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고의 반전의 묘미를 이끌어낸 메멘토상
방구석 공모전 당선작 소설 부문 / 메멘토상
마지막 10분이 잊혀지지 않는 영화, <메멘토>는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작품이죠.
반전의 새로운 의미를 일깨워 준 작품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글_ 정예영
나는 선천 멜라닌 세포 모반을 가지고 태어났다. 몸 전체의 절반 이상이 두들겨 맞은 멍 자국 같은 점들로 덮여 있다. 어릴 적부터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는 다시 점들이 생겨났고 그로 인한 불안과 우울함은 내 마음마저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몇 년 전 간신히 부모님이 운영하는 작은 원단 가게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일은 주로 거래처에서 오는 전화를 받거나 원단을 포장하는 것이었다. 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게 건물 2층이 바로 우리 집이다. 직장인이 겪는 흔한 출퇴근 스트레스 같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간혹 그 스트레스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떠들썩하다. 뉴스에서 앵커는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외출 시 큰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최대한 타인과 거리를 두는 것은 이미 내 일상이었다. 사실 대부분이 건물 1층에서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전부지만. 일하는 날을 제외하고 언제나 방구석 1열에 앉아 콘서트나 영화를 감상하거나, 가고 싶은 세계의 거리 구석구석을 간접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릴없이 SNS에 친하지도 않았던 동창생들의 이름을 검색하여 ‘얘는 나를 얼마나 괴롭혔고, 쟤는 나름 괜찮았었지’ 하며 새삼스레 나 홀로 방구석 동창회를 진행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 SNS 사진 속 그들처럼 나도 예쁘게 단장하고,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 떠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런 보통의 일상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내 오랜 바람들이었다.
오늘은 상담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석 달하고 보름 만에 집 반경 200m를 벗어나는 날이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거리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와 지나가는 차량 두 대가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늘 시끌벅적 바쁘게 오고 가던 사람들의 세상은 잠들어 있었고 나 혼자서 잠에 깨어 있는 듯했다. 나는 타인의 시선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도착 한 정거장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탑승 전, 텅 비어 있던 좌석에 사람이 몇 명 앉아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의외로 그들의 시선은 예전처럼 매섭지도, 따갑지도 않았다.
지하철에서 하차해 출구로 걸어 올라가는 중 터널로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 좋은 상쾌함이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출구로 빠져나온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마스크가 벗겨져 있었다. 그때 마스크를 낀 세 명의 일행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지나갔다. 그중 한 명은 슬쩍 뒤돌아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얼굴에 온통 점으로 뒤덮인 사람에 대한 연민?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려에 불쾌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리고 그때 나는 그들의 어떤 생각에 좀 더 마음을 두고 싶었던 것일까?
바이러스로 혼란에 빠진 세상, 얼굴을 숨기고 서로를 경계하며 지나가는 타인들 사이에서 공교롭게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고 내 몸의 점들도 타인에게 감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수년을 자발적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들어가기 전 타인들이 매일 거닐던 이 일상에서 선선하고 보드랍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서 있기로 했다. 그저 몇 초만이라도 그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서글픈 것들을 위로해 보며.
*언유주얼 '방구석 공모전' 소설 부문에 당선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