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유주얼 May 15. 2020

[방구석 공모전 당선작]권민아_호화로운 방콕 여행

[에세이] 생존을 위한 창의력을 보여 준 로빈슨크루소상


방구석 공모전 당선작 에세이 부문 / 로빈슨크루소
홀로 무인도에 갇혀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한 <로빈슨크루소>에 버금가는,

방구석 생존을 위한 창의력을 몸소 보여 준 작품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호화로운 방콕 여행

권민아


  소란스러운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도착한 이곳은 방콕 시티숨이 턱턱 막힐 듯한 도심 속의 일상에서 벗어나, 2주일 동안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약간의 불편한 마음을 채우려 틈틈이 영어 공부를 시도하기는 했지만엄밀히 말하면 안 한 것과 다름없었기에나는 그저 휴가를 즐겼다고 남겨 본다나의 계획은 완벽했다드라마영화 다시 보기 앱의 월정액을 구매한 뒤그동안 보지 못한 밀린 작품들을 몰아 봤다여러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 보며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그런데 잠시 다른 세상에 빠져 있는 동안현실 세계에서는 난리가 났다기대감에 부풀었던 방콕 시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그것은 잠시 여유를 준다는 의미에서 행복이라 생각했지만 결코 온전한 행복은 아니었다자발적 방콕 여행과 강제 체류 여행은 다른 법그렇게 나는 방콕 시티에서 무기한 체류자로 남게 되었다.


  ‘내가 방콕을 떠날 수 없다면방콕에 원하는 것을 들여오자는 사소한 생각의 전환으로 나의 생활은 한결 풍성해졌다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주방을 편의점으로 만들어간편식과 간식음료를 채워 둔 연예인을 본 적이 있다그렇게 나의 방콕 시티에도 편의점이 생겨났다나는 편의점의 점주이자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손님이었다


  간편식에 지칠 무렵, SNS에는 지인들이 만든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올라왔다그렇게 나 역시도 초고급 레스토랑의 주인이 되었다주방장이 되어 요리를 만드는 순간만큼은 유튜브 창작자와 다름없었다. “얼마나 맛있게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유행어를 내뱉고는어디선가 느껴지는 반려묘의 시선에 피식거리기도 했다차려진 요리를 먹을 때면 재벌가의 우아한 막내딸이 되기도 했다잘 쓰지 않던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미슐랭의 레스토랑에 온 듯 예의를 갖추며 … 괜찮네요라고 말하며 먹었다그러나 그 끝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폭식하는 장면으로 넘어가곤 했다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꼭 단 게 땅긴다요즘 홈 카페가 유행이란다방콕 시티에도 카페가 빠질 순 없지나는 요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베이킹까지 넘보기로 했다에어프라이기에 종이 포일을 깔고 백만 번을 저은 머랭을 넣었다큰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완성되길 기다리던 나는 미처 몰랐다그 가벼운 머랭이 에어프라이기 천장에 달라붙어 나를 끔찍한 뒤처리의 늪으로 데려간다는 사실을 말이다나는 머랭 치기를 포기했다


  나의 방콕 시티는 시간이 거듭날수록 호화로워졌다편의점레스토랑카페까지 기본적인 식욕을 충족시켜 줄 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그런데 가장 중요한 무료함이 가시질 않았다무료함은 월정액 서비스로는 부족했다온라인에서 싸구려 물감과 붓스케치북팔레트를 샀다방콕 시티에 미술 학원이 생겼다마음이 시키는 대로 향하던 붓끝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기하학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담긴 예술이랄까그 예술 활동은 딱 5일치의 가성비였다.  


  우울증에 걸릴 듯 외로워지면서 현타가 찾아 왔다의미 있는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책은 마음의 양식이 아닌가온라인 서점으로 책을 구매했다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 . <효리네 민박>에 나온 아이유처럼 여유롭게 읽을 생각이었는데결국 이 책도 아름다운 전시품으로 남게 됐다방콕 서점은 현재 휴업 상태이다휴업이다휴업언젠간 다시 열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어려워도 쓰는 건 재미있지 않을까글을 쓰기로 했다블로그 활동을 재개했는데그다지 큰 활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돈이 걸리면 더 열심히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공모전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막상 공모전 사이트에 접속했더니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것들뿐이었다나는 멋진 글을 쓸 만한 인물이 아니다그저 아마추어일 뿐쉽게 도전할 만한 게 없을까찾다가 방구석 공모전을 발견했다그래이거다!


  방구석 시네마방구석 편의점방구석 레스토랑방구석 카페방구석 화방방구석 서점… 그리고 방구석 공모전나의 방콕 시티는 그 어느 곳보다 화려했고 호화로워졌다살아갈 인생에서이런 여행을 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마지막 눈이 내리고벚꽃이 피었다 지고꽃샘추위가 나에게 안녕을 고한다날이 따뜻해지는 것을 보니나의 방콕 여행도 끝나가나 보다지난 여행의 순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본다세상 최악의 순간을 호화로움으로 바꾼 순간들을  


  “소란스러운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도착한 이곳은 방콕 시티…….”



*언유주얼 '방구석 공모전' 에세이 부문에 당선된 원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공모전 당선작]서지인_나도 내가 집순이인 줄 알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