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외로워서 그런 줄 알았어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될 나에게

by 개미

글을 한창 쓰던 20대를 돌아볼 때면

외로워서 그렇게 썼구나 했다.

작정하고 놀겠다 했던 대학교 첫 학기와

한여름 축제 자원활동으로 뜨거웠던 날들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나 홀로 청춘이라는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듯했다.


같이 더 놀자고 잡아보려 했지만

분주하고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서 서성이는 나의 발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군대를 갔다 오고 잠시 첫 학기를 다닐 때,

이후 1년 간 스리랑카를 갔다 오고 졸업을 할 때까지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먼지 쌓인 무대에서

홀로 열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도 아닌 채로

그렇게 웅크려 있었다.


외로웠고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지만

누군가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이런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괜찮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나를 내보여도 좋은 걸까

하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외로움이

어쩌다 보니 내 안에 주된 정서가 되었는데...

이게 참

주된 정서가 되어버리니 직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외로움을 들여다보고

쓰고

또 쓰게 됐다.


주로 가족과의 에피소드를 쓰곤 했는데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의 내가 있는지 모르는 게 더 많으면서도

어떤 모습의 나라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받아들여주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가족과 관련된 글을 쓰면 좋았다.

외로움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 동안

글이 점점 줄어갔다.

빈도가 줄어드니 밀도가 옅어졌다.

외로웠던 20대의 글과 비교하며

서랍 속으로 들어간 글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글을 덜 쓰게 된 것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외로워서 글을 썼던 사람이야.


그런데...

아니었다.

외로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외로운 나를 마주 봐서 그런 거였다.


직장생활 15년 차인 나는 회사 생활에서 오는 이런저런 일들이 이제

그러려니 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하며 두 아이를 돌보고 약간의 살림을 하는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

그러려니 한다.

지금 나의 주된 정서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폭싹 속았수다'를 아내와 함께 보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며

유년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유년 시절의 아내와 지금의 나,

지금의 서우, 선우와 10년 뒤의 서우, 선우,

20, 30대의 엄마 아빠와 60, 70대의 엄마 아빠,

그리고 나의 두 할머니와 여러 친척들이 떠올랐다.


저들과의 기억 속 장면을 떠올리니

말투, 빛깔, 냄새, 느낌, 감정 등

당시의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게 되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


부천 여월동 친할머니 댁에 갔을 때 가끔 들렀던 밤골 친척 할머니 댁의 풍경,

고종사촌 누나와 사촌 동생들과 가재를 잡으러 다니던 지저분한 개천,

잠시 우리 집에 함께 사시며 나와 동생을 돌봐주시던 외할머니,

(나문희 배우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난다)

재밌는 책이 있다며 내 무릎에 앉아서 같이 보자 하고

자기도 동생처럼 안아달라던 관심 고픈 서우의 눈망울,

그런 서우에게 선우 위에 앉으면 어떻게 하냐고 밀어내는 차가운 나의 손,

아내와 연애할 때 자주 만났던 공간과 시간을 떠올리면 느껴지는 오감들,

아내와 함께 먹었던 도다리 쑥국의 맛과 식당의 풍경,

등등...



내 안의 것을 돌이키고 풀어내는 것만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을 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의 나는

내게 관심이 없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의 내가 어떤지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나를 마주하면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면 다시 또 다른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그러면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명환 작가가 쓴 '고전이 답했다'의 부제처럼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나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오랫동안 소망해 왔지만 동시에 찾으려 하지 않았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해야 사는지,

나는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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