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널 보고 있으면

by 개미

저녁을 먹고 조금 놀다가 선우 손을 잡고 자는 방으로 들어간다.

서우는 밖에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한다.

많이 졸린 날은 그대로 누워 뒹굴거리다 금세 잠이 들고

덜 졸린 날은 깜깜한 방 안을 돌아다니며 놀기 시작한다.

공청기 커버를 뜯기도 하고, 방 안에 있는 인형들을 쓰다듬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누워 뒹굴거리며 왼손 엄지를 쪽쪽 빨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벌떡 일어나서 문 손잡이를 당긴다.

이런 날은 한 번 거실에 나가서 놀다 와야 한다.


거실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우다다 기어 다니던 시절이 이제는 기억 속 풍경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아이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린다.


선우를 따라 나오면 이제 10살이 된 서우는 책을 읽고 있다.

부쩍 길어진 팔다리와

번쩍 안아 올리기 어려워진 몸무게는

분명 아이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데

어째서인지 나의 운동 부족과 노화를 탓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나인 것 같은데

서우도 여전히 서우인 것 같은데.


한 바퀴 집안을 돌고

다시 선우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한다.

우리 순한 아기는 타박타박 깜깜한 방으로 들어간다.

다시 왼손 엄지를 빨며 모로 눕는다.

그런 아이 옆에 나도 모로 누워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그래도 뒤척이면 여러 노래를 불러준다.

문득 조용해진 아이를 보니

까만 방에서 빛나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저 눈에 나의 노래와

나의 토닥거림이 담겨있겠구나 하며

오늘 하루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은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서우의 눈에

선우의 눈에

담긴 아빠의 말과 행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서우가 바락바락 화를 낼 때가 있는데

그 눈에 담긴 것이 내게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다.

또 서우가 환하게 웃으며 재잘재잘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 눈에 담긴 것이 내게서 비롯된 것이긴 한지

두려울 때가 있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화를 덜 내야지 하며 화를 낸다.

다정하게 해야지 하며 퉁명스럽게 대한다.


그런데도,

참 이기적 이게도

까만 방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까만 눈을 보면

그래도 나 괜찮게 잘하고 있는 건가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둘째도, 내 마음도 쓰다듬고 토닥거린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잠든 서우를,

첫째를 쓰다듬고 토닥거린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이상한 자세로 자는 버릇은 아기 때부터 여전하다.

제 자리로 안아 옮길 때 이제는 허리를 신경 써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 아직은 괜찮다.

그렇게 눕힌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쓸어본다.


그냥 예사로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문득

내 안에

꿈에서라도 잊지 않도록

언제 어느 때라도 손길만으로

나의 첫 아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손길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손으로 마음을 전하고 난 다음 날에는

잠깐 용기가 난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할 용기가.


아내는,

나보다 늦게 잘 때도 있고 먼저 잘 때도 있는데

내가 늦게 방에 들어갈 때면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얼굴에 담긴 편안함과 고단함을 읽어보며

가만히 이마를 쓸어본다.

아내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간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결혼 10년 차가 되어가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일, 육아, 남편, 경제 등등.

언제나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결혼했지. 그게 좋았지.

아내의 뺨에 잠시 손을 대어보고

자리에 누워

나의 하루를 돌아본다.


나의 이 모든 하루들이

아내와 서우와 선우를 보는 것임을

그들을 보는 나를 보는 것임을


까만 방 안에서 색색 들리는

세 개의 숨소리를

귀담아들으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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