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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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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31. 2022

어제 서우에게 해준 옛날이야기

나 : 옛날 옛날에 우서와 현재가 살았어. 우서가 조금 더 형이고 현재가 조금 더 동생이었어. 두 사람은 아주 친했어. 둘은 함께 노는 게 너무 재미있었지. 미끄럼틀도 타고, 술래잡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보물찾기도 했지. 조금 더 커서는 같이 여행도 가고 모험도 하고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그랬지. 무얼 하든 두 사람은 서로 함께 있는 게 너무 재밌고 행복했어.

그러던 어느 날, 현재가 병이 걸린 거야. 아직 젊은데 말이야. 병은 점점 깊어져만 갔지. 우서는 현재가 아픈 게 너무 속상했어. 현재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지. 그러자 현재가 말했어. 

"형, 괜찮아. 나 먼저 더 좋은 곳으로 가 있는 거야. 그리고 나중에 형도 죽게 되면 우리는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 다시 만나서 우리 재밌게 또 놀자."

얼마 있다 현재는 세상을 떠났어. 우서는 아주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지. 그렇지만 우서는 잘 살았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우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인이 되었어. 그리고 마침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우서도 죽게 되었어. 그때 우서는 현재 생각을 했지. 

'이제 우리 만나게 될까?'

하늘나라에 간 우서는 아주 아주 커다란 강에 도착했지. 거기에는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룻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어. 마침내 우서 차례가 되어서 나룻배를 타고 떠나기 시작했어. 배를 타고 가는데 하늘에 어떤 영상이 보이는 거야. 바로 우서가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들이 영상으로 흘러가고 있었지. 우서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본 엄마와 아빠의 얼굴, 걷기 시작했을 때 환호성을 지르던 할머니의 모습, 학교에 들어갔을 때 처음 만났던 선생님의 웃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빨개진 얼굴, 첫 아이를 안고 감동에 빠져 있는 우서의 얼굴, 아파서 누웠을 때 우서를 보살펴 주던 가족들의 모습 등등. 그리고 현재와 함께 했던 수많은 행복한 순간들.

어느새 우서는 염라대왕님 앞에 도착했어. 염라대왕님 옆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는데, 우서에게 그 앞에 서라고 했지.

염라대왕님이 말했어. '음~ 살면서 여러 사람에게 거짓말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장난감을 훔치기도 하고, 벌레를 죽이기도 했구먼. 그렇지만 엄청 크게 잘못한 건 없군. 잘 살았구나. 착한 일도 많이 했구나. 자 여기 이 망원경을 받아라.'

'이 망원경이 뭐예요?'

'이 망원경을 들고 저기 아래 세상을 보거라. 그러면 집집마다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 수 있지.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고르면 된다.'

우서는 망원경을 들고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았지. 그러다 어떤 집이 딱 마음에 들었어.

'저 집으로 가고 싶어요.'

'알겠다.'

그러자 우서의 몸이 환하게 빛나더니 그 집으로 슈웅~ 가다가 그 집의 여자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야. 그렇게 우서는 새로운 엄마의 뱃속에서 수박도 달라고 해서 먹고, 밥도 먹고 무럭무럭 자랐지. 9달에서 10달 정도 지나자 드디어 우서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 

엄마의 이름은 김민지, 아빠의 이름은 박재현, 그리고 우서의 이름은 바로 서우였어.


서우 : 아빠. 근데 현재는 어디에 갔어?


나 : 글쎄~ 어디 갔을까?


서우 : 나윤이? (아니.) 하진이? (아니.)


나 : 우서를 거꾸로 하면 서우잖아? 현재를 거꾸로 하면 뭐지?


서우 : 재현? 엥..? ㅋㅋ 아빠? 맞아?


나 : 정답~ 아빠 맞지롱!


서우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박수를 침) 짝짝짝. 근데 아빠. 그러면 현재가 언제 이 세상에 온 거야? 우서가 노인이 됐을 때 온 거야?


나 : 음~ 한 40년 전쯤에 왔을걸?


서우 : 맞아 맞아. 그렇네. 아빠 잘 됐다. 원래 40살 넘으면 많이 아프지도 않고 건강한 거야. 앞으로 아프지 않을 거야. 


나 : 그래 잘 됐다 ^^


서우 : 옛날이야기 또 다른 거 해줘.


나 : ...;; 많이 해주지 않았니?


서우 : 또 해줘!


서우는 지옥에 가서 벌을 받는 아저씨들 이야기를 듣고 잠이 들었다.

사실 잠자기 전 서우에게 매일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따로 주제를 정하지는 않고 누웠을 때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물론 실마리는 필요하다. 주로 그날 있었던 일, 인터넷이나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 창 밖 풍경에서 떠오르는 어떤 심상 등 작은 끄트머리를 잡고 슬슬 잡아당기다 보면 이야기가 되어간다.

어제는 장모님의 49재 막재날이었다. 법륜스님의 천도 법문을 들었는데, 돌아가시는 분이 계셔서 주위에서 슬퍼하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냐고, 알면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닐 거라고 했다는 경전 속의 일화(?)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49재를 시작하면서 서우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준 게 있었다. 할머니가 이제 돌아가셔서 염라대왕님한테 가게 되는데, 그 길이 49일이 걸리고 우리 가족들이 기도를 잘해드리면 할머니한테 좋은 옷도 생기고, 좋은 신발도 생기고, 좋은 기운도 받아서 아주 편하게 가실 수 있다고. 그렇게 7번 기도를 드리면 힘내서 염라대왕님 앞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고.


두 가지가 떠오르자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왜 저런 이야기를 했는지 돌아보니, 서우에게 우리는 정말 정말 아주 아주 귀한 확률로 만난 사이이고, 그런 사이인 만큼 어떤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은 아름답고 또 앞으로 더 좋게 만들어갈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만난 장모님도, 서우가 만난 외할머니도 그렇게 언젠가, 어디선가 만났었고 또 언젠가, 어디선가 만날 거라고 내가 믿고 싶고, 또 믿어가는 마음의 결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서우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봐 주었다.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아들' 서우와 40살이 넘었으니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해주는 '형님' 서우의 모습이 오래도록 눈에 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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