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단골집, 이태원 완탕
이태원과 경리단 사이 언덕 위에 완탕 집이 있었다. 오래된 주택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영업을 하는 정말 집처럼 따뜻하고 편한 곳이었다. 가난한 시절 데이트를 위해 소셜 커머스에서 쿠폰을 구입해 쟁여두고 다녔는데, 쿠폰으로 밥을 먹기에는 너무나 죄송스러울 만큼 친절한 주인 내외분께서 정갈하고 맛있는 국수를 파시는 곳이었다.
하도 자주 가서 사장님 내외분과 자연스레 대화를 했던 건 물론이고, 음식이 모자란다 싶으면 국물이고 사리고 알아서 가져다주셨다. "우리 사이에 부끄러워 말고 모자라면 바로바로 말씀해요."라며 나중에는 사리로도 모자라 완제품을 한 그릇씩을 더 주기도 하셨다. 배가 부른 건 문제 되지 않았다. 우리는 죄송스러운 마음과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새우 완자가 가득 들어간 완탕으로 항상 두둑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완탕 집이 곧 폐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그곳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음식의 맛도 맛이었지만, 훌륭하신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서러웠다.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았을 때, 인연이 닿으면 또 볼 수 있을 거라며 축복의 말씀도 전해 주셨다. 아쉬움과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 내려가 사역을 하신다니 우리에게 서러워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탕 집은 정말로 없어져버렸고, 흔해 빠진 어떤 프랑스 가정식 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우리는 죄 없는 그 프랑스 요리 집을 미워하며 그곳을 지날 때마다 거의 울먹이다시피 사장님 내외분과 따뜻한 완탕을 추억했다. 그분들은 그저 수많은 고객 중 한 쌍이었던 우리를 항상 귀한 손님이 방문한 것처럼 위해주셨다. 모든 것이 빠르게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서울, 그것도 이태원이라는 지극히 번화한 지역에 단골집이 있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고, 정말로 뭉클한 일이었다.
아직도 가끔 인품이 훌륭하신 내외분과 그분들이 정성스레 만들어 주시던 음식 생각이 난다. 나에게 소울푸드가 있다면, 이십 대 중반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먹던 그 완탕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고, 같은 것을 찾을 수도 없는, 오로지 기억에만 존재하는 소울푸드.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행복하신지도. 그 시절의 우리를 기억하시는지도. 비록 우리도 서로에게 작별을 고한지 꽤 되었지만, 이제 같은 음식을 다시는 먹을 수 없겠지만. 좋은 시절, 너무 많이 걸어 항상 배고프던 그 사람과 나를 항상 배불리 먹여주셔서 감사했다는 인사 꼭 전하고 싶다. 어차피 완탕 집도 없는 서울, 꼭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단골집이 있는 것도 아닌 걸. 시간은 참으로 허망하게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으나,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토록 따뜻하게 마음에 남는다. 사형수가 되어 마지막 만찬을 고르라면 나는 아마 그 완탕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