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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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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l 16. 2017

뒹굴뒹굴

안녕 쿠션, 안녕 바닥

서우가 잠드는 시간은 점점 빨라져서 요새는 저녁 9시 즈음 잠든다. 10시나 11시가 되어야 잠들던 시절과 비교하면 아내와 나의 삶의 질은 크게 좋아졌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일단 밤이 있는 삶은 되었다. 그때 밀린 집안일, 이야기, 이직 준비 등을 하거나 게으르게 빈둥거린다. 요새는 주로 수박을 먹고 알쓸신잡을 본다. 이대로 노닥거리다 자면 되겠다 싶을 즈음, 으앙~ 소리가 난다. 둘 중 한 명(방과 가까운 사람 또는 소리를 먼저 들은 사람)이 번쩍 일어나 우다다 달려간다. 


방에 들어가 잉잉거리는 소리를 따라가 보면 희미한 실루엣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방 안 어둠에 눈이 익을 때쯤 두 팔과 두 무릎으로 엎드려있는 서우의 잉잉거리는 얼굴이 보인다. 찡그려 쭉 찢어진 눈, 주름 잡힌 미간, 삐죽 나온 아랫입술, 3자 모양의 갈매기가 내려앉은 콧방울로 잉잉거리며 앞뒤로 들썩거린다. 

"아이구구 서우야, 괜찮아 엄마랑 아빠 다 여기 있어. 깜깜한 방에서 깨니까 아무도 없었어? 어디 있나 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해봐도 안 보여서 으앙 울었어? 괜찮아, 엄마 아빠 다 여기 있어. 에구에구, 우리 아기~"

너스레를 떨며 아이를 안아 올린다. 엄마와 아빠를 확인한 서우는 짐짓 서럽게 운다. 아랫입술만 삐죽하던 것이 윗입술마저 삐죽거리며 아기새 부리처럼 빠끔빠끔한다. 소리는 볼륨을 높이며 잉잉거리던 것이 으아~ 하고 바뀐다. 으아~ 하는 와중에 잠깐 우리를 살피고는 다시 으아~ 하며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다.  

요 서랍에서 엄마가 뭘 꺼내던데?

분명 머리는 벽으로, 다리는 문 쪽으로 바로 누워 자던 아이가 요를 벗어나 맨바닥으로 오기까지 몇 번을 굴렀을까? 처음 한 두 번은 잠결에, 나중에는 눈을 반짝 뜨고 굴렀을 테다. 무거운 머리를 꼭짓점으로 한 번 구를 때마다 시곗바늘이 가듯 30도씩 각도를 틀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여러 번 굴렀을 것이다. 머리 위쪽 벽과 왼쪽 벽에 대어놓은 쿠션에 부딪혀 장벽이 없는 곳으로 구르다 보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윽고 푹신하고 부드러운 잠자리를 떠나 차갑고 딱딱한 맨바닥으로 들어섰다. 여기는 바닥을 얼굴로 비비면 아프다. 팔로 지탱하다 힘이 빠져 고개를 떨구면 포옥 받아줄 쿠션이 없다. 장마철 습기로 약간 끈끈한 바닥은 맨살로 포복하는 팔과 허벅지를 잡아당기는 마찰력 때문에 따갑다. 그야말로 고생길이다. 


고생길에 힘겹게 나섰는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다. 이럴 수가. 눈을 뜨면 언제나 누군가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어디 가 버렸나. 나 홀로 이 차갑고 딱딱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게다가 어딜 좀 나가려고 하면 막아서는 이 팔랑거리는 벽은 뭔가. (아이가 자면 모기장을 쳐준다.) 아...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졸리고 차갑고 딱딱하다. 서럽다... 으앙 ㅠㅠ

모기장에 걸린... 아기모기 서우

어린 시절의 나는 잠버릇이 고약했다. 침대 생활을 하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앞이 깜깜했다. 놀라서 다리를 차면 꽈당, 침대 바닥에 무릎을 부딪혔다. 멀쩡히 침대 위에서 잠든 나는 아침에 침대 밑에 들어가 자고 있었다. 어떤 경로로 침대 밑에 들어가게 됐는지,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왜 좁고 어둡고 몸을 돌아눕지도 못할 곳에 들어가서 잠을 자게 됐을까. 이에 대한 아무런 의문 없이 자랐지만 기억만은 생생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거의 차렷 자세로 잠이 들어서 그대로 일어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이 역시도 언제부터 그랬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 


모른다는 것이 답이 되지는 않는다. 침대 밑에 들어가 자던 나도, 차렷 자세로 잠을 자는 나도 지금의 내 안에 녹아들어 있다. 외부로 나서지 않지만 내 속 어디에선가 당당히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방들을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갈피에 끼어있는 단풍잎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게 언제 끼워놨지, 왜 이 책이지 하는 정도만 되어도 굉장한 일일 것이다. 언제 만들었는지조차 모를 무수한 방이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답은 지금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아들의 변화에서 잊혀진 방의 흔적을 찾는다. 서우는 이제 엄마나 아빠 앞으로 기어 와서 두 팔을 날개처럼 편다. 안아달라는 의사표현이다. 좋은 것이 이제는 신나는 것, 재밌는 것, 흥분되는 것 등으로 나뉘어 미소와 폭소가 생겼다. 나쁜 것 역시 아픈 것, 짜증 나는 것, 지루한 것 등으로 나뉘고 있고 밀치거나 꼬집거나 때리는 행동이 나오고 있다. 둘 다 나올 때도 있어서 간지럼을 태우면 웃으면서 짜증을 내고, 울 때 안아서 하늘로 날려주면 울면서 웃는다. 나의 모든 행동이 항상 의도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항상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서우는 주관을 갖기 시작했고, 주관에 따라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있다. 


서우가 주관을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아마 내가 잊어버린 방과 같을 것이다. 서우 역시 요즘의 나날을 남겨진 사진과 영상으로만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사진과 영상이 찍힌 날의 감정과 상황은 아내와 내가 더 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와 나의 속에 담긴 것이고, 서우의 속에 담긴 것은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이제 막 240일이 된 아들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그 기록 속에서 잊혀진 나의 방을 찾기 위해. 뒹굴뒹굴거리던 영유아기의 나를 찾기 위해, 훗날 서우가 혹시라도 그리워할지 모를 자기의 갓난아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어라 이게 뭐지
일단 너 누워봐 인마

푹신한 담요를 떠나 딱딱한 바닥으로 신나게 기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저 아이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가 새삼 감동이 밀려온다. 자기 안에 있는 자기도 모를 에너지를 따라 흘러가는 대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긁히고 베이고. 울다가 방긋 웃고 다시 바닥으로 기어나가는 저 힘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감탄하며 끙끙거리며 고개를 담요에 처박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뒹굴뒹굴거리는 아들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리며 응원한다. 


서우야, 마음껏 살아봐라. 아빠가 옆에서 지켜봐 줄게. 지치면 안아주고, 아프면 달래주고, 배고프면 엄마한테 데려다주고(ㅋㅋ), 똥 싸면 닦아줄게. 너 힘닿는 데까지, 하고 싶은 데까지 가보렴. 지금은 기더라도 나중엔 걷고 오르고 뛰고 해보렴. 너의 바닥 진출이 언젠가 자전거 타고 도는 아파트 단지로, 버스 타고 가는 학교로, 지하철 타고 가는 놀이동산으로, 비행기 타고 가는 외국으로, (아마 너의 세대에는 가능할지도 모를) 우주선 타고 우주로 진출하는 세상 탐험의 첫 시작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언제나 응원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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