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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의 틀을 깨는 순간

데카르트의 아기

by 앤트윤antyoon

2025년 18번째 읽기록

Words by Jeong-Yoon Lee


작년 11월에 폴 블롬의 '선악의 기원(JUST BABIES):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을 인상 깊게 읽고 블로그에 리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신 후 출판사에서 폴 블롬의 신작 '데카르트의 아기'서평 제안을 주셨고, 저는 흔쾌히 수락했어요. 저는 어떤 책이든 제가 꽂혀야 하는 주제, 소제, 키워드가 있어야 그때부터 호기심이 생기면서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되는데, 이번엔 책표지에서부터 '인간성은 어디서 오는가?'를 보자마자 정말로 인간성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 나온 이세돌 사범님을 모시고 하는 인터뷰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보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젊은 나이인 36세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차근차근 답변을 하시는데 거기서 '인간성'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확~ 느끼게 되었습니다. AI는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인간성' 무엇보다 앞으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깊은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이세돌 사범님은 알파고 대국이 준 충격에 대해서 풀어주셨어요. 2017년 알파고 마스터즈 이후 본인의 창의성과 자부심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셨다고 해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무력감을 느끼신 거 같더라고요. 저는 바둑을 잘 모르지만, 삼삼(3,3) 착점이 바둑에서는 금기시되었고 사범님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알파고가 커제 9단과의 대국에서 삼삼을 두는 장면을 보며, 30분만 생각해 보니 충분히 둘 수 있는 수인데 ‘난 왜 못 뒀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그럼 다른 기사는 두지 않았을까?’라는 호기심에 기보를 찾아봤는데, 어느 누구도 그 수를 둔 적이 없었던 거죠.


결국 학습과 전통, 금기와 관습이 사람들을 묶어두었고, 본인조차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두려움이 찾아왔다고 해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으로서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내가 과연 필요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필요와 이유를 찾지 못하니 즐거움도 사라졌다는 거죠. 저는 이런 고민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사유라서 오히려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번에 읽은 데카르트의 아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2부, ‘물질 영역에 대한 관점’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일 때문에 본질, 근본, 개념, 의도, 철학 등을 자주 고민하곤 하는데, 저 스스로도 ‘의도’를 파악해야만 소비자와 브랜드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에, 본질에 집착하는 인간이 더 궁금했어요.


책에서는 인간은 타고난 본질주의자라고 설명합니다.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도, 우리는 본질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것이죠. 자연종은 내재된 속성을 본질로, 인공물은 그것을 만든 인간의 ‘의도’를 본질로 여긴다는 거예요. 왜 우리가 그렇게 의도에 집착하고 본질을 알고 싶어 하는지, 그게 본능이고 인간성 때문이라는 걸 깨닫자, 사람들을 이해하는 게 한결 쉬워지더군요.


흥미로웠던 건 아이들조차 외적인 특징보다 보이지 않는 내적 속성에 더 큰 무게를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정말 타고난 본질주의자구나’라는 생각이 깊이 와닿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인공물에 이름을 붙일 때조차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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