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나는 어릴 적 허약하고 마른 몸이 콤플렉스였다.
가느다란 손목과 O자 다리를 볼 때마다 약한 나를 실감해야 했다.
다행히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축구에 빠지게 되면서
손목이 가늘어도 근육이 붙으면 몸싸움이 가능하고
O자 다리여도 체력이 좋고 빠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며
몸에 대한 열등감은 거의 사라졌다.
축구를 하지 않게 된 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게으른 몸에 적응이 되어 크게 신경 쓰이지 않고,
몸이 좋은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 나도 운동해야 하는데' 하는 말들은
스스로가 알맹이 없는 아지랑이 같은 것임을 잘 알고 있어서
더더욱 몸에 대한 것은 크게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데 20대 초반에 발견하고 4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도
강렬한 열등감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주제가 있다.
바로 돈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나의 세상은 부천시, 부천시에서도 학교, 학교에서도 우리 반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니 서울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대학교 밖에서는 더욱더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 구김살이 없고 유머가 있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형이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형이 싫었다.
저런 유머가 뭐가 재밌지? 왜 저 사람을 좋아하지?
사실 사람들이 그 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전,
그의 집이 아주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것이 생활비나 학비를 벌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부러움으로 싹이 트던 감정이 열등감으로 폭발했다.
아마 내 안의 어떤 인식이 뇌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과외를 하거나 학교 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우리 집은 다행히 학비를 내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있었고
나는 내가 쓸 생활비 정도만 벌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노동도 귀찮아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시간을 쏟을 수 있으면 어떨까 바랐었다.
그렇다고 뭔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것도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부모를 잘 만나 돈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사는 사람들을 내가 아주 미워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주 어렵거나 힘든 처지가 아닌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처음의 그 형과 달리 첫인상에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었고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취향이 비슷해 꽤 친해진 사람도 있었다.
아,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은 아니구나.
그러다 어떤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들 나와 비슷하구나 싶어 안도했다가
알고 보니 부모가 대기업 임원, 대학 교수, 집이 평창동 등이었다는 걸 알고는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냥 만나고 이야기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저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나는 저들이 가는 길을 갈 수 없어.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해.'
그렇게 정하고 나니 내가 만나게 되는 인연도 어떤 방향성이 생겼다.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면서 돈을 멀리 하던 나는 점점 비영리 쪽으로 흘러갔다.
몇 년 뒤 나는 국제자원개발 분야의 한 단체 소속으로 1년간 스리랑카에 나가게 됐다.
결론적으로 이 길은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걸 처절하게 겪고 느끼며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길을 찾지 못해 (사실은 찾기 싫어서)
한동안 국제자원개발 분야에서 겉과 속이 다르게, 다른 지도 모르는 상태로
인생의 양다리를 걸치며 살았다.
걸치고 걸치다가 이제는 가랑이가 찢어지겠다,
죽도 밥도(돈도, 명예도) 안 되겠다 싶을 때
무수히 많은 서류 지원과 탈락 속에 일반 기업체에 취업을 하게 됐다.
당시 SNS에 비영리가 아닌 영리의 길을 가는 이유를 정리하고 나름 뿌듯해했는데...
그 이유란,
-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사회의 여러 집단 중 기업이 가장 잘할 것이다.
- 나는 기업에서 그러한 능력을 키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다.
언뜻 꽤 괜찮아 보이는 이유였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회사에서 이제 중간급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돈에 대한 인식은 답답한 수준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책도 많이 읽었지만 뚜렷하게 실천한 것은 없다.
친구들 모임에서 사업으로 소득이 크게 늘거나, 재테크 공부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급하면서도 속이 쓰리다.
그러나 집에 와서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반복할 뿐이다.
내년 연봉이 얼마나 오르려나, 이 정도 벌면 됐지 뭐 하고 합리화한다.
그러다 최근 아내와 함께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과의 미래에 대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아내에 이끌려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있는데
지금은 자청의 <역행자>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그는 역행자를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을 갖고 인생의 자유,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어서 역행자가 되기 위한 7단계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자의식 해체다.
그는 "나는 돈에 진짜 관심이 없어", "부자 되는 법칙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등의 말도
대부분 자의식의 상처를 피하기 위한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돈은 좋은 거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인생이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피한다고, 애먼 곳에 자아를 투영해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뼈를 때리는 말에 휘청거리고 있는데 후속타를 날리고 손을 내밀어준다.
열등감이 발동되거나 자기합리화가 시작될 때 우리는 스스로 못남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현실에서 도망쳐선 안 된다. 그 불편한 감정으로 어떻게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가 고민할 때 인간은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열정적이던 20대의 어느 날, 코칭 교육을 받던 나는 나의 키워드를 성장으로 삼았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 내일보다 조금 더 나은 모레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데 더 나아지려면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았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는 회피 기술이 좋아져서 회피한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용기를 내어 나의 열등감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회피로 빠지거나 투영으로 낭비하지 않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싶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이미 육아휴직으로 온 가족이 모여 지내는 기쁨과 행복을 알아버렸다.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 기쁨과 행복을 오랫동안 온전히 누리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