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에게 친구가 생겼다. 친구라기보다 동생에 가깝나 싶긴 한데 일단 사람은 아니다. 작고 하얗고 부드러운 아기 북극곰 인형이다. 매주 마음공부 가는 곳에서 만났다.
서우는 엄마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목덜미를 물어 나르는 것처럼 북극곰의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그리고 품에 폭- 안았다. 폭- 안고 고개를 기울여 북극곰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풀이 자라고 꽃이 피는 듯했다.
북극곰을 안은 서우를 꼭 안았다. 소중함이라는 감각을 아는 걸까. 자기와 이어지는 바깥과의 관계를 누리는 걸까. 이제까지 잡고 흔들고 던지던 인형들의 시기와 질투가 거실이 넘실대는 듯하다. 그때 서우가 아기 북극곰에게 뽀뽀했다. 아... 이건 이길 수 없다. 20개월, 600일이 넘는 세월 동안 엄마, 아빠한테도 먼저 뽀뽀한 적이 없는데.
이름을 지어야 했다. 곰돌이와 곰순이는 이미 이불, 요, 그림책에서 만났다. 이 세상 어떤 곰과도 다른 특별한 이 친구에게 새 이름을 달아주기로 했다.
백곰이? 발음이 어렵다. 웅돌이? 웅웅이로 불릴 것 같다. 소금? 설탕? 밀가루? 발음도 어렵고 한창 먹는 단어 배우는 서우가 헷갈릴 것이다. 그러다 부천 할머니 집에 있는 래미가 생각났다. 제삿날 부천에 가서 갈색 푸들 래미를 본 서우는 집에 와서 한동안 ‘래-미, 팔짝!’ 하며 점프하는 강아지를 흉내 냈다. 가끔 발음이 새서 미미라고 했던 데 착안한 아내가 미미를 제안했다. 서우가 엄마 제안을 바로 받아 ‘미미’를 부르며 ‘미미’를 꼭 안았다.
밥을 먹을 때 자기 한 숟가락 먹고 미미 한 숟가락 주고, 잠자러 갈 때 데려가서 같이 뒹굴거리다 잠들었다는 서우. 애착 인형이라고 할까, 서우가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보이는) 무생물이 생겼다.
둘의 관계를 지켜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동생이 생기면 저렇게 아껴주려나, 동생이 뭔지는 알까, 나중에 어떻게 설명해주나, 근데 우리 둘째 가지는 걸까,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튀는 생각들로 아내와 헤헤거리고 있는데 서우가 미미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옷방으로 갔다. 네 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엎드린 미미가 안쓰러웠다.
미미를 데리고 서우에게 가서 ‘너의 소중한 미미가 여기 있단다’라며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냈다. 서우는 미미를 흘깃 보고 한 번 안고는 다시 바닥에 툭 던졌다. 서우 옆에 널브러진 미미를 보며 괜히 내가 마음이 쓰렸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미미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