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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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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n 21. 2017

아랫니

젖의 시대에서 밥의 시대로

드디어 서우에게 이가 났다. 손에 잡히면 일단 입으로 가져가서 질겅질겅 씹고, 혀를 날름날름 잇몸에 대었다가 삐죽 내밀고, 무언가를 먹는 내 입을 고요하게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던 것이 열흘에서 보름 정도 되었다. 이가 나려나보다 하던 즈음에 서우는 다시 새벽에 깨서 울기 시작했고, 어지간한 상황은 단번에 해결하는 쪽쪽이(공갈 젖꼭지)도 퉤 뱉어내고 서럽게 울었다. 원래 아기들은 이가 날 때 꽤 힘들어한다고 한다. 이가 잇몸을 찢고 나오니 거기서 나는 열이며, 통증이며 방긋방긋 웃을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 잇몸으로 잘근잘근 씹을 때는 괜찮은지 치발기를 물고 있을 때는 잠잠하다. 잠잠하다기보다 아주 진지하다. 내 손가락을 쥐면 입으로 가져가서 윗잇몸, 아랫잇몸으로 씹다가 어금잇몸 쪽으로 옮겨간다. 턱을 열심히 놀리다가 볼로 삐죽 나오기도 하고 자기 예상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켁켁거리기도 한다. 혀로 끊임없이 핥고 침을 묻힌다. 세상 진지한 잇몸운동에 함께 하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이 침에 불려지는 느낌이 든다. 스리슬쩍 다른 치발기나 손짓과 표정과 괴성으로 주의를 돌린 후, 입에 들어갔던 손가락을 스윽 아들 옷에 문지른다. ㅋㅋ


조금 튀어나와있구나 싶은 정도였던 잇몸이 서우의 머리숱이 많아질 즈음 어느새 단단해져 있었다. 침을 좀 많이 흘린다 싶을 즈음 아랫잇몸에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혀 끝을 아랫니 안쪽에 대었을 때 드는 단단하면서 매끈한 느낌과 같았다. 신기해서 문질문질 거리고 있으면 아들은 문질문질 거리는 손가락을 츄레릅 혀로 핥았다. 아랫니가 났는지 보려고 아랫입술을 뒤집어봤지만 서우는 혀로 이가 나는 자리를 귀신같이 가렸다. 입 안의 혀처럼 군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래도 7개월 아기인지라 방심할 때가 있어서 다행히 이가 나는 자리를 볼 수 있었다.


흰색보다는 젖색에 가까운 두 개의 이가 보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잇몸을 뚫고 나오진 않았지만 이의 정수리가 보였다. 손으로 만질 땐 분명 단단했는데 눈으로 보니 말랑거리는 마시멜로 같았다. 서우는 저 이의 정수리를 하루 종일 혀로 갈고닦았다. 조금씩 밀어 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깨어있을 때, 졸려서 칭얼거릴 때를 뺀 나머지 모든 시간에 서우는 이를 가꾸고 있었다. 


서우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아들의 잇몸에는 이제 누가 물려도 '야 이건 이구나, 아프다 ㅠ' 할 정도로 분명한 아랫니가 났다. 두 개가 함께 났다. 이의 날은 생각보다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느낌이어서 깨진 화강암을 만지는 듯하다. 턱 힘이 아직은 덜해서인지, 턱을 쓰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지 못한 것인지 손가락에 자국이 날 만큼 깨물지는 않는다. 동시에 어금니 쪽에 또 다른 이의 정수리가 느껴진다. 곧 송곳니도 날 것 같다. (찾아보니 19~20개월에 난다고 한다. 한참 멀었네 ^^)


이가 나며 서우는 젖의 시대에서 밥의 시대로 넘어간다. 잇몸에서 이로, 혀의 힘에서 턱의 힘으로, 젖에서 수저로, 물똥에서 단단한 똥으로, 그리고 엄마의 품에서 자기의 자리로 넘어간다. 기분이 묘하다. 아이를 키우며 매 순간 더 어릴 때의 아이와 이별하지만 젖을 먹는 서우는 좀 특별하다. 젖을 먹는 서우는 '쭈-쭈↗?' 소리를 들으면 팔다리를 튕기며 꺄아 소리를 지르고 혀를 낼름 내밀고 침을 주르륵 흘린다. 꼴딱꼴딱 젖 넘기는 소리에 가까지 다가갈라치면 고개를 번쩍 들어 소리나는 곳을 돌아보고 별 거 없구나 싶으면 다시 젖을 빤다. 만족스럽게 다 먹으면 크아~ 휴우- 소리내며 방긋 웃고, 다 먹기 전에 젖을 빼면 입을 삐죽거리고 눈을 길게 찢고 코를 벌름거리며 서럽게 운다. 젖을 먹다 눈썹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끄응 힘을 주다 푸르르륵 똥을 싸면 아내와 나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서우는 어리둥절하여 우리를 번갈아 본다. 한밤중에 자다가도 젖을 물리면 쫙쫙 젖을 삼켜 엄마의 퉁퉁 불은 가슴을 꺼뜨려주는 일등 소방수다. 이런 서우가 이제 젖을 떼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내가 이제까지 알던 서우는 과거의 추억이 되어갈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가 지나면 낮은 점점 짧아진다. 그래도 여전히 낮은 길고 밤은 짧다. 동지가 되기 전 어느 날이 되기까지 낮은 밤보다 길다. 서우는 아직도 젖을 먹을 날이 많이 남았다. 이유식과 젖을 함께 먹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젖의 시대와 밥의 시대가 평화롭게 이어지는 지금이 아주 소중하다. 더구나 경험상 가장 행복한 날의 기록은 계속 갱신된다. (아직까지는 ㅎㅎ) 


서우야, 아랫니가 난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어금니도, 송곳니도 대 환영이다. 조만간 고기의 맛과 채소의 맛, 생선의 맛과 해초의 맛, 향신료의 맛과 장류의 맛, 국과 찌개의 맛, 빵과 밥의 맛, 나도 모르는 많은 것의 맛을, 잡식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젖 많이 먹고 건강하게 자라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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