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거리가 많은 삶이라고 여긴다. 시간이 많다. 대체로 숨만 쉬며 음악을 듣거나, 어떤 생각에 골몰하다가, 털고 일어나 자잘한 가사일을 하며 온갖 포맷의 범죄물을 섭렵한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진다.
최근에 내가 해낸 일은 수영장 강습을 등록한 것이다. 걸어서 1분이면 수영장이 있는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서야 드디어 마음이 준비되었고, 마침 이번에도 운 좋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수영장이 두 군데나 있다. 열성적으로 수강신청을 한 뒤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처럼 필요한 물품들을 아주 신중하게 모았다. 강습 4일째, 나는 여전히 레인 맨 뒤에서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시도하다 아래로 꼬르륵 가라앉는다. 코가 맵다. 물개가 되어 보고 싶었는데. 분명 내가 한 것은 운동이라 할 수 없는 어떤 몸짓에 지나지 않는데도 종일 배가 고프다. 이렇게 내 몸매만 물개가 되는 걸까. 그래도 좋다. 수영장 앞의 빌라에 핀 노란 꽃이 아직도 만개해 있다. 정문을 열기도 전에 훅 끼치는 락스 냄새를 좋아한다. 삑- 회원카드를 찍는 소리가 경쾌하다. 두 번이나 하는 샤워가 개운하다. 수영 강습을 시작한다고 하니 대체로 “아니 네가!?”라는 반응이었는데, 그러게요! 내가! 물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별일이죠.
십수 년 전, 수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작은 카페에 앉아 ‘추억은 힘이 없더라고요.’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4살 연상의 나의 다정한 친구가 이렇게 답했던 것도 같다. ‘응, 정말 그래. 추억은 힘이 없어.’ 나는 그때 고작 스물한둘 남짓이었을 텐데, 이후로 또 다른 추억들이 얼마나 더 많아질 줄은 모르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과연 추억이 힘이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언젠가 길에서 우연히 조우하면 어떨까, 무슨 인사를 건넬까 고민했지만 반드시 한 번은 마주할 것이라고 믿어왔던 사람들은 기어코 내 세계에서 고인이 되었다. 그래서 무능력한 추억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 힘을 준다.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나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서 당장 내 앞에 닥친 오늘과 내일을 또 예쁘게 살아야 한다.
음파 음파.
삼십대의 나는 이제 호텔도 가고 리조트도 갈 수 있는데, 한 번도 수영장을 써본 적이 없으니 왠지 억울하더라고. 그래서 한 번은 물장구라도 치려고 해외에서 택시를 타고 마트를 가서 희한하게 생긴 수영복을 샀어. 나의 친구는 마치 미취학 아동을 돌보는 보호자처럼 내 손을 잡고 ‘부아앙’하며 놀아주었어. 그때 산 수영복은 꼭 해녀가 입을 만한 모양이었는데, 이제 나는 원피스를 입어. 비록 이번에도 검은색이지만 다음엔 화사한 체크무늬를 살 거야. 그러려면 나는 음파음파를 지상에서 숨 쉬듯 할 줄 알아야 하고, 발차기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는 걸 체득해야 하고, 언젠가 킥판이 없어도 물의 표면에서 움직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해.
이것은 내가 새로이 추억을 만드는 방식. 이번엔 무능력한 추억이 아니라, 이왕이면 앞으로의 내 생에 이전에는 없던 힘을 주는 고마운 추억.
음-파.