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곡 모두를 작곡했습니다.
1996년 1월에 추운 겨울 개봉했던 <야반가성>은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때 유명했던 오페라 배우 송단평(장국영)과 부유한 집안의 딸 두운언(오천련)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담은 홍콩 영화이다.
장국영이 제작에도 참여할 만큼 애정을 쏟아부었지만, 이미 너무나 익숙한 ‘오페라의 유령’을 각색한데서 오는 불편함과 탄탄하지 못한 연출로 흥행 성적도 저조했고, 평가도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첫번째 주제로 꼽은 이유는 이 영화의 메인 주제곡 3곡(야반가성(夜半歌声), 심정상옹<深情相擁>, 일배자실거료니(一辈子失去了你>)을 모두 장국영이 작곡했다는 사실과 연출의 완성도에 영화 음악의 훌륭함이 많이 가려지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때문일 것이다.
일반 영화도 아닌 뮤지컬을 주제로 한 음악 영화의 OST에, 메인 주제곡을 3곡이나, 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명곡을 작곡한 사람이 장국영이라니.
사실 한국에서는 배우로 더 유명하지만, 장국영은 음악경연대회로 데뷔, 가수로 먼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이다. 몇몇 인터뷰에서도 배우로서의 커리어보다 가수로서의 성취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고, 많은 작곡 작사가들과 개인적으로도 작업을 꾸준히 할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야반가성>의 음악감독인 포비달((鮑比達, 홍콩의 저명한 작곡가이자 장국영을 비롯한 스타들의 콘서트 프로듀서) 역시 장국영의 작곡 실력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곡들의 완성도는 최고이다.
듀엣곡인 <심정상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절절한 사랑이 고운 멜로디에 그대로 담겨져, 중국어를 몰라도 듣는 순간 그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된다. 주제곡 <야반가성> 역시 강과 약을 잘 넘나드는 유려한 곡전개로 영화 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감동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일배자실거료니>는 '내인생 그대를 잃었네'라는 제목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남자 주인공의 애절한 심정이 정교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문가도 아니고 음악적 조예같은 것도 없어 이 아름다운 곡을 어떻게 잘 설명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저 중고등학생 시절 내내 장국영 노래만 듣는 딸을 둔 엄마가 유일하게 또 들려달라고 하시던 음반이 이 <야반가성>이었고, 홍콩 영화 너무 유치짬뽕 하다던 친구들도 이 음반을 많이 빌려갔었어요, 그만큼 좋으니 꼭 한번 꺼거가 작곡한 노래를 들어보세요,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할뿐.
눈을 감으면... 영화를 보기 위해 야자를 도망친 일이 들킬까 조마조마 선생님 눈치를 살피던 그 시절이, 그 추운 겨울날 치마까지 차려입고 설레하며 기다리던 극장 앞이, 어디 한구석 구겨라도 질까 고이 챙겼던 꺼거의 얼굴로 가득찬 영화 팜플렛이, 한산했던 극장 안 공기와 스크린을 채우던 장면들까지 눈앞에 선선하게 그려진다.
<심정상옹>을 함께 불렀던 가수 신효기(辛曉琪 , 장국영이 심정상옹을 작곡한 후 직접 신효기가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뒤로도 신효기의 가수 활동을 많이 지지해주었다.)는 영화 <금지옥엽>의 듀엣곡 미래안거(眉来眼去)도 같이했는데, 꺼거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오랫동안 이 노래들을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꺼거가 너무 그리워서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꺼거를 대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 후로 이 곡들을 불러야 할 때면 꼭 장국영의 영상으로 듀엣곡을 함께 했는데, 얼마전 있었던 콘스트에서도 노래를 부르기전 꺼거의 영상을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꺼거가 오늘도 오셨어요(哥哥今天也来了).'
마치 꺼거와 단둘이 데이트라도 하듯 영화 개봉날을 찾으며 그토록 열열히 사랑했던 순수한 소녀는, 이제 학생이 거짓말하고 수업을 빼먹으면 안된다는 잔소리를 해대는 뻔한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소중하게 모았던 팜플렛들과 CD들은 먼지만 쌓인채 본가 어디에 처박혀있고, 장국영 부인이라 불러주던 친구들의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또 변하지 않고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시 돌아가기 싫다 말하지만, 때로는 사무치게 그리운 이유는 멀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장국영의 노래를 듣는다.
(<야반가성>에서 장국영이 작곡한 3곡 모두 명곡이지만, 다 못 들으신다면 <심정상옹>만이라도 너튜버에서 꼭 찾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한 곡이어서 꼭 추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