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오아쿠아 Jan 27. 2024

토마토고추가 한 가지에서

삶이 선사하는 빛

내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소중한 하나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5학년때  과학선생님의 자전거 뒤에 타고 집으로 갔던 일(과학 선생님은 우리 집과 3분 거리)이 떠오른다.


나는 그 당시 과학 경진대회를 준비하고 있어서 수업 종료 후 남아서 토마토와 고추접붙이기를 해서 매일 물을 주고 잎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그림을 그렸다.


하나의 식물에서 두 가지 열매가 열리는지 알아내고 열성과 우성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었다.

신기하게  첫 열매를 키워 내었을 때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혀 몰랐던 무지의 세계에서 나만 알아가는 그 특별함과 비밀스러움에 행복했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관찰대상과 날씨, 냄새, 교실풍경, 기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 놓은 토마토고추를 애지중지 보살폈던 그때의 내가 너무도 선명하다.



어린 맘에 나는 예쁘고 동글동글한 토마토가 열성일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토마토가 고추를 이겼다.

고추가 열성이었다.


한 가지에 두 가지 열매가 열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토마토는 실했고 고추는 앙증맞다 못해 미니어처 수준이었다.


고이고이 간직했던 관찰일기와 사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1980년대 어느 날 크나큰 홍수피해로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나는 지금도 식물을 좋아한다.

독일로 가기 전까지(5년 전) 작은 정원에는 급냉동한 작은 포도나무, 토마토, 딸기와 갖가지 허브와 채소를 길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종일 식물을 가꾸고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꽃꽂이하며 가드너로 하루를 보냈었다

11살의 토마토고추 접붙이기 실험은 시대회에 출품해서 최우상을 받고 시대표로 전국 과학경진대회 본선까지 갔었다.


몇 개월간의 식물을 죽이지 않고 온도 습도 일조량 맞추기를 선생님과 얘기 나누고 도서관에 가서 관련서적을  찾는 법부터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그때부터 무언가 관심대상이 생기면 스크랩하기와 노트필기에 집착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의 내가 제일 사랑스럽고 예쁘고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나로 말하고 싶다.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고 여겨져서 모든 게 신기하고 충만해서 몇 편의 귀여운 시를 쓰는 11살 소녀였다. 선생님 등뒤에서 나는 푸른 하늘을 고개 들어 우러러보며 구름의 형태에 대해서 질문을 했었다.


중학교 가서 배우게 된 구름의 색이 하얀 이유는 대개 구름은 태양광을 산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히 많은 수증기가 모여 있다면, 오히려 태양광을 흡수함으로 인해 짙은 잿빛을 띠게 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먹구름이다.


구름을 구성하는 물 입자는 대기와의 마찰과 구름 내부의 상승기류로 인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만일 이것들을 이겨낼 만큼 물 입자들이 충분히 병합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지상으로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흔히 비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2023년 11월 소백산 정상에서

뼈아픈 상처와 삶의 묵직한 무게감과 고통이 가끔씩 나를 힘들게 한다.


책을 읽고 명상을 이따금씩 하고 심호흡을 하다 보면 11살 예쁜 나를 만난다.


그리고 나를 다독인다.

눈부시고 순수했던 나를 되찾고 다시 오늘을 살아간다.

그것이 삶이 선사하는 선물이자 눈부시게 반짝이는 빛이다.


노래제목하나가 떠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에게 주는 유일한 삶이 선사하는 빛을 따라가 본다.

오늘도 지금도 나는 나로 살아가야 하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