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우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미 May 31. 2018

달님, 달님, 달님

해가 지고 검푸른 기운이 번지는 저녁이 되었다.

마침 서우 눈에 쌍꺼풀이 패이고 눈이 반쯤 감기기 시작했다. 씻고 잘 준비를 할 시간이다.


예전에는 목욕하러 가자고 하면 순순히 따라나섰고 씻고 나와서는 항상 거실로 향했다. 아직 더 놀 것이 많이 남았다는 듯 반쯤 감긴 눈으로 장난감을 뒤적이고 크게 웃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역시 두 눈이 반쯤 감긴 나와 아내는 아들과 우리의 자는 시간이 늦어질 것에 전전긍긍하며 불안하고 간절한 눈빛을 주고 받곤 했다.


어느 정도 놀게 두다가, 어떤 행동이든 이끌어낼 만큼 간절함이 차오르면 서우를 안고 후다닥 안방으로 달렸다. 푹신한 이불에 던지듯 아들을 내려놓고  간지럽히고 뒹굴거렸다. 아직도 설레고 따스하고 신나는 낮의 시간-거실을 잠시 잊도록, 푹신하고 느긋하고 이완되는 밤의 시간-안방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대체로 나의 안내는 낮에 대한 아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럴 때면 구르고 웃으며 눈을 잠깐 감았던 아들은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난다. 단단하게 두 발로 서서 안방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불빛을 바라본다. 그리고 턱턱턱 문으로 걸어가 이 문을 열라며 호령하기 시작한다.


다시 안아 올리면 나가고 싶다며 온몸으로 울고 부는 아들. 나도 온몸으로 울고 부는 흉내를 내며 나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해보지만 당해낼 실력이 안된다. 안방 문이 열리고 탁탁탁 엄마~ 소리치며 뛰어나가는 아들을 따라간다.  


엄마가 요가를 갔거나 옷방에 숨어있으면 서우는 잠시 두리번거리다 아직 낮의 기운이 남아있는 책과 장난감을 꺼져가는 숯불처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내가 말한다.

- 서우야. 우리 달님한테 인사할까?

냉큼 안기는 서우.

- 어디 보자. 오늘은 달님이 어디에 떴나? 이쪽인가? 어? 아니면 이쪽인가?


거실 창의 오른쪽 왼쪽을 오가며 오늘은 달님이 늦잠을 자서 아직 안 왔나봐,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저 뒤에 있나봐, 아! 저기에 있다 달님!, 아직 달님은 열심히 오고 있나봐. 별님들은 벌써 몇 분 와 있네? 하며 하늘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창가의 한쪽을 둘러보던 아들은 달님이 보이지 않으면 반대쪽으로 가보자고 한다. 반대쪽에 가서도 달님이 보이지 않으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어, 어, 한다.

- 서우야. 이제 붕붕이도 코~ 자러 가나봐. 저기 저 아저씨도 집에 코~ 자러 가네? 오늘 하루 수고했어요 아저씨. 햇님, 내일 봐요. 내일 또 놀아요 인사하고 우리도 자러 갈까?


그대로 다시 안겨 안방으로 가는 날도 있고, 못내 아쉬워 장난감을 더 만지는 날도 있다. 그런 아들을 잠시 기다리면 후- 한숨을 쉬는데 이때 다시 안고 안방에 들어간다.


아내는 서우를 가졌을 때 달님에게 기도하곤 했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날은 꼭 챙겼는데, 별 생각 없다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바라는 시간은 매번 낯설고, 정겨웠다. 아내가 무엇을 기도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준 적은 없지만, 나는 환하게 웃는 서우를 볼 때면 기도하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살포시 감은- 아내를 떠올린다.


그때마다 서우는 엄마가 기도한 내용을 달님에게 전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름에 한 번씩 꼬박 만나던 달님이 반갑고 그리워 머리 위에 빛나는 모든 것들을 손으로 가리키고 웃음지었나보다.  


“다-님, 다-님, 다-님”

이제 서우는 노트북 상판 초승달 모양의 절전 표시등을 가리키며 달님을 찾아낸다. 새삼스럽게 아들과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하던 마음가짐을 돌아본다. 형식이 아닌 내용을, 요행이 아닌 노력을, 바깥이 아닌 안쪽을 향하던 작은 언어와 큰 침묵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도한다. 노트북 상판의 손톱보다 작은 달에서 하늘에 떠 있는 크고 환한 달을 볼 수 있기를. 그 눈을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