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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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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Oct 12. 2020

This is 아빠

1. 아내가 포스팅했던 아들과의 달달한 한 때, 그 때 나는 둘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아들이 엄마를 챙기며 걷는 걸 보고 나는 서우 오른쪽에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여기 서면 안돼!"

서우가 약간 화를 내며 제지한다.

아내는 아빠도 자기가 보호해줘야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는데

뭔가 감이 왔다.

그래서 다시 뒤로 떨어져 걷기 시작했더니 아무 말 없이 다정하게 걷는 아들과 아내.

아들은 엄마와 단 둘이 걷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이눔시키


2. 아빠가 옷을 갖다주러 오신다고 연락이 왔다.

집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우리 세 식구. 

옷만 주고 가신다고 해서 집에 가 있어야겠다 했는데

슬슬 오실 때가 되었다.

마침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서우에게 말했다.

"서우야, 할아버지가 아빠 옷 갖다주러 오신대.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자."

"싫어."

"이제 들어가서 옷 받고 할아버지한테 도서관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하자. 도서관 좀 멀잖아."

"싫어. 서우는 계속 놀고 싶어. 아빠 혼자 갔다 와. 그리고 나오면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우리 데리고 가면 되잖아."

허허허... 말문이 막힌다.

곁에서 보던 아내가 '부탁'을 잘 해보라고 조언해준다.

부탁... 부탁이라... 

잘 없는 부탁잔고를 긁어서 겨우 한 마디.

"서우야, 가자. 아빠 면목 좀 세워주라."

"싫어"

정말 고맙게도 아내가 옆에서 거들어준다. 

(뭔가 사근사근하고 살살 달래는 말 많이)

그래도 묵묵히 모래놀이를 하던 서우를 두고

치사한 공격기 '우리 먼저 간다'를 시전하니

그제서야 같이 가~ 하고 따라나서는 서우.

한창 재밌게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걸 하자고 할 땐 당연히 '부탁'을 해야 하는데

말 한 마디로 결과를 얻으려 하니 잘 될리가 없다.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는 아들과 아내에게 감사한 일이다.


3. 미용실에서 함께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하얀 바람개비 공터에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예전에 둘이 재밌게 곳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재미가 없다. 

바람도 안 불고, 사람들도 많고.

서우도 재미는 없는데 집에는 가기 싫고 그런 상태가 됐다.

"서우야 집에 가자"

"그래"

몇 걸음 걷다가 서우가 말한다.

"아빠, 힘들어. 업어줘."

걸어서 15분 거리, 17.5kg의 묵직한 아들을 업고 가는 나의 팔뚝을 생각해본다.

"여기서부터 업고 가긴 너무 먼데? 조금 더 걸어봐~ 힘 아직 많이 남았잖아~"

"아아~ 힘들어~~"

"어? 저거 봐바. 우와 서우야 이리 와봐"

앞서 뛰어가며 주의를 돌리려 하는데 쉽지 않다.

서우는 이미 안다.

꾀를 부리는 나를 보며 혀를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ㅋ

체념한 듯한 서우가 타박타박 걸어온다.

"서우 너 유치원 가면 소나무 할아버지도 보러 가고

산도 진짜 오래 잘 타잖아. 

이 정도는 그냥 걸을 수 있어."

묵묵부답.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 도중 빨간 놀이터를 가고 싶다고 한다.

3살 때부터 곧잘 와서 놀던 6단지 빨간 놀이터.

그래 가자~

빨간 놀이터에는 우리 동네 여러 단지 중 

가장 크고 긴 미끄럼틀이 있다.

같이 타자고 해서 내 위에 앉히고는 스릴을 맛보여주었다.

깔깔거리며 좋아하는 아들 ㅎㅎ

두세번 더 함께 타고 나서 그네를 탔다.

그러는 사이 해가 지기 시작해다.

"서우야 슬슬 가자. 이제 출발하면 집에 갈 때 깜깜해질거야."

"싫어, 더 놀고 싶어."

"그러면 5분만 더 놀고 가자."

끄덕끄덕.

다른 친구들이 노는 걸 물끄러미 보다가

미끄럼틀에 붙어있는 블럭 놀이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5분이 됐냐고 묻는다.

"아니~ 조금 더 놀아도 돼~"

끄덕끄덕.

손을 잡고 가는데 힘이 없는 손아귀.

"아빠 힘들어"

잠시 고민하다 업어주기로 한다.

"그래, 대신 저 큰길까지만 걸어가자. 거기서부터 업어줄게."

큰길에 가서 등을 보이니 와락 업히는 서우.

작은 엉덩이가 손에 와 닿는다.

걸어갈 때와 달리 신이 났다.

"서우야. 언제까지 아빠가 업어주면 좋겠어?"

"6살. 6살되면 하나도 안 업어줘도 돼."

"6살? 그래? 6살 되도 아직 아이라서 힘들수도 있는데?"

"아니야, 괜찮아. 6살 되면 형아라서 괜찮아."

"그래? 알았어. 그래도 서우가 정말 힘들어서 업히고 싶으면

아빠한테 얘기해. 아빠가 업어줄게."

"아니야, 괜찮아."

"그래 알았어 ㅎㅎ 그래도 힘들면 얘기해야 해. 

아빠가 정말 힘들거나 다리를 다치거나 해서 업어주기 힘든 때 말고는

아빠가 업어줄게. 그러니까 얘기해도 되."

"그래, 알겠어."

쿨내 나는 아들의 답에 근육 피로가 씻어지는 듯 하다.

2분 뒤, 팔이 저려온다.

으쌰 추켜 올리고 다시 또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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