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쓰다듬는 위안의 책
2024년 4번째 읽기록
By Jeong-Yoon Lee
올해 4번째 독서도 이동진 평론가님의 추천도서로 읽게 되었어요. (이 정도면 책 의존증 수준) 요즘 무엇보다 심각한 책태기가 와서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방 구조도 바꿔봤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자체를 꺼리게 되더라고요. 음식을 통제하거나 의식해서 안 먹던 때랑은 다르게 요즘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14시간씩 일하던 때와 반대로 14시간씩 자기도 하기 때문에 인생의 노잼시기가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의심 중이에요. 그러다 보니 책 읽기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게 되더라고요. 한 달에 한 권은 읽자는 생각인데 스스로 약속을 깨는 일은 막고자 합니다. 욕까지는 아니지만 '왜 저러지?' 하면서 보는 연프(나는솔로, 환승연애) 악귀 들린 빌런들 보는 재미에 빠져 수요일까지는 완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50, 50, 100, 143 페이지씩 4일에 걸려 나눠 읽으니 그나마 수월하게 읽었습니다. (쫓기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럴까?)
책 제목부터 철학이라는 단어가 무거운 주제를 던지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친근하게 다가오는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에요. 나도 한번 즘은 고민해 볼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철학은 역시 철학이었다. 어떠한 깨우침과 같은 질문으로 현대적인 철학이 담겨있는 책이에요. 책을 얼마 읽지 않아도 철학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유하는 사람이구나, 엄청난 시간을 책 읽기에 사용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나 책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책을 가지고 대부분의 작업을 한다고 쓰여있더라고요. 책 표지에도 쓰여있는 부제 “삶을 쓰다듬는 위안의 책" 철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이 많은 나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님의 말처럼 책을 다 읽고 나니 “삶을 흔들어 깨우는 각성의 책"이라는 부제를 주고 싶다고 하셨듯 철학은 따끔한 소리도 주저하지 않고 해줍니다. 그래서 철학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거 같아요.
각각의 철학 책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플라톤, 니체, 괴테 등 시대별 다양한 철학자의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부분이에요. 철학자 하면 고전에만 존재할 거 같은 같은데 요즘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철학의 사유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대에 맞는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스스로 내린 선택이 맞나? 지금 맞게 가고 있나?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책을 읽으면 많은 부분 확신을 갖는데 응원이 되기도 하거든요. 나의 인생은 나를 중심으로 나라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 이런 식으로 극복했어라는 나만의 철학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점점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거 보면 책 속에도 나온 이야기지만 나이 들수록 나의 가능성은 점점 잃어가지만, 타인의 가능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인 거 같아요.
문장 수집
해답은 널려 있지만, 제대로 된 문제를 가진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p. 23
반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방식이다. (...) 우리는 악몽을 반복해서 꾸며, 한밤중 이불킥을 하면서 낮의 실수를 계속 반추한다.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적절히 분석했듯, 이는 우리에게 침투한 자극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한 행위다. 어떤 문제 때문에 악몽을 계속 꾼다면,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그 문제의 자리로 돌아가 해결해 보기 위해서다. (...) 이렇게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처로 되돌아가는 반복을 한다.
p. 36-37
우리는 어떤 것을 겪을 당시엔 그 의미를 모르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반복할 기회가 생겼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된다.
p. 40
천재는 ‘이전에 없던 규칙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의미 있는 생산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범형'이 되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천재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이 좋은 작품인지 좋지 않은 작품인지 판정할 수 있는 표준 역할을 할 수 있는 ‘범형'이다.
p. 106-107
천재가 새로운 규칙을 창조해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면, 바보는 그 순수성으로 세상에 통용되는 규칙과 가치를 무력화해 세상을 텅 비워낸다. 둘 다 세상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결국 바보와 천재는 서로 전혀 다른 인물들이고 전혀 다른 길을 가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p. 111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울 뿐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문제 자체를 창안해 내는 일이리라.
p. 129
산책은 지구 위를 걸어 다니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 자체이다. (...) 산책을 하다 보면 수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것이 내게는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하고 쓸모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p. 179
인간의 테크닉은 ‘기술'과 ‘예술’이다.
p. 237
비극은 언제 생겨나는가? 자연의 테크닉에 맞추어 인간의 테크닉이 일하지 않고, 거꾸로 인간의 테크닉에 자연을 맞추려 할 때 생긴다.
p. 238
‘자기’를 잃어버리며 결단 내리지 않는 자는 거기에서 ‘자기의 시간을 잃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맞는 전형적인 말은 ‘시간이 없다'이다. 자기를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자, 시간의 맷돌에서 갈리며 비지가 되는 자는 늘 바쁘다며 허덕인다. 시간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당연히 그에겐 시간이 없다. (...) 반면 시간을 잃지 않는 자, 오히려 시간을 돈다발처럼 소유한 자, 바로 시간의 ‘갑'은 원하는 만큼 느려도 상관없다.
p. 248
옛날에 모든 물건은 영구적으로 반듯하게 견딜 수 있도록 장인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진품이었다. 그 진품은 유산의 일부분이었고 끝없이 수선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이게 사물을 대하는 옛날 방식이다.
p. 268
화가들은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우리의 시선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다.
p. 279
관찰자란 하나의 법칙 안에 옭아맬 수 없는 세계의 다양성을 겸손히 공부할 수 있을 뿐이다.
p. 281
그 다양성의 인정이란 바로 세상의 ‘자유'에 대한 승인 아닌가?
p. 282
나이 들며 가능성들을 하나둘 잃어버린다. (...)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제 타인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 어떤 의미에서 이는 시간을 되찾는 길이 아닌가?
p. 298
죽음은 존재 저편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라, 존재의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고 꺼리는 것이 실은 우리의 본모습이었다.
p. 315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