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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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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13. 2018

서우의 밤

길고 긴, 하루의 끝

저녁을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은 서우.

음악에 몸을 맡기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흥이 나면 발라드든, 클래식이든, 천수경이든 상관없다.

춤을 추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 자기를 안 보는 사람이 있으면 호명하여 보도록 하고 다시 춤을 춘다.


어느 정도 소화가 되었거니 싶어지면 '아빠 한 번, 서우 한 번'을 하러 간다.

'아빠 한 번, 서우 한 번'은 세수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몸에 끼얹으며

'서우 한 번~ 아빠 한 번~' 하는 데 착안하여 나와 서우가 붙인 씻는 시간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내 몸에 물을 끼얹을 때 자기 얼굴로 물이 튀는 걸 무척 싫어하더니

요새는 손으로 쓱 닦고 다시 끼얹어보라고 한다.

겨우겨우 사정하고 내 손가락을 물려가며 이를 닦던 것도

독일 출장 가서 사온 유아용 치약이 생기자 스스로 칫솔질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요즘엔 내 칫솔을 쥐어주고 내 이를 닦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니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자기 이를 닦으려 노력하는 데까지 왔다.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서우를 욕실 밖으로 먼저 내보낸다.

'발 탁탁~' 하면 탁탁탁탁 욕실 입구 매트에 물기를 닦는다.

그리고 안방으로 가서 푹신한 이불 위로 철푸덕, 몸을 던진다.

뒹굴거리는 서우 몸에 감긴 수건을 당기면 돌돌돌 서우 몸이 굴러간다.

발가벗은 서우의 사타구니와 꼬추에 남은 물기를 마저 닦으려고 수건을 대고 손바닥으로 흔들면

으케케케~ 꺄르르~ 하며 간지럼을 탄다.

기저귀를 채우고 잠옷을 입히면 집안에 불을 끈다.


불을 끄고 나면 물의 시간이 온다.

물을 달라고 해서 빨대가 달린 물통을 주면 자기가 한 모금 마시고 친구들을 부른다.

처음에는 미미(북금곰 인형)만 챙겼는데

토끼, 큰 미미(흰 곰 인형), 곰지(이불에 수놓인 곰), 베개, 아빠 베개까지 챙긴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 내가 데려다주고

각각 빨대에 입을 대고는 '쫄쫄쫄' 소리를 낸다.

'아 맛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서우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씨익 웃는다.

그렇게 친구들 수분 섭취가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물을 마신다.

서너 바퀴 돌고 나면 서우가 마시는 와중에 물이 떨어지고,

반복되는 꽁트에 지친 나도 '친구들이 배가 터질 것 같대, 물 이제 그만 마시고 싶대~' 하며

미미가 배를 잡고 '아야~'하며 데굴데굴 구르는 시늉을 하면

마침내 서우가 '땡~'하고 종료 선언을 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려나 싶지만 

'밖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누워서 잘 뒹굴거린다 싶던 서우가 대뜸 '밖에'를 외친다.

거실에 가자는 말이다.

'그럼 우리 달님한테 인사하고 다시 들어올까?' 하면 '응!' 하고 흔쾌히 답한다.

거실에 나와 달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인사한다.

'달님, 오늘 하루도 서우가 잘 먹고 잘 놀고 이제 코 자려고 해요.

달님이 잘 보살펴 주셔서 오늘 하루도 잘 지냈어요.

서우가 꿈나라에서 달님이랑 친구들 만나서 신나게 놀 수 있게 보살펴 주세요.

서우 달님한테 인사할까?'

꾸벅- 인사하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뒹굴거리다 터져나오는 '밖에!' 소리.


왜~ 너 아까 달님한테 인사하고 왔잖아.

밖에~!

아 왜~ 너 이제 자야 돼!

밖에~!!!

그래.. 그러면 다시 인사하고 들어오자?

응!


대답은 잘한다.

다시 밖에 나와서 달님에게 인사한다.

'달님, 서우가 잠이 잘 안오나봐요. 서우가 코~ 잘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럼 달님한테 인사하고 들어갈까?'

꾸벅- 


자 이제 다시 자볼까?

... 아빠 이여와 (이리 와)

응 왜?

밖에.

밖에?

응.

(자는 척...)

아빠, 아빠!, 아~빠!!!!

왜왜왜!

밖에!

그래....


이렇게 두세 번 더 반복하고 나면 서우가 스르르 잠이 든다.

그러면 서우 재우고 무언가 해야지 했던 나도 스르르 잠이 들고

요가를 갔다 온 아내가 깨우거나, 스스로 화들짝 놀라 깨고 나면

이미 시간은 10시, 11시가 훌쩍 넘어 있다.

길고 긴 하루가, 길고 긴 하루의 끝이 마침내 온다.


순수하게 기쁘고, 순수하게 화를 내는 천진불 서우의 하루를

사랑과 전쟁이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하루에 비추며

그럭저럭 오늘 하루 잘 보내지 않았나요,

달님에게 인사하고 잠에 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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