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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an 20. 2021

글 써서 뭐하나

불멍 글멍

1.

글을 써서 뭐하나 싶은 때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 몇 글자 끄적여보면

이 글이 어느 길로 갈지 보여서,

그 길이 너무 뻔하고 하나마나한 얘기 같아서

그냥 덮어버리거나 지우곤 했다.


쓰지 않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바람맞는 아궁이 속 빨간 숯처럼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달아오르곤 했다.

그러다 땔감을 끊고 남은 열기가 가라앉으니

바람이 불어도 하얀 재처럼 무엇인가 잠깐 날리다 사라졌다.


더 이상 날릴 재조차 없다 싶을 즈음

땔감이 들어오기도 했다.

바짝 말라 확 타오르는 것도 있고 

물을 많이 먹어 무거운 것도 있었다.

끝내 불을 피우지 못할 때도 있었고

불을 붙이긴 했는데 어설프게 피다 꺼져버리기도 했다.


땔감 앞에 앉아 

다른 잔가지를 모으고

부채질을 하는 일이 재미있긴 했다.

땔감에 타닥거리며 불꽃이 튀고 

활활 타오르다가 

빨갛게 달아오를 때

일어나는 불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가만히 그 불을 보고 있노라면

땔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누구와 만났었는지

왜 내 앞에 왔는지

이런 것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면 그냥 그렇게 떠오르는 것들을 적었고

적고 나서 다시 읽어볼 때 

불이 다시 일어나면 됐다 싶어 아궁이 뚜껑을 닫았다.

불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시 부채질을 하고 잔가지를 모았다.


아궁이 뚜껑을 닫고 

아랫목이 제법 따뜻해졌다 싶은데

방에는 사람이 없을 때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갔다가

아궁이 앞에서 다시 불을 들여다보면

그사이 누군가 들어와 있었다.


들어와 있는 사람들 중에는 

따뜻해서 좋다 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뜨겁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없이 있거나 잠시 들렀다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운 불은 충분히 따뜻한 것 같은데

방이 참 괜찮은 것 같은데

그에 비해 사람이 덜 들고 날 때면 

불 피워 뭐하나 싶었다.


불 피울 땐 좋았지만

나 혼자 따뜻한 방에 누워있으려니

심심하기도 하고

정말 내 방이 따뜻한 게 맞나 자꾸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땔감을 고르고, 잔가지를 모으고, 부채질을 하고,

불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과정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나'인 것 같아서.

그게 나의 '불', 나의 '방', 나의 '글'인 것 같아서.


이런 나를 알아봐 주기를,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외딴곳에 집을 짓고

나만의 방식으로 불을 때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땔감이 끊기고

방은 차갑게 식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2.

땔감을 던져주는 사람이 생겼다.

햇수로 6년, 만으로 4면 2개월쯤 되었다.

이름은 서우고, 내 아들이다.


서우는 늘 땔감을 줬는데

받지 못한 때가 많았다.

받고도 불을 지피지 않은 때도 많았다.


그러다 문득

언제까지 이렇게 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차에 우이동에서 훌륭한 불가마를 만들고 있는 분과 

오랜만에 소식이 닿았다.


글을 쓸 계기가 필요했던 우리 두 사람은

이제 1주에 1번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궁이를 들여다보고 

먼지처럼 쌓인 망설임과 게으름을 조금 들어냈다.

한가한 업무시간에 끄적이는 재미는 덤이다.


어떤 땔감을 쓸지

어떻게 불을 피울지

불은 얼마나 따뜻할지

방에는 사람이 얼마나 찾아올지

예전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겠다.


일단 불 피우며 

불멍 글멍 때리고

아궁이 덥히다 보면

알아지겠지.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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