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읽고

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by 앤트윤antyoon

사람은 스스로 엮은 의미의 그물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선택이란 우연을 허용하는 행위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바람직한 고민은 무엇일까요? 수많은 실패와 경험 속에서 내가 찾아 만들어낸 의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읽기 전에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책을 먼저 읽었는데, 그동안 살아오며 부정해 왔던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하나하나 복기하며 일단 인정해 보니 오히려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던 진실된 감정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동안 그런 나약한 감정과 태도로는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느냐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나약한 마음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더 강하게 채찍질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너무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힘듦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너무 소중하기에 후회는 없지만, 나를 충분히 돌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금 덜 애써도 되었을 텐데, 조금만 힘을 빼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하는 말은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말을 세상에 남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진실되고 솔직한 대화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이나, 인생에 대한 고민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모두 죽고, 그저 그 시점이 언제인지의 차이일 뿐입니다. 어쩌면 내일일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스무 살이 막 되었을 때,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인생의 큰 숙제를 깊이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어차피 다 죽는다는 것. 나만 죽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것.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지금의 날씨, 풍경, 거리의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는 것. 그래서 죽기 전까지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며 살아야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어차피 다 죽는다. 그러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와 70페이지 정도 읽다가, 한동안 책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반납일이 다가오자 다 읽지 못한 채 돌려줘야 하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결국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펼쳤고, 읽다가 마음을 깊이 울리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애초에 사랑이란 의지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좋아하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도 불가능합니다. 합리성을 내팽개치는 스릴, 순간순간의 감정만 따르는 단순함, 전부 부숴 버리고 싶은 오싹한 충동. 그저 당장의 욕망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요. P.99


이 문장을 읽고, 내일은 퇴근 후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퇴근 후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읽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비몽사몽 읽었지만, 메모해 둔 구절들이 제법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해 왔습니다. 어쩌면 수요 없는 공급일지도 모르지만, 나만 남길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글을 다시 읽으면 ‘참 나답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너만 자아낼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그 글이 세계에 어떻게 닿을지 지켜보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 마.

다들, 나만 할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세계에 어떻게 닿을지 지켜보기 전까지 죽지 마세요.


사람은 우연히 만난 타인을 통해서 '나'를 낳는 셈입니다. 보통 자신이라 하면 이미 만들어진 존재를 떠올리지요. 하지만 지금 제가 얘기한 선택되고 발견되고 태어난 '나'는 홀로 성립된 것이 아닙니다. 만나는 시점에서 나와 당신은 모두 완성된 '나'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P.260


저는 또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우연 속에서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택이란 우연을 허용하는 행위라고 했으니, 내가 선택한 우연을 따라 살아가다 보면 또 어떤 시간의 두께가 쌓이고, 삶이 더 입체적이고 풍부해질지 기대됩니다. 블로그를 하는 저는 이런 생각과 일상이 바람직하게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나만 자아낼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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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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