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업무차 모 감독기관에 찾아갔다. 담당자는 수석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다. 유선으로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을 때 나름대로 자료도 보내고 설명도 했다. 결국 너무 복잡하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직접 와서 얘기하라는 게 요지였다. 그래서 해당 건을 잘 아는 부장님과 함께 그쪽으로 찾아갔다.
그의 사무실은 긴 직육면체 모양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일렬로 한쪽 벽을 보며 앉아있었다. 약간 연식이 되어 누런 기가 보이는 프린터와 복사기가 있었다. 짐작에, 은퇴했거나 그럴 만한 연배가 된 분들이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 조직인 듯 싶었다. 자리에 앉아서 그가 제일 처음 한 말은 이렇게 복잡한 일을 서류뭉치 주고, 전화로만 해결하려고 해서 되느냐였다. 우리로선 황당한 것이 이미 실무진에서 검토 후 얘기가 다 되어 통과된 일이었다. 그것을 받아 다시 필터링하는 작업을 하는 모양인데 다시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을이기 때문에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그는 자주 끊었다.
"그렇게 얘기하지 마시고, 이게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된 거 아닙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 그런 말은 필요없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된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저렇게 된 이유는"
그는 우리가 말하는 도중 갑자기 일어나 자기 책상에 가서 휴대폰을 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러다 어떤 개념을 설명하게 됐다. 이것은 감독기관의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면 으레 알 것이라 기대되는 내용이었다. 이미 실무진은 이해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친 뒤 눈을 감고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런 얘기는 모르겠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아무 관계가 없는 게 아니라 이게 그래서 저렇게 된 겁니다. 수석님이 혼동이 있으신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게 일방적으로 얘기하지 말고, 그렇게 하면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하며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소 다혈질인 부장님이 폭발할까 봐 나는 전전긍긍했지만 다행히 부장님은 프로였다. 살짝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50분을 이야기하니 그가 마침내 우리가 말하는 내용을 이해했다. 그리고 원래 지적했던 건이 아얘 없던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새로운 건을 지적하며 원래 그 이야기를 했던 거라고 했다. 부장님과 나는 잠깐 시선을 마주치고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일단락한 뒤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아니, 찾아오라고 했다.
모르는 것을 드러내면 우리가 나서서 성심성의껏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것을 감추려 하니 일이 되지 않았다. 감추는 방법도 여러 가지일 텐데 기관의 이름이 주는 힘 때문인지, 그의 사회이력 덕분인지 그는 권위로 찍어 누르는 것으로 자신의 모르는 것을 덮었다. 그만큼 우리는 답답하고 비생산적이고 불쾌한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새삼스레 규제와 법규가 만들어진 취지와 그것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방식의 괴리를 보았다. 뜻을 실현하는 체계와 일을 실행하는 사람의 간극을 체감했다.
머리에 열이 올랐지만 나는 조용히 눈을 마주치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부장님의 시선을 피하고 나를 보며 말했다. 지적할 거리가 생기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고, 부장님이 뭔가 설명하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받친 뒤, 얼굴을 찡그렸다. 조금씩 권위를 내세우던 그가 마침내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권위를 세우게 되자, 한결 여유로워졌고 일의 내용도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내 방식대로 그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그가 편할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상대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내 것을 변용하는 것이 일을 하는 방법이었다. 이번에는 매끄럽지 못했지만, 다음번에는 만나자마자 그의 권위를 세우고 시작해야겠다. 좋은 공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