체 내게 이러시는겁니까.


아무튼 그 사태는 남체를 떠나 포르체텐가를 거쳐 돌레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우리 포터겸가이드는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할 때면 썩소를 지었고 내게 '고압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일정표와 현재 일정이 다르다며 내게 돈을 더 내라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돌레에서부터 마체르모 구간까지 인터넷이 잘 되지 않는 구간이라는 점이다. 나도 참을수가 없었다. 여행사와 통화도 시켜보고 돌레에서 만난 네팔인 친구를 통해 의사도 전달해 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히드라는 떠났다. 자신은 가이드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두번째 결정의 순간이었다. 하산을 할 것인가(500만원 썼는데), 혼자서라도 올라갈 것인가.


나는 미쳐있었나보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또 실패하고 싶지않았다. 하지만 이성을 버린 판단 또한 하고싶지는 않았다. 남들은 쉽게 간다는데 나한테만 왜 이리도 어려운가. 포터가 사라진 지금, 짐을 버려야했다. 그래서 내 짐의 반을 버렸다. 롯지에. 그리고 주인장에게 여행사와의 연락을 부탁했다(신의 한수였다). 그리고 돌레에서 만난, 히드라를 달래주는 시도를 함께 해 주었던 네팔인 친구(귀인)와 마체르모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했다.


네팔인 친구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트레킹을 왔다고 했다. 우리 둘다 체력이 안좋았다. 우리는 엄청 천천히 올랐다. 이 시기의 히말라야 솔루쿰부 날씨에는 특징이 있었는데, 오후에는 무조건 눈이 왔다. 그래서 트레킹을 아주 이른 시각에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히드라와의 설전으로 늦은 시각(늦다고 하지만 오전 열시)에 트레킹을 시작했다. 문제는 눈이 오면서였다. 눈이 오기전까지는 맵스미 앱으로 그나마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는데 눈이 오기 시작하니 눈이 급속도로 쌓이기 시작하고, 가시거리는 한치앞도 알아보기 힘든 판국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귀인인 그 친구도 사실은 초행길이었던 것이었다. 


점점 무서워졌다. 이제 길을 형태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눈은 무릎까지 쌓였고, 맵스미는 네비게이션 표시로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정말로 '여기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내 생에 느껴보지 못한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저 고개 너머에서 넘어왔다. 이 시간에 하산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현지사람이 분명했다. 저쪽으로 가면 되는구나.


두세명쯤이 시간 간격을 두고 넘어오는걸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온 방향으로 마침내 고개 꼭대기에 도착해 마을을 발견했다. 유레카다. 이때 안도감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는 살았다. 이제 덤벙대지만 말고 차분하게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 마을이다. 고쿄리를 다녀와서 내려올 때 찍은 사진



우리는 차분하게 잘내려왔고 무사히 숙소까지 골라 잘 안착했다. 그순간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숙소에 묵은 모든 게스트들에게 고산증 예방에 좋다는 (생강)차를 한잔씩 돌렸다. '왜 니가 사는거냐' 묻는 게스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함께 기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돌린 생강차와 첫번째 귀인이 되어준 네팔친구와의 생존 기념 한컷.


그런데 놀라운 일이 또 하나 일어났다. 이미 많이 어둑어둑해 있는 시간이었는데, 창밖으로 '일본인'처럼 보이는 한사람이 나의 카고백과 같은 백을 들고 거의 '달리다시피한' 속도로 숙소로 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미 너무 어두워 길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인데 지금 숙소에 오는걸 보니 여기 자주 온 경험이 있는 트레커인가보다 생각했다.


신의 한수가 동작했다.


돌레의 롯지 주인장에게 여행사에 연락을 부탁하고 떠났던게 잘 먹혔다. 여행사 - 예상외로 책임감 넘치는 - 는 급하게 기존의 포터겸가이드를 대체할 친구를 찾아내었고, 그 친구는 돌레의 그 롯지에서 내가 버렸던(맡겼던) 짐들을 들고 나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체르모의 여러숙소를 돌아보고 내가 있는지를 찾는 중이었던 것이다.


눈물이 났다.


지금 다시 그 순간을 떠 올려보아도 기쁘다. 행복하다. 가슴이 벅차다.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어둘걸 그랬나보다. 사진이 없다. 그래서 고쿄리에 다 오른 뒤 찍은 사진으로 두번째 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친구의 영어이름은 Rai였고, 이 친구도 돌레에서 가족이 함께 롯지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의 SOS 요청 이야기를 듣고 돌레에서 내가 맡겼던 짐들까지 챙겨 따라온 것이었다. 사랑한다, Rai.


두번째 귀인이 되어준 친구, Rai와 고쿄리에 올라선 기념으로 찍은 사진.







목표에는 세가지 유형의 목표가 있다고 한다. 진짜 목표는 가는 방법을 모르지만 하고싶은 것, 가슴뛰게 하는 것, 이뤄졌을 때 펄쩍 뛸 만큼 기쁜 것이라고 한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과 선택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귀인들이 나타날 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이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귀인들이 나타날거라 믿는다. 고개 너머 가야할 길을 알려주었던 하산하던 이들같은 귀인 또한 나타날거라 믿는다.


길이 너무 길어졌다. 다시금 히말라야 에피소드를 이어갈 수 있어 너무 기쁘다.


히말라야 세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끝!

작가의 이전글 앞으로 남기고 싶은 에피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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