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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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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n 28. 2018

어서 와. 콩국수는 처음이지?

아내가 여름이라고 콩국수를 사놨다. 지난주부터 먹자고 했는데 스시에 밀리고, 야근에 밀리며 개시가 늦었다. 집에 가니 처남은 국수를 찬물에 헹구고 아내는 국물에 땅콩을 넣어 갈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삶은 계란 껍질을 까고 서우는 식탁 주위에서 놀고 있었다.


처남이 그릇에 면을 올리자 아내가 굵게 채썬 오이와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를 올린다. 짙은 색의 콩국물을 그릇에 담으니 맛깔난 콩국수가 완성된다. 미리 준비해 둔 소금과 설탕을 각자 양껏 쳐서 먹기 시작했다.


서우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오이를 집어먹길래 면을 한 가닥 권해봤다. 냄새와 모양이 어색한지 고개를 도리도리. 아작아작 오이를 먹는 아이를 두고 어른 넷이 집중해서 콩국수를 먹었다.


말랑거리는 식감을 입 안 가득 느끼며 우물거리자고물처럼 붙은 콩국물이 담백하다. 후루룩 한 모금 마시니 소금이 단 맛을, 설탕이 감칠 맛을 일으켜준다. 방울토마토를 씹으니 입 안에서 상큼함이 뽁 터진다.


집중해서 먹고 있는데 할아버지 그릇에 놓인 오이를 열심히 집어먹던 서우가 면을 집어들었다. 어른들이 눈을 빛내며 열심히 먹는 음식이 궁금했거나, 오이에 조금씩 묻어있던 국물 맛의 정체가 궁금했거나 싶다. 조심스레 면 한 가닥을 입으로 가져가나 싶더니 두 가닥, 세 가닥으로 늘어났다. 멈추지 않는 손길에 눈은 사뭇 진지해졌다. 턱에 하얀 콩국물 수염이 생기고 이마에 면 가닥이 붙을 즈음 접시에 따로 한 웅큼 덜어줬다.


작은 손과 입으로 세상 진지하게 국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끝없이 샘솟는 이 흐뭇함의 원천은 나날이 커가는 아들의 모습일까, 새로운 맛의 세계로 입문한 동지에게 우러나오는 환영하는 마음일까? 확실한 건 서우는 이제 콩국수를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ㅋ


덥고 지치지만 콩국수가 있어 시원하고 기운 나는 초여름의 담백한 저녁. 상큼한 방울토마토처럼 기쁨을 톡 터뜨려준 서우와, 면을 찬물에 적절히 헹궈준 처남과, 계란을 까고 서우를 돌봐준 장인어른, 그리고 콩국수 판을 마련해준 아내와 함께 했던- 수수하게 찐한 일상, 그리고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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