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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Sep 08. 2016

나는 글쓰기라는 항해를 시작했다

설령 그 어떤 곳에도 정박하지 못한다 해도


 글 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2011년까지의 나는 결핍을 자양분 삼아 글을 썼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나는 지독하게도 결핍되어 있었고, 때문에 항상 열등감과 슬픔에 빠져있었다. 난생처음 느껴보았던 따뜻한 애착, 깊은 소통, 그리고 그 모든 것들과의 이별은 잔인했다. 존재의 이유이던 영화 역시 나에게 '재능 없음', '적성 아님' 선고를 내렸다.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은 내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했다. 부조리의 연속이었다. 나는 왜 늘 당신들을 그리워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세상은 나에게 왜 이토록 극복할 대상을 많이 던져준 건지 도무지 그 저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매번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옥 같은 기분을 억지로 견뎌내던 나에게 가장 즉각적인 위로를 건네주었던 건 글쓰기 하나뿐이었다. 


 

 글을 쓰는 행위 속의 나는 자유로웠다. 무엇이든 노래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만은 나의 간절한 마음이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과 내가 불화할 때도 글을 한바탕 휘갈기고 나면 내게는 잘못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위안은 나 자신의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나의 깊은 내면에 있는 진심들이 내 의식보다 빠른 속도로 키보드로 옮겨졌다. 키보드를 타고 한 줄 한 줄 쓰이는 문장 위를 흐르는 나는 썩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의 글에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겠다는, 지지 않겠다는, 지금은 미약하지만 머지않아 단단해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내 안의 보물을 건져내는 탐사 활동이었던 것 같다. 시커먼 바닷속처럼 깊고 깜깜한 나의 내면을 헤매는 키보드는 금세 반짝이는 보물들을 끌고 지면으로 올라왔고, 그 순간 폭풍우가 일던 바다는 잠잠해지고 잠시나마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글을 쓰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갔다. 쓰다 보니 여러 사람에게서 칭찬도 듣게 되었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잘하는 일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응급처치로만 여겨왔던 글이 어느새 내가 가장 잘하는 일, 더 잘하고 싶은 일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영화에 대한 정념에 휩싸여 열렬한 구애를 할 때 글쓰기는 그 사랑을 북돋워주었고,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슬퍼할 때는 내 옆에 가만 앉아 등을 토닥여줬다. 다만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없어 몰랐을 뿐, 글쓰기는 처음부터 나의 가장 충성스러운 친구였던 것이다. 영화가 강렬한 첫사랑이었다면 글쓰기는 묵직하고 따스한 반려자일까.



 하지만 이런 응급처치 식의 글쓰기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기분이 언짢아지면 습관적으로 키보드에 손부터 올리고 보던 나였기에 기분 변화를 조금이라도 감지하면 바로 글을 써서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방식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기분이 언짢을 때 글을 쓰면 과거의 감정의 찌꺼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더 안 좋아지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극심한 고통에서 조금 빗겨있다 보니 글쓰기에도 냉정을 찾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십 대 초반까지의 나만큼 외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았고, 십 대부터 이십 대 초반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겪은 고통을 환기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강해졌거나, 오히려 더 나약해져 있었다.



 진짜 치유는 글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진실한 소통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사랑을 알게 되었고, 친구들은 언제나 내 곁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더 이상 글쓰기를 자위 도구로 삼지 않아도 되었다.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이제는 사람의 온기에서 그 치유를 찾을 수 있으니, 혹은 그 모두가 떠나더라도 이내 혼자 굳게 설 수 있을 만큼은 강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난 시절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해지던 응급처치 식의 글쓰기는 몹시도 자폐적이었다. 더 이상은 자폐적이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불안정하다. 앞으로도 불안정할 것이다. 나의 타고난 성향이 바로 그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매일 나의 불안정함을 양분 삼아 글을 쓰겠는가.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을 내 업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이제 나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방식 대신 살을 붙여주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다만 나는 조금 몰두해보려고 한다. 가장 적절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내 글로 10원 한 장이라도 벌어볼 수 있을지, 그것이 무작위적인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지 나는 아직 강한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써야 하고, 읽고, 읽혀야 하고, 더 연구하고 몰두해야 한다. 스스로가 게으름에 잠식되는 일이 없으면 한다. 애매한 재능에 위축되지도 않았으면 한다. 이제 글을 쓸 때 가장 나다워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마음껏 즐거운 일을 할 수 있게 스스로를 도우면 한다.



 간 보지 말자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쓰고 여기저기 들이대 보자고. 곧 서른이 되겠으나, 그렇다 해도 아직 서슬 퍼렇게 젊은 나이가 아닌가. 거절당하는 일이 두렵다면 죽을 게 두려워 당장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나를 얼어 죽일 것만 같던 세상의 차가움을 기억하며, 그러나 여전히 뜨겁게 살고 있기에 언제라도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답은 내 안에 있을 테고, 나는 생을 살아내며 그 답을 꺼낼 수 있도록 조금 더 길고 치열한 항해를 시작해야겠다. 노를 저어 가다가 고등어 몇 마리, 고래도 몇 마리, 바다에 비친 하늘과 수평선에 걸린 태양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나도 확실히 알지 못했던 목적지에 도착해 있지 않겠는가. 설령 그 항해의 마지막이 내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아주 생소한, 그리고 어쩌면 불편할지도 모르는 땅이라 해도.



 항해만 하다가 그 어떤 곳에도 정박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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