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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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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Dec 23. 2020

아들에게 배웁니다

'가시나무새'를 듣고 그리다

1.

요즘 싱어게인에 한창 빠져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서우에게 내가 꽂힌 노래들을 몇 개 들려줬는데

몇 개는 그냥 도입부에서 패스.

그러다 45호 가수님의 '가시나무새' 노래를 듣고 묵묵히 듣더니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이 대목에서 씨익 웃는다.

"내가 너무 많대 ㅋㅋ"

말하고는 또 웃는다.

이 대목에서 웃는 게 궁금해서 물었다. 

“서우야. 내 속에 내가 많은 게 재밌어?”

“응 ㅎㅎ 내가 많대 ㅋㅋ”

“ㅋㅋ 그렇구나. 서우야. 그러면 서우는 서우 안에 서우가 많이 있어?”

“아니~”

“아 그래? 그러면 누가 있어?”

서우가 잠시 생각하더니

“서우랑 엄마랑 아빠가 많이 있어”

아...


2. 

서우랑 함께 씻고 나면 화장실에서 나오기 전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에 그림을 그리고 나온다.

내게 안긴 서우가 점 하나 찍으면 내가 이어서 선을 긋고,

서우가 다시 점을 찍거나 선을 그으면 내가 마무리하는 식으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제는 처음 그린 모양이 새처럼 보여서 가시나무새 가사대로 그려보았다.

작은 새를 그리고, 

가시나무를 그린 다음

뾰족한 가시에 앉은 새를 그리고 

이윽고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새를 그렸다.

그리고 나무가 혼자 남아 우는 (ㅠㅠ) 걸 그렸더니

서우가 고개를 내 어깨에 파묻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소리도 내지 않고 끅끅거리며 우는 아들이 몸이 작게 들썩거렸다.

그렇게 서우는 30분을 넘게 울었다.


3.

어제도 다 씻고 나서 그림을 그릴 차례가 되었다.

"서우야, 오늘은 무슨 그림 그릴까?"

"서우가 생각해봤는데. 가시나무새 옆에 다른 나무를 그려주면 좋겠어.

친구가 같이 있어."

아...

"정말 멋진 생각이다 서우야. 서우한테 아빠가 배웠어."

그렇게 어제와 같은 그림을 슥슥 그리고 나서

가시나무 옆에 똑같은 가시나무를 그려줬다.

"아빠, 저기 나무들 사이에 새 알을 그려야 해. 많이 그려야 해.

이 나무 옆에도, 저 나무 옆에도 그려야 해."

그림을 그린 나무와 새알에 서우가 점을 찍는다 .

눈 둘, 코 하나, 그리고 씨익 웃는 입을 그린다.

"아빠, 잎이 많은 나무도 그려야 해.

저기 위에도, 저기 옆에도."

"그래, 그래. 이건 열매도 달렸어."


이렇게 매번 서우에게 감동받고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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