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9일 밤 11시 45분.
내 손에 37주간 자라왔던 봄이, 서우가 안겼다.
어두운 가운데 옅은 주황색 조명이 번진 공간에서
울지도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까만 두 눈이 아름다웠다.
봄이 왔고, 이제 만 7년을 향해 간다.
서우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직은 스스로 하기보다 이래라 저래라 챙겨줘야 하는 일이 많지만
이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 등하교도 할 수 있고
편의점에 가서 먹고 싶은 걸 골라서 사먹기도 한다.
책도 읽고, 글씨도 쓰고, 줄넘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친다.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들이 늘어간다.
어제는 등교 중에 친한 친구인 김동률을 만났다.
앞서 가던 김동률을 보고 씨익 웃더니 살금살금, 후다닥 다가가서
왁! 하고 놀래켰다.
김동률은 깜짝 놀라면서 활짝 웃는다.
그러더니 누가 뭐랄 새도 없이 학교로 마구 뛰어갔다.
달려가는 서우에게 '아빠는 갈게~ 서우야 잘 가~'
했더니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는 쌩- 멀어진다.
그렇게 마음 속에서 서우가 한 발자국 멀어진 느낌이 들더니
조금 외로워졌다.
앞으로 조금씩 더 멀어지다가
어느 선에 다다르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겠지.
그 선의 거리가 서우와 내가 각자 크게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서우에게 큰 변화가 왔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큰 변화가 왔다.
서우가 자립의 첫 걸음을 떼어가던 따뜻한 봄날에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다.
봄이가 오고 7년이 지나서 온 이 아이를
우리는 봄봄이라 부르기로 했다.
서우는 봄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듬뿍 주었다.
엄마를 볼 때마다 배를 어루만지며 뽀뽀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일상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하다.
그런 서우를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7년의 시간 동안 나는 서우에게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기도 했지만
또한 윽박지르거나 화내는 일도 아주 많았다.
봄날처럼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서우는
혼이 날때면 뒤를 돌아 숨죽여 울기도 했고,
겁에 질린 얼굴로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나를 대하고 깔깔 웃고 같이 놀자고 한다.
나는 봄날의 따스한 기운을 받아 함께 어울리다가도
느닷없이 닥친 겨울 한파처럼 매서운 말과 행동을 쏟아내곤 했다.
서우는 내게 7년간 봄이었는데
나는 서우에게 하루에도, 단 5분 사이에도 여러 번 바뀌던 사계절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된 걸까?
7살이 더 늘었는데 나는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고, 못난 것만 같다.
7년의 봄이 지나는 동안
내 안의 겨울은 더 매서워지고,
넉넉한 가을을 만끽하기에 겨울이 너무 가까워졌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름은 무지개처럼 만나기 어렵고
따뜻하고 친절한 봄은 꽃샘추위로 채 피지 못한 꽃들이 움츠러들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우리 부부의 사랑의 결실로 소중한 생명이 이 세상에 찾아온다.
서우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서 굽어보고 아, 저 집에 가면 참 좋겠다 했겠구나 한다.
서우가 선택의 큰 몫을 차지했으리라.
다시 우리 집에 봄이 온다.
그냥 봄이 아니라 봄봄이가 온다.
겨울이 어쩌고 타령할 시간이 없고
나는 나의 봄을 사랑하고, 또 나의 첫 번째 봄과 두 번째 봄봄이를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아내를 보듬어 안고 가야 한다.
그렇게 꼭 끌어안고 가다보면
다시 또 꽃이 피겠지.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의지가 생기겠지.
함께 즐기고 누리는 여유 속에서
차가운 마음이 얼음처럼 반짝이며 나를 비추고 또 우리 아이들과 아내를 비추겠지.
7년의 봄은 이어지고
새로운 봄봄이 온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