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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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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13. 2017

서우네 양양 여행기

마음에 남은 장면들

아내, 서우와 함께 강원도 양양으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회사 업무로 여름휴가를 9월 초에 가게 됐는데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강원도로 정했다. 재작년 속초에 물회를 먹으러 갔다가 타고 간 버스가 사고나는 바람에 3시간이면 도착할 것이 7시간 걸리고, 물회 먹고 닭강정 사고 해변에서 점프샷 찍으며 당일치기로 짧고 굵게 다녀온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서우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두 밤, 세 낮을 보내며 강원도의 산과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나중에 좀 더 크면 맛도 소개시켜줘야지 ^^)


돌아보니 마음에 남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1. 서우는 가는 식당마다 마주치는 이에게 웃음꽃을 건넸다.  

첫째 날 송이버섯전골을 먹으러 가서는 직원이 음식을 날라주는데 서우가 마주 보며 찡긋 눈웃음을 지었다. 직원분이 활짝 웃었다. 반찬이 떨어져서 추가 주문하니 다른 직원분이 왔다. 그분에게도 찡긋 눈웃음을 지으니 그분도 활짝 웃으며 갔다. 아내가 서우를 옆자리 아기 의자에 앉히고 간식을 주고 자기 밥을 먹고 반복하다 의자에서 나오고 싶어 했다. 내가 안아서 식당을 둘러보는데 아까 웃던 직원분이 서우를 잠깐 안아봐도 될까요 해서 넘겨줬다. 방긋방긋 웃는서우를 안고 그 직원분이 식당 동료들에게 가는 길마다 웃음꽃이 핀다. 환하게 밝은 기운이 식당을 감쌌다. 직원분들이 서우와 노는 동안 아내와 나는 여유롭게 밥을 먹었다. 

둘째 날 누룽지 삼계탕 집 할아버지 사장님에게도 코 찡긋, 눈웃음을 보였고 셋째 날 막국수집에 사장님과 이모님들, 단체 할아버지 손님들에게도 웃음꽃을 건넸다. 가는 곳마다 웃음꽃 밭이었다. 풍성한 기분에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인기폭발 박서우!


2. 서우는 자다가 이리저리 많이 구르는 편이다. 숙소에 침대가 있으면 위험하겠다 싶어 온돌이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양양 숙소에 도착하니 바닥에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누르면 폭신하게 들어가는 매트리스였다. 서우를 눕히자 몸이 약간 내려앉는 기분이 좋은지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헤헤 웃는다. 맑디 맑은 모습에 2시간 넘게 운전한 피로가 싹 풀렸다. (이 정도 시간과 거리의 운전 경험은 처음이다.)


3. 양양 8경 중 하나인 하조대 해안을 갔다. 모래사장이 굉장히 넓고 큰 곳으로 성수기에는 꽤나 북적였을 법했다. 내 품에 안겨 있던 서우는 아직 바닥에 있는 모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파도가 치는 곳까지 가자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살며시 아랫입술을 물고 가만히 가만히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그런 서우를 안고 아내는 파도가 들이치는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다가 파도가 깊이 들이치자 화들짝 일어나며 깔깔 웃었다. 내 마음을 밝히는 환한 소녀의 웃음(잇몸 웃음 ㅋㅋ)이었다.  

아내의 이런 웃음을 사랑한다 ^^
포즈 잡아보세요~
바다에서 찰칵!


4. 하조대 해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양양에 가면 섭국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유명한 집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 당황했지만 두 번째로 봐 둔 곳이 있었고 거기도 닫았을지 모르니 전화해보라고 아내가 조언했다.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식당에서 자동으로 등록해놓은 안내 문자가 왔다. 2, 4주 수요일에 휴무라고 했고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바로 이동했는데 역시나 문을 닫았다. 

서우는 배고픈지, 잠이 오는지, 차를 계속 타서 힘든지 칭얼거리고 울기 시작했다.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숙소 사장님께 전화해서 갈 만한 곳이 없나 물으니 요새는 비수기라 문 안 여는 곳이 많다고 한다. 추천해주실 만한 곳이 없냐 했더니 마땅한 곳이 없을 거라고 한다. 아내가 검색해서 찾은 곳에 전화해보니 다행히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바로 네비를 찍고 출발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이상한 길로 들어선다. 네비를 다시 확인해보니 엉뚱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결국 7분 정도면 갔을 거리를 20분 넘게 돌아갔다. 그 사이 서우는 칭얼거리다, 울다 지쳐 잠들었다. 남편/아빠/가장으로 해야 할 역할을 못한 것 같아 내 속은 자책으로 타들어갔다. 자책은 과속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는 것으로 나왔다. 

겨우 도착한 식당에서 섭국을 시키고 자리에 앉는데 아내와 서우 보기가 너무 민망했다. 그런 내게 아내는 담담하게 아쉬움을 이야기했고 조곤조곤 나를 도닥여줬다. 곧 서우가 깼고 낯선 풍경에 놀라 우는 대신 어리둥절해하다 이유식을 맛있게 먹었다. 두 사람에게 느낀 부담이 두 사람에게 받은 위안으로 바뀌는 저녁이었다. 

넓은 하늘과 바다처럼 나를 품어준 아내와 서우


5. 양양 8경 중 하나인 남대천에 갔다. 연어가 오고 가는 천으로 생태탐방로가 잘 갖춰져 있다. 약간 늦은 시간이었고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갈대밭에 솨아아 바람이 흐르고, 저녁이 내려앉은 설악산 능선은 푸른빛으로 빛났다. 바람은 서우의 머리칼과 속눈썹을 날리고, 설악산 능선은 아내의 배경이 되어 한층 아름다웠다. 갈대가 길게 자라서 걷는 길 너머가 보이지 않아 탐험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 셋 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는 도중 작은 개 한 마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뒤를 따라 아주머니 한 분이 개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고 이어 아주머니의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서우를 보자 아주머니는 개를 안았고 할머니는 서우를 물끄러미 보았다. 포토 존이라 적힌 공간에서 다섯 사람과 한 마리 개가 각자 다른 시선으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우리가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셀카르 찍고 점프샷을 찍는 사이 할머니와 아주머니와 개가 자리를 떠났다. 설악산은 조금 더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고, 바람은 여전히 스르르 갈대밭을 타고 흘렀다. 마음에 오래 남을 풍경이었다.

남대천은 아름답다 (아내와 할머니 깨알출연)


6. 양양 8경 중 가장 유명한 낙산사에 갔다. 숙소 체크아웃 후 점심 식사를 한 뒤 찾아가는 길이었다. 흐렸던 첫째 날과 둘째 날과 달리 해가 굉장히 강한 날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서우는 벨트나 아기띠 등 묶이거나 답답한 걸 싫어해서 유모차를 태우면 버둥거리며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고, 아기띠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주로 안고 다니는데 마침 매표소에서 유모차를 빌려준다기에 타지 않아도 짐차로 쓰자 해서 빌렸다. 그러나 유모차를 빌린 게 무색하게 오르막이 이어졌고 계단이 있는 곳은 빙 돌아서 가야 했다. 어떤 곳은 유모차를 아얘 들고 이동해야 해서 차라리 빌리지 말걸 싶었다. 매우 덥고 지친 나는 (아마 아내와 서우도) 얼른 내려가서 집에 가고 싶었다. 해수관음상까지 올라 잠시 그늘에서 쉬는 동안 서우는 약수터 바가지를 열심히 핥았다. 조금 기운을 차리고 내려가는 길에 서우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이렇게 양양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9월의 햇빛은 매우 뜨거웠다... 흐린 낮이 그리웠던 하루


이번 여행에서 나는 많은 실수를 했다. 길을 여러 번 잘못 들었고(첫째 날뿐만 아니라 둘째 날 숙소에 들어오며 거의 다 와서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후진으로 돌아 나오다 전봇대에 살짝 부딪히기도 하고... 서우는 또 울고 ㅠ), 하조대 등대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줄 표지판 화살표만 보고 단정했다(차로 갔어야만 하는 거리였다. 아내가 관광지도 축척을 보고 알려줌). 이런 나를 자책하는 한편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배 째라 심정이 함께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거나 무엇 때문에 그랬다는 이유가 붙었다. 그러나 이유는 무색했고 상황은 반복됐다. 결국 내가 실수라고 한 것들이 사실은 내 실력인 것이다. 이게 내 실력이라는 것을 아내와 서우는 말과 행동으로 알려줬다. 아프고 받아들이기 싫지만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부족한 점은 다른 식구에게 부탁할 수 있다. 스스로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모두 받아들이는 내가 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서우가 점점 커가며 가족 여행을 종종 다니게 될 텐데 그때마다 실력이 느는 아빠/남편이 되고 싶다. 먹을 곳과 잘 곳, 볼 곳을 종합적으로 정하고 운전이 더 능숙해져 길도 잘 찾고 주차도 유연하게 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도 늘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긍정하고 재미로 쓸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내가 되는 것일 테다. 자유롭기를, 서우, 아내와 함께  행복하기를. ^^


+@ 

양양 8경 중에 하나인 H암에 들렀다. 관세음보살님께 삼배하러 들어갔더니 10만 원만 내면 기도 잘 해줄 거라며 강권하고, 해안가에서는 방생 고기를 5마리에 만원에 파는 등 기복과 상업이 절묘하게 결합된 곳이었다. 공간 한가운데에는 동부그룹과 분쟁이 있는지 철조망을 둘러싸고 동부에 항의하는 플래카드와 법원의 철거명령서가 붙어있었다. 해안가 바위터에서는 굿을 하고 있었고, 몇몇 보살님들이 기도하며 절하고 있었다. 경사가 있는 경내를 걸어 다니다 보니 원래 뜻처럼 쉬기보다는 가쁜 숨을 휴~ 휴~ 내쉬고 왔다. 한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여행 간 가족처럼 나온 사진... 나도 아내도 서우도 참 전통적으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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