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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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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n 05. 2018

위험과 안전 사이

스릴을 즐기기 시작한 아들

실내에서 타고 놀 수 있는 미끄럼틀을 하나 더 들여놓았다. 알뜰한 아내가 인터넷 카페에서 '드림'한다는 글을 보고 미끄럼틀과 함께 타고 노는 말도 같이 받아왔다. 원래 집에 있던 것보다 약간 높고 미끄럼판이 오목하고 폭이 좁아서 속도감이 더해진 모델이다.


서우가 양손으로 미끄럼판을 잡고 맨발로 터벅터벅 거꾸로 올라가는 폼이 제법 그럴듯하다. 다 올라가서 완전히 서지는 못하고 주춤주춤 몸을 돌리는 얼굴에 긴장이 서린 웃음이 보인다. 돌리는 중에 혹시나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미끄럼틀 곁에 서성이는 내 얼굴에 웃음 서린 긴장이 일어난다.


마침내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러질 준비가 됐다. 조금 떨어져 있으려 하니 착지하는 곳 앞에 있어달라고 손짓한다. 앞에 앉아서 두 손을 벌리고 자! 하자 꼭 잡고 있던 두 손을 놓는다. 슈욱- 1초가 채 안 되는 시간, 예상보다 빠르고 단번에 내려왔다. 평소에는 발과 종아리로 속도 조절을 하는데 이번엔 까먹었나 보다.


-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냉큼 다시 올라가는데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인다. 오줌을 싼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떤다. 그래. 나도 안다 저 기분. 놀이터에 있는 그네를 한 번 차면 앞으로 90도 뒤로 90도 가까이 각도가 나오도록 발을 구르며, 한 바퀴 빙 돌아가면 어쩌지 두근거리던 짜릿한 순간. 다망구에서 술래를 사이에 두고 양동을 하다 잡혀 있는 친구를 탁 치고 뒤도 안 보고 도망칠 때의 오싹거림. 잠깐 뒤돌아봤는데 눈 앞에 손이 확 다가올 때의 자지러짐.


그 맛에 해가 져도 놀고 또 놀았던 것 같다. 안전과 위험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는 생생한 감각. 스릴. 높이 60cm 남짓한 미끄럼틀에서 스릴을 느끼는 아들을 보니 새삼 옛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는 모두가 함께 스릴을 찾아다니고 즐겼는데. 난 이제 가장이고 다치면 회복도 더딘 나이가 됐다. 안전제일주의로 가는 게 맞지만 가끔은 패러글라이딩이나 스카이다이빙을 꿈꾼다. 등짝 스매시를 부르는 꿈...


서우는 이제 날이 갈수록 새로운 것을 시도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기겁할 만한 일들도 많이 하겠지. 지금 와서 구름다리나 정글짐, 늑목 같은 놀이기구들을 보면 저걸 갖고 어떻게 놀았나 싶다. 한번 삐끗하면... 오금이 저린다.


나중에 서우가 위험한 놀이를 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봐줄 수 있을까? 나는 까지거나 멍드는 정도는 다쳐도 괜찮고,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가장 큰 예방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지금까지는.) 오싹거리면서도 시도해보는 경험이 자신감과 신중함을 같이 키워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 그랬다.


그런데 요즘 놀이터에 나가 보면 안전이 위험을 압도한다. 얼마 전 몸이 아주 가벼운 남자아이가 미끄럼틀을 거꾸로 누워 타려고 하자 엄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 안돼! 위험해! 하지 마!

그 엄마 서슬에 놀란 내가 바라보니 아이는 시무룩하고 무안한 얼굴로 꼬물꼬물 일어나서 가만히 앉았다. 이런 아이들을 꽤 여럿 봤다. 


물론 아이가 노는 방식이 위험할 수 있지만 조금 지켜봐도 되지 싶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아이의 시도가 꺾이는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 이 아이는 자신의 뜻대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 모든 일에 엄마나 아빠의 허락을 구하는 수동적인 아이가 되지는 않을까?


서우가 놀 때 가급적 시도도 해보기 전에 안돼, 위험해라고 하기보다 위험한 부분이 어떻고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걸 어떻게 서우와 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다. 내가 그럴 만한 실력이 되는지는 앞으로 겪어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놀이의 스릴은 누리게 해주고 싶다. 또 자라다보면 부모가 안 보는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놀겠나. 가장 좋은 건 있는 듯 없는 듯 지켜보다 결정적이거나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예상될 때 도움을 주는, 일종의 그림자 호위 무사 같은 역할이 아닐까? ㅎㅎ  


위험 속에서 안전을 찾고, 안전을 통해 위험을 다룰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껏 놀고 튼튼하게 자라다오 서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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