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과 함께 한 스무 번의 이야기 장이 끝났다. 19화를 보고 적잖이 맥이 풀렸던 것이 20화를 보고 기운이 났다. 택이도, 정환이도 알아서 잘 살 거다. 그 정도 품성을 가지고 서로를 보듬는 힘이 있다면 누가 누구와 이어지든 잘 살았을 거다. 결국 각자의 선택이 어우러져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정환이도 좋은 여자 잘 만나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 것이다.
하나 둘 쌍문동을 떠나고 10년 전에 갔을 때 이미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이미연의 대사를 듣고 아내가 옆에서 말했다. '오빠 어릴 때부터 자라던 곳은 지금도 똑같잖아' 그 말을 듣고 끄덕이며 잠시 동네를 떠올렸다. 유치원 다닐 적부터 신발주머니 들고 등교하던 길은 여러 골목을 지났고, 그날 기분따라 다양한 코스를 걸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병호와 용범이네 집을 지나는 언덕길을 걷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은행나무를 돌아 민근이네 가게 앞을 지나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민웅이, 상희 등 또래 친구와 자전거를 타며 레이스를 펼치기도 했고, 동생과 눈이 펑펑 오는 날 눈사람을 만들고 구르기도 했다. 아파트는 두 번 정도 전체 페인트칠을 했고, 놀이터에서 짬뽕이라는 야구를 하고 돌담을 오르며 놀았다. 나이가 들며 등굣길은 짧아지고, 언덕은 낮아지고, 자전거 바퀴는 네 개에서 두 개로 줄고, 놀이터는 한 손으로 방망이를 휘둘러도 공이 담장 밖으로 날아갈 만큼 좁아졌다. 초등학교 가던 길은 이제 엄마와 시장 보러 가는 길이 아니면 걷기 어려워졌다. 아, 나중에 동네 예비군 갈 때 걷긴 했다.
엄마는 에어로빅을 하다 등산을 다녔다. 아빠는 학교 과제물로 글라이더와 국기함을 대신 만들어주었다. 동생과 집 안을 뛰어다니며 놀다 안방 커다란 유리창을 깨 먹었고, 민선이와 지선이가 놀러 오면 장롱과 침대 밑에 숨어 놀라고 놀라게 하며 놀았다. 아빠는 가끔 LD판을 빌려와서 터미네이터 2와 쥬라기공원 같은 명작을 보여주었고 많은 작품을 비디오로 녹화해 보관했다. 겨울에는 거실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어 폭신했고, 나와 동생은 엄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주말의 명화를 보다 스르르 잠들었다. 여름에는 거실에 대나무자리를 깔아 누우면 머리카락이 사이사이에 끼어 따끔거렸다. 베개를 가져와 누우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송골송골 나던 땀이 조금은 식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봉다리 가득 저녁거리를 사 왔다. 나는 탐구생활을 하다 그랑죠를 보았고, 엄마가 청국장을 끓이면 아빠가 막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가만히 있어보면 떠오르는 장면은 끝이 없다. 나의 유년기와 사춘기, 청년기의 대부분이 같은 공간을 뿌리에 두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나중에 내가 아이의 아빠가 되고 또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 살던 곳을 아이들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줄까 생각해봤다. 그때 그 골목과, 103동 1006호 우리 집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상상만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나중에 아이들이 물어볼 때도 눈물이 날 것 같을까. 예전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아빠가 어릴 적 다니던 길이라며 일러주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지금 다시 아빠와 함께 다시 그곳에 가서 묻고 싶다. 그리고 아빠가 어릴 때 걷던 길을 함께 걷고 싶다. 엄마가 이모와 함께 놀러 다니던 흑석동과 명동 언저리를 손을 잡고 걸으며 옛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을 내 몸에 새겨 나의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어릴 적, 클 적 기억이 하나하나 깃들어 있는 소사본2동의 풍경을 들려주고 싶다.
소중한 시간을 떠올리게 해 주고, 간만에 남의 연애에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응답하라 1988의 모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내게는 행복하고 따뜻한 20화였다. 뭉글뭉글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