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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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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n 22. 2018

아이에게 화가 날 때

구로디지털단지 외근을 마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플랫폼으로 올라가는데 서우보다 조금 큰 남자아이가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한 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통통한 다리와 팔뚝을 보니 서우가 생각나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계단을 다 오르자 아이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나는 제일 끝 자리로 걸어갔다. 줄을 서고 있으려니 아까의 남자아이가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눈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어른들 사이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빌딩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파랑새 같았다.

그런 와중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뒤이어 나타났다. 그녀는 덥석 아이를 붙잡더니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맘대로 뛰어다녀 아주! 계속 그렇게 뛰어다닐 거면 여기로 뛰어내려!”
말뿐이 아니라 그녀는 아이 팔뚝을 잡고 스크린도어로 몇 번이고 밀쳤다. 아이는 울지 않았지만 버둥거리고 소리를 지르며 스크린도어에 부딪히지 않도록 몇 번이고 중심을 잡았다.

휴대폰에 쏠려 있던 눈들이 사건이 일어난 공간으로 향했다. 시야에 있던 누군가 이어폰을 빼고 몸을 움직이려 할 때,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그녀와 아이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지 말아. 아기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래.”
그녀는 할머니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아이를 밀치며 말했다.
“그냥 뛰어내려! 뛰고 싶으면 저기로 뛰라고!”
“아이고. 그런 말 말아. 그런 말 하지 말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아기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래.”
할머니는 아이를 감싸고 안아주려 했는데 아이는 할머니 손길을 거부하더니 자기를 때린 여자 곁에 꼭 붙어서 치마 자락을 붙잡았다.

그녀는 다시 아이의 팔뚝을 잡고 소리를 지르고 밀치기 시작했다. 그때 플랫폼에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아이가 다시 그녀를 뿌리치고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를 감싸려던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자기 짐을 그대로 두고 아이를 쫒아가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일행이던 다른 할머니가 ‘언니! 어디 가! 가지 말고 이리 와!’하는 소리에 잠깐 돌아보고 다시 아이를 돌아보는 할머니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그 사이 아이가 뛰어간 쪽에서 다른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아 올리는 걸 보고 나는 할머니들과 함께 지하철에 올랐다.

그렇게 막 뛰어가면 어쩌냐고 나무라는 동생 할머니와 아직도 아이가 어디 있는지 살피느라 분주한 언니 할머니를 곁눈으로 보며 며칠 전의 나를 떠올렸다.

일요일 식구들이 함께 가는 공부판에서 아나바다 장터를 열었다. 수업 전 누군가는 나누고 싶은 물건을 내놓고, 각각의 물건을 원하는 사람은 포스트잇에 이름을 써서 붙였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포스트잇을 붙인 사람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새 주인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찻주전자, 젠가, 티셔츠, 운동 장갑, 가방, 벨트 등등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됐다. 서우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재밌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만지고 놀았다. 그러다 수업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강의 장소로 이동했고 나와 서우만 남았다.


처음에는 물건을 슬쩍슬쩍 건드리던 서우가 본격적으로 물건을 들고 탐구하면서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서우에게 설명해줬다,

“서우야, 이건 사람들이 찜해둔 거니까 떼면 헷갈릴 수 있으니 그냥 두고 놀면 어떨까?”

서우는 가만히 듣고는 말없이 포스트잇을 떼어 던졌다. 떨어진 종이를 물건에 다시 붙이기를 여러 번, 물건에 붙었던 이름을 외우는 쪽으로 대응을 바꿨다. 그런데 서우가 이러 던지고 저리 던지는 통에 어떤 이름이 어떤 물건에 붙어있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서우야! 계속 이렇게 떼면 나중에 사람들이 와서 찾을 때 헷갈리고 속상할 거야.”

묵묵히 종이를 떼서 버리는 서우.

‘이 자식이...’

속에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서우의 손목을 딱 잡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박서우, 그만해.”

서우는 나를 똑바로 보더니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아!!(싫어)!”

생각보다 힘이 센 것이 느껴져 더욱 꽉 잡았다. 서우가 얼굴을 찡그리며 이잉 소리를 내자 잠시 정신이 돌아와 힘을 뺐다. 내 손을 뿌리친 서우는 내 다리를 찰싹 때리고는 으앙 하며 내게 안겼다.


내게 안긴 작은 몸에게 쏟아내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서우의 팔을 꽉 잡고, 더 세게 잡았던 순간이 떠오르자 화가 다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를 참기 어려워 서우를 안고 아내에게 갔다.

"나 너무 짜증 나고 열 받아서 서우 못 보겠어. 좀 부탁해."

아내에게 서우를 맡기고 나니 화가 좀 가라앉았다. 수업이 끝나고 물건들이 놓인 공간에 가서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언제 화가 났냐는 듯 웃음이 나왔다. 서우는 그런 내게 다시 안기고 잘 놀았다.


선생님께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니 애한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정해놔서 화가 난 거라고 하셨다. 화는 나는데, 이성으로 누르고 아빠는 아이에게 잘 해줘야 한다는 도덕으로 누르다 결국 빵 터진 것이다. 화가 나는 자신을 인정하면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볼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사고를 열 수 있을 터였다. 예를 들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놓으면 서우가 마음껏 종이를 떼고 놀아도 실컷 놀게 한 다음 다시 원상 복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답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좋은 아빠여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이, 화를 내는 아빠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하철 역에서 아이를 때리고 스크린도어로 밀치고 소리 지른 그녀와, 종이를 계속 떼어버리는 서우의 팔을 세게 잡고 굳은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아들을 위협한 나의 공통점은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하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다. 짐작컨대, 그녀는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일지 모른다. 퇴근길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한 손에는 무거운 짐을 들었는데 플랫폼엔 사람이 너무 많다. 아이가 얌전하게 자신을 따라오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기 바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자기 멋대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니 화가 폭발한다. 체면도, 도덕도 잊고 화를 쏟아낸다. 중간에 끼어든 할머니가 아이를 보호해주자 오히려 안심이 되며 화를 더 마음껏 낸다.


그녀와 내가 다른 점은 그날 몸과 마음의 피로도, 삶의 무게, 일상의 여유였을지 모른다. 내가 그녀의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스스로 화를 삭이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었을까? 내가 계단에서 그 아이를 보며 느꼈던 흐뭇함이 일어나긴 했을까? 순간적으로 내 몸을 감싼 화의 기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다면 화에 휩싸인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화가 날 수 있지만... 아이를 그렇게 위협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척 안 좋았다. 그녀가 아이를 스크린 도어로 밀치는 것처럼, 나보다 훨씬 힘이 센 누군가 나를 스크린 도어로 계속 밀치고 떨어지라고 위협한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봐도 두렵고 화가 났다.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과 분노를 만나는 경험이 반복해서 쌓인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지금 여기 말고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어른과, 화를 받는 아이가 있겠다는 현실을 인지하니 쓴 물이 올라왔다. 마른침과 함께 씁쓸함을 다시 삼켰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내도 오늘 여러 번 빡쳤다고 한다. 서우가 손톱으로 할퀴고 얼굴을 긁어서 울었단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런 서우를 데리고 밥을 먹이고 산책을 나가고 안방에 누워 이삿짐 나르는 사다리차를 구경하다 함께 잠들었다. 저녁에는 엄마 부르는 아들을 토닥거리며 재웠다. (서우가 다시 다리를 긁어서 화가 나서 뛰쳐나갔지만... 박서우 이 새끼... ㅋㅋ) 서우는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욕이 나올 만큼 고집스럽고 막무가내다. 아이라서 그렇다, 나는 부모다라는 말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 새끼, 내 자식이라고 하나보다. 이럴 땐 애정을 담아, 저럴 땐 욕을 담아. 박서우 이 자식은 오늘도 쿨쿨 잘 잔다. 내일은 토요일, 내 새끼와 함께 신나게 놀아야지. 엄마 좀 그만 긁어라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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