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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Apr 15. 2019

애틋한 내 인생

[눈이 부시게 리뷰] 삶에서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삶으로

애틋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다르게 느껴지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

   2)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

1번에서 ‘애’는 腸로 창자를 뜻한다. 내장이 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물론 1번의 뜻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내장이 타는 아픔이 정답고 알뜰한 맛으로도 표현이 되는 걸까. 


극 중에서 25살 김혜자는 이준하를 앞에 두고 말한다. 나는 내가 애틋하다고. 짝사랑의 말 한마디에 아나운서를 꿈꾸었지만 특출 난 재주도 없고, 의지도 노력도 크게 하지 않는 자신을 내면 어딘가에서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 꿈을 품은 시절에야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고 실전에 가까워질수록 될 사람은 되고, 안될 사람은 안 되는 갈림길이 시야에 들어왔다. 선배들은 이미 여러 갈래로 바라던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다다랐다. 심지어 일부 후배는 이미 아나운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내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자신을 감싸주던 상황은 점점 불리한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누구에게나 공정했고, 실력은 타고난 만큼 정확했으며, 노력한 만큼 정직했다. 나이도, 타고난 재능도, 노력을 위한 의지도 아나운서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이준하는 김혜자 본인이 아나운서가 될 수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 자신을 안팎으로 인정하는 시점을 일찍 당겨준 은인일지도 모른다. 가깝거나 먼 훗날 그의 날카로운 눈에 감사할 날이 왔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다행히 그녀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단 하루의 아픈 밤을 보내고 씩씩하게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이후에 여러 경로로 실망과 좌절이 반복되지만 우리는 그녀가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 모두 보았다.


우리가 모두 보았듯이, 자기 자신을 애틋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정답고 알뜰하다. 끝도 없는 오지랖은 화를 내고 독한 말을 내뱉어도 멈추지 않는다. 애틋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의 애틋함이 보여서, 그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기 때문에 차마 내버려 둘 수 없다. 상대가 나를 아프게 하면 아픔이 커지고 아픔이 커진 만큼 애틋함은 깊어진다. 깊어진 애틋함만큼 상대의 아픔이 더욱 다가온다. 저런 놈을 뭐하러 챙기나 싶어 울고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함께 욕하고 이제 안 볼 거라 다짐해도, 눈에는 그의 모습이 자꾸 밟히고 발걸음은 그의 집과 직장으로 옮겨간다. 아픈 이의 마음을 자기 자신의 일처럼 헤아리고 돌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픈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보았듯이, 이 모든 것은 김혜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결혼 전과 직후에 눈부신 행복을 누렸으나 행복의 조건이 사라지자 그만큼의 불행이 그녀의 인생에 짙게 드리웠다. 너무 이른 아픔은 젊은 그녀를 독한 어머니, 강인한 가장으로 만들었다. 운동회를 가려고 울며 집을 나서는 아들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보며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25살 김혜자의 아버지, 노년 김혜자의 아들이 보인 차갑고 무력한 눈빛이, 아내와 건널 수 없는 골이 패인 관계가 비로소 이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 사람의 삶은 '행복 미용실'을 매개로 펼쳐졌다. 행복은 그녀의 삶에 다만 간판의 활자로, 닿을 수 없는 하늘의 별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 오는 겨울날 아들이 등굣길에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길을 쓸어놓았다. 그것이 그녀 삶의 진실이고 품위였다. 


눈이 부신 오늘을 살아가라는 마지막 독백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잠시 동안 현실의 삶을 잊고 드라마로 내 시공간이 옮겨갔다. 다른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마가 끝이 났는데도 현실의 삶으로 계속 이어진 것이다. 10회까지 차곡차곡 쌓인 사건과 인물 모든 것이 그녀 내면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그녀가 울 때 나도 함께 울었는데 내가 만들어 온 부모, 아내, 자식,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온 관계의 열매가 울음과 함께 탁 터졌다. 내 삶은 얼마나 애틋한가. 나는 내 부모, 아내, 자식, 친구의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고 또 안아주고 있는가. 울음이 잦아든 자리에는 아직 피지 않은 관계의 씨앗이 놓여있었다. 이 씨앗을 심어서 새로운 싹을 틔울지, 그대로 두어서 씨앗으로 남을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이란 것을 알았다. 정답고 알뜰한 열매를 맺는 비결은 애틋한 내 인생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한 나의 삶, 그래도 살아서 좋은 나의 삶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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